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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Nov 11. 2020

[일간지 인터뷰]'애썼다, 오늘의 공무원' 영지

"어제보다 더 공무원다운 오늘을 꿈꾼다"

오늘11.11. 중부일보 문화 인터뷰랍니다. 최근 근무지가 바뀌고 사정상 글을 자주 못 올렸던 제가 이렇게라도 독자님들을 만날 수 있어 다행입니다.




[인터뷰]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 영지 작가 "어제보다 더 공무원다운 오늘을 꿈꾼다"


주변 작은 것에서 의미를 찾는다. 그리고 실천한다. 공직, 리더십, 조직문화, 공간, 문화, 예술 등 다양한 분야를 탐구하고 경험한다. ‘나’를 찾기 위한 영지 작가의 일상이다.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은 영지 작가의 일상을 담아 처음 세상에 내놓은 책이다. 경기 지역 ○○시 7급 공무원인 그는 공직 안과 밖의 더 많은 사람들에게 다가가기 위해 오늘도 먼저 손을 내민다. 늦은 가을 어느 날 한적한 공원에서 영지 작가를 만났다.


-책을 출판하게 된 계기는.


"지난해 시간선택제 근무를 하면서 ‘브런치’(온라인 글쓰기 플랫폼)에 글을 써서 올리기 시작한 것이 책 출간의 시작이다. 당시 공무원 직업 에세이를 기획하고 적임자를 찾고 있던 출판사에서 우연히 내 글을 읽고 직접 연락을 해 왔다. 일상에 대해 소소한 느낌을 담은 글을 쓴 지 3개월 만이었다. 출판사와는 두 번의 미팅을 하고 바로 출간 계약을 했다. 사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내게 상당히 파격적인 제안이었고 한동안은 얼떨떨한 기분이었다. 하지만, 고민 끝에 공무원이란 직업을 ‘있는 그대로’ 알릴 수 있는 좋은 기회라는 생각이 들었고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영지 작가의 책에서도 언급이 많이 됐듯이 우리 사회는 ‘공무원’에 대해 선입견이 있다. 물론, 공무원이라는 직업의 안정성을 무시할 수 없다. 영지 작가에게 공직이란.


"바로 안정성과 평등이다. 공직에 들어오기 전 중소기업에서 7년 정도 근무했다. 첫 직장이었고 나름 그 분야에서 전문성을 발휘할 수 있는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결혼과 동시에 주요 업무에서 내가 배제된다고 느꼈다. 결혼 전까지 임원들과 해외 출장도 자주 나갔고 중요한 프로젝트도 맡아 추진했다, 하지만, 결혼 후에는 새로 입사한 남성 팀장의 보조 역할로 전락한 기분이 들었다. 그때부터 공무원이란 직업에 대해 심각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던 것 같다. 약 15년 전, 작은 사기업에서 출산 휴가나 육아 휴직은 꿈도 못 꾸었다. 반도체 장비를 만들어 해외까지 수출했던 회사는 남직원이 대부분이었고 여직원들은 총무, 회계 업무 등 상대적으로 비중이 작은 자리에 주로 근무를 했다. 몇 안 되는 여직원 대부분이 미혼이거나 비혼이었다. 막상 내가 결혼을 하고 보니 언제 이 회사를 나가도 될 만한 자리로 바뀌었다고나 할까. 첫 직장이었기에 더 애착도 있었지만 한순간 이도 저도 아닌 자리로 내몰린 느낌. 그 상황에서 공직은 하나의 희망이었다. 여성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추세였고, 결혼이나 임신으로 인해 차별받는 것도 덜하리라는 기대가 컸다."


-공무원 영지 작가가 공직에서 이루고 싶은 꿈은.


