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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Jan 17. 2021

"술 한잔 따라 드릴래?"

씁쓸한 회식의 추억

어느 식당 저녁식사 자리.


"아이고, OO님 잘 지내셨죠?"

(옆자리 나를 바라보며)

"OO씨, 뭐해? OO님 술잔이 비었잖아!"

"술 한잔 따라 드릴래?"


"네?"(나는 잠시 머뭇했지만, 바로 술병을 찾아 두리번거렸다)

"여기 한잔 드릴게요"(애매한 표정으로 나는 앞자리 분에게 술 한잔을 따랐다.)

"저, 잠깐 화장실 좀..."(그리고 얼마 후 자리를 일어났다)


그리고 한참 동안을 나는 식당 밖을 서성였고 생각에 빠졌다. 왠지 모르는 찜찜함과 다시 그 자리로 가고 싶지 않다는 불편함이 나를 계속 밖에서 맴돌게 했다. 결국 나는 그 자리로 돌아가지 않았다. 다른 동료들이 있는 자리로 가서 잠시 얘기를 나누다가 서둘러 집으로 돌아왔다.


오래전 어느 저녁의 기억이다. 당시 어느 여자 검사가 다른 (지위가 높은) 남자 검사의 성추행 사실을 용기 내어 언론에 폭로하면서 촉발시킨 'Me Too(미투)' 운동으로 많이 시끄럽던 시기였다. 많은 회식자리가 있었지만 유독 그날의 저녁이 선명하게 내 기억에 남아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예전에도 분명히 비슷한 상황이 많았을 텐데. 그날은 유난히도 이상한 기분이었다.    


나와 친분이 없는 남자 상사가 갑자기 회식 중 내 앞자리로 와서 앉았다. 아마 평소의 나라면 내 이름을 먼저 소개하면서 그분이 어색하지 않도록 먼저 술 한잔을 드렸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날따라 잘 모르는 그분에게 술 한잔으로 애써 잘 보이고 싶은 기분이 아니었다. 갑자기 앞자리를 비우면 또 기분이 상할까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그냥 애매하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내 옆 자리 어떤 팀장은 그렇지 않았나 보다. 친분이 있는 듯 이런저런 안부를 서로 묻는다. 나는 가만히 듣고만 있다. 그런데! 갑자기 나에게 술을 한잔 따라 주라고 한다. 그분과 친분도 '마음'도 없는 나에게 '술 한잔'은 그냥 단순한 술 한잔이 아니었다.


기분이 이상했다. 자리가 불편했다. 얼굴은 아무렇지 않은 듯 '생글생글' 웃고 있지만 속마음은 정반대였다. 솔직히 그런 내 모습이 너무 불편했다.


화장실을 핑계로 그 자리를 나와 한참을 식당 앞마당에 서 있었던 것 같다. 식당 안은 여전히 시끌벅적하다. 저마다의 이야기로 화기애애하다. 그 시간 나는 혼란스러운 표정으로 멍하니 앞을 응시하고 있었다. 그때의 감정이 정확히 무엇인지 몰랐기 때문이었을까. 몇 년이 흐른 지금에 와서야 그때의 내가 조금은 이해된다.


바로 '각성'이었다. 여자의 적은 과연 여자인 걸까. 이 질문에 대해 과연 그날 내가 느꼈던 건 무엇이었까. 분명한 건 그 회식자리 이후 나는 '술 한잔'을 그냥 술 한잔으로만 보지 않게 되었다는 것이다.


겉보기에는 맑게 찰랑이는 투명한 유리잔. 하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욕심, 권력, 지배, 아부' 같은 탁한 것들이 둥둥 떠다니고 있을지 누가 알까. 뭐 그게 무엇이든. 그날의 각성은 나에게 '잘 몰라서',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세상 순진한 척 얼렁뚱땅 순간을 넘어가는 그만두게 했다.


그 이후 어느 날 저녁. 서너 명의 여자 동료들과 저녁 장소를 가기 위해 걸음을 재촉하고 있었다. 팀에서 가장 나이 어린 여직원이 술을 잘 못 먹는데 어떻게 피할지 근심이 가득한 얼굴하고 있다. 그 근심에 나도모르게 대답을 하고 있었다.


"아마도 어떤 분이 '여기는 누구, 저기는 누구'하며 자리배치를 할 수도 있으니 잘들 대비하세요!"

"그래요?"(눈을 동그랗게 뜨며 일제히 나를 돌아본다)

"높은 분 옆에 어린 여직원 앉히는걸 워낙 많이 봐서말야"

"알아서 나쁠 것 없잖아"(찡긋)

"맞아요!"(다들 의미심장한 웃음을 짓는다)


결국 그날. 팀의 가장 나이 어린 남직원이 희생양이 되어 조금은 힘든 시간을 보냈다. 나중에 여직원들의 애정 어린 위로를 받긴 했지만 지금도 많이 미안한 마음이다.


사실 그날 저녁 나는 한잔의 술도 마시지 않았다. 나의 주량을 이미 알고 있는 상사가 "오늘 왜 (술을)안 먹느냐"고 재차 물었지만 '한약을 먹고 있어서요', '컨디션이 안 좋아서요'와 같은 애매한 변명 대신. 그냥 '말없는 웃음'으로 먹고 싶지 않다는 의사를 분명히 표시했다.


회식자리에서 식사와 함께 당연히 술을 마셔야 한다는 인식에 대해 나는 '고 싶은 사람도 있음'을 알린 것뿐이다.  높은 분 옆자리에 계속 앉으라는 어느 팀장의 다그침에 '내가 앉고 싶은 자리에 앉고 싶어요'라고 후배들은 표현한 것뿐이다.


그냥 그런 것이다. 평범하고 당연한 권리의 행사. 이런 사소한 '눈치 봄'이 생각보다 깊이 그리고 폭넓게 우리네 일상에 깃들어 있음이 그저 안타깝다.


그래서 결국 여자들의 적은 여자인 걸까. '미투' 이후 남자가 아닌(몸을 사리는 분들이 늘기도 했지만)같은 여자가 더 무섭다는 생각을 종종 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여자의 적은 여자가 아닌것 같다.


적은 바로 이런 '이상한 생각과 편견들'을 회피하고 대수롭지않게 넘기려는 '나의 태도'가 아닐까. 내가 바뀌지 않는한 편견으로 똘똘 뭉친 누구라도 나를 힘들게 할 수 있기에. 전체가 아닌 개인에 초점을 맞추다보면 어느샌가 나는 매순간 폭발하는 '쌈닭'이 될 수도 있다. 그래서 더욱 냉정하게 스스로그리고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


남자든 여자든. 우리 눈을 멀게 하는 '누구는 이래야 하고 누구는 저래야 한다'는 세상 쓸데없는 편견과 프레임들.  프레임을 하나씩 정조준해서 깨면서 나아가는 것. 이런 '냉정함'이 무엇보다 지금 내게 필요한 게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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