"공직의 마지막 순간까지 후배들이 ‘따라 하고픈 선배로 기억되는 것’이다. 올해로 13년 차 공직 생활을 지나고 있다. 앞으로 몇 년을 더 공무원으로 살게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 나를 아는 그리고 앞으로 만나게 될 수많은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 남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다. 사실 학창 시절부터 기자, 외교부 장관 등 이런저런 무모한 꿈들을 가졌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하나의 꿈을 정해 놓고 맹목적으로 좇는 것이 과연 내가 진짜 원하는 삶일까 의문이 들었다. 오히려 ‘미숙한 젊은 날’의 내가 어느 순간 정해 놓은 꿈으로 인해 나의 또 다른 잠재력이 묻히는 게 아닐까 고민이 들었다. 어쩌면 일상에서 내게 주어지는 소소한 과제들에서. 무심하게 마주하는 동료들과의 부대낌에서. 내가 하는 일, 공직의 의미를 느낄 수 있다면 그것이 바로 내가 꿈꿔왔던 이상적인 직업인의 삶이 아닐까 생각하게 되었다. 그래서 내 꿈은 공직의 마지막 날까지 ‘어제보다 더 공무원다운 오늘’을 매 순간 잘 살아 내는 것이다. 그래서 공직에서 머물렀던 나의 시간들이 후배들의 마음에 제대로 새겨지는 것이다."


-영지 작가는 슈퍼우먼이다. 어학이든 일이든, 공부든, 가정이든 현재에 순응하지 않고 자기 계발에 열심이다. 하지만 우리가 아는 대부분의 ‘공무원’은 그렇지 않다. 일단 마음가짐부터 우리가 아는 공무원과 다른 게 아닌가.


"번뜩 떠오른 기억이 하나 있다. 고등학교 1학년, 어느 더운 여름날이었다. 야간자습을 막 시작하려는 시간, 나는 도시락을 후다닥 먹어치우고 만화책을 빌리기 위해 같은 반 친구와 담장을 훌쩍 뛰어넘었다. 그것도 체크무늬 잘 다려진 교복 치마를 입은 채 말이다. 경상도의 작은 도시 여고에서 이런 소소한 일탈(?)을 즐기던 학생이었다. 그렇게 고3이 되자마자 나는 전혀 다른 아이처럼 돌변해서 공부에 또 미친 듯이 빠졌다. 대학교에서도 그랬고, 공무원이 되어서도 비슷하게 흘러온 듯하다. 대학원, 어학연수, 출간 등등. 여고시절 담장을 훌쩍 뛰어넘던 그때의 모습과 딱딱한 시청 조직에서 일상과 일탈의 경계를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40대의 공무원은 묘하게 닮아 있는 듯하다. ‘나는 왜 이런 도전들을 끊을 수 없을까.’ 자꾸 자문해 보지만 대답은 늘 ‘공직 안에서 나란 사람을 잃지 않고 싶어서’다. 태어나 처음으로 주어지는 누군가의 딸이란 위치. 그리고 자라면서 학생, 직장인, 엄마 그리고 ‘공무원’이란 직업까지. 하나씩 감투가 늘어날 때마다 ‘이래야 한다, 저래야 한다’는 책임인지 제약인지 모호한 것들도 함께 늘어난다. 특히, 공무원이란 직업은 이것저것 뭐가 많지 않나. 멋모르던 공직 초반 시절과 지금 다른 게 있다면 예전보다 조금은 나를 덜 놓치면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여전히 출근부터 퇴근까지 내 머릿속은 ‘공무원스러움’과 ‘공무원다움’이 치열하게 전쟁을 벌이고 있다. 다른 공무원들도 마찬가지 아닐까. 누군가의 아들, 딸, 엄마, 아빠, 동네 주민으로 평범한 일상을 살고 있지만, 공무원이란 직업이 주는 유난히도 견고한 선입견 속에서 각자 나름 치열한 싸움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지난 7월 초판이 나왔다. 석 달 정도가 지났는데 자신 안에서, 가정에서 혹은 조직에서 어떤 변화가 있었나.


"개인적인 일상의 변화는 크게 없다. 코로나19로 인한 영향도 있겠지만, 출간을 결정할 때부터 책 자체로 독자들에게 다가가길 원했다. 그래서 계약 전 내가 출판사에 요청한 유일한 ‘출간 조건’은 실명과 소속기관을 밝히지 않는 것이었다. 올해 초 출판사와 출간 시기를 본격적으로 조율하고 홍보물을 함께 논의할 때만 해도 뭔가 엄청난 변화가 곧 내 앞에 닥쳐올 것만 같았다. 경험해보지 못한 것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랄까. 그래서 7월 ‘영지’라는 필명으로 책이 전국 서점에 본격적으로 배포되기 시작했을 때는 가족과 가까운 지인들 그리고 직장에서도 꼭 필요한 분들께만 출간 사실을 알렸다. 당시 가장 좋아하신 분들은 당연히 고향에 계신 부모님이다. 어머니는 매일 다니시는 ‘뜨개방’ 친구분들과 소박한 ‘축하파티’를 하셨고, 교육공무원으로 평생을 근무하시다 정년퇴직을 하신 아버지도 표현은 안 하셨지만 요즘 부쩍 딸에게 전화를 자주 하신다. 직장에서 나는 여느 공무원과 다름이 없다. 작은 변화라면 카톡이나 내부 이메일로 책에 대한 소감을 정성스럽게 적어서 보내주시는 선후배 공무원들이 생겼다는 것이다. 출간 이후 이런 소소한 감동들이 만들어낸 내 안에서의 변화라면 직장에서 나의 말과 행동에 대한 조심스러움이다. 출간 직후 같은 팀의 동료가 해준 말이 있다. "주무관님, 앞으로 많이 피곤하시겠어요. 책 내용대로 하는지 후배들이 다 볼 텐데요." 동료는 그냥 장난처럼 던진 말이었지만, 내게는 그 말이 유난히 서늘하게 와서 박혔다."


-일하면서, 살림하면서 나만의 글을 쓴다는 건 쉽지 않아 보인다. 영지 작가에게 글을 어떤 의미, 어떤 가치인가.


"지난해 내가 본격적으로 글을 쓰게 된 계기가 있다. 직장인 출간 작가의 길을 먼저 간 어떤 분의 조언이었다. 그분도 직장을 다니면서 일상의 생각을 글로 쓰다가 책 출간까지 하면서 인생에 큰 변화가 생겼다고 했다. 자신의 경험을 무심하게 얘기하며 내게도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한번 고민을 해보라고 조언했다. 우연히 나눈 그분과의 대화에서 유독 내게 선명히 남은 한마디가 있다. "나는 글을 쓰기 위해 일을 한다." 일종의 발상의 전환이었다. 그전까지 나는 뭔가 대단한 재능이나 전문적인 지식이 있어야 글을 쓰고 출판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엄두도 못 내는 뭐 그런 거.) 하지만 그의 이야기는 정반대였다. 좋은 글이 나오기 위해서는 치열한 삶의 경험이 최선이라는 것. 이제 나에게 글은 매 순간 스스로 얼마나 치열하게 삶을 살아 내고 있는가를 말해주는 증거와 같다."


-첫 책을 세상에 내놨는데, 다음 계획이 궁금하다.


"크게 두 가지 방향을 갖고 있다. ‘소통과 연결’이다. 독자들과의 긴밀한 소통이 당분간 최우선 과제다. 코로나19 사태가 진정될 때까지는 온라인 소통에 집중할 계획이다. 퇴근 후나 주말 시간을 활용해서 독자들과 더욱 가깝게 소통하고 싶은 마음이다. 아울러 독자는 물론 공무원에 대한 일반적인 궁금증을 가진 사람까지, 누구든 글쓰기 플랫폼인 브런치의 ‘제안하기’ 기능을 통해 작가 영지와 소통할 수 있다. 이렇게 열어 놓은 작은 소통의 길이 더 크고 다양한 갈래로 다시 이어질지는 나도 무척 궁금하다. 요즘 공무원 조직의 화두는 ‘적극행정’이다. 지자체 공무원인 내게도 이런 변화는 눈여겨봐야 할 부분이다. 사실 공무원이 아닌 일반 직장인, 고등학생들도 가볍게 읽을 수 있는 내 책과 이런 변화의 흐름은 왠지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내가 이해하는 적극행정은 공무원 개인의 능력과 개성이 제대로 발휘될 수 있는 유연한 조직문화가 필수적이다. 그래서 어설픈 ‘공무원스러움’이 아닌 진짜 ‘공무원다움’을 꿈꾸는 조금은 무모하지만 열정을 가진 ‘오늘의 공무원’들을 이어주는 ‘연결‘ 역할이 작가 영지의 두 번째 계획이다. 아직 어떤 방식으로 ‘공직의 연결자(The Great Connector, 소통을 통한 리더십으로 유명한 미국 레이건 대통령의 별명)’가 될 수 있을지 구체적으로 생각해 보진 않았다. 하지만 다음 책의 좋은 글감은 틀림없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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