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티는 사람의 성공 스토리는 왜 없는가

[서평]플라이 백(Fly Back) written by 박창진

by 영지
뒤돌아보지 말고 앞으로 가라. 그것이 삶이다...이 모든 것은 내 선택이었고
과거는 과거대로 남기고 이제 내 앞에 놓인 길을 걸어가려 한다
- 박창진 -



남아서 '버티는'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는 왜 없는가
우리에게 익숙한 성공스토리는 권력과 조직의 횡포에 상처 받고 만신창이가 되어 회사를 뛰쳐나와 인생 역전을 만든 사람들의 이야기 아닐까. 이런 성공담은 퇴사를 꿈꾸는 많은 이에게 미래에 대한 장밋빛 희망을 준다.


반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퇴사 대신 조직에 남아 힘겨운 싸움을 하는 소위 '버티고 있는 사람들'의 성공스토리는 찾아보기 어렵다. 그러기에 지금 현재 진행형으로 '버티기' 을 살고 있는 그의 이야기는 무척 특별하고 흥미롭다.




'박창진 사무장' 그도 시작은 평범한 피해자였다

대한항공 박창진 사무장. 내가 그의 이름을 처음 보게된 건 2014년 12월 어느 날, 국내를 넘어 전 세계의 조롱거리가 된 일명 '땅콩 회항'사건의 기사를 통해서였다. 그때만 해도 박창진이란 사람은 힘 있는 사람이 휘두른 권력에 한없이 당하고만 있어야 하는 억울한 피해자 정도로만 인식되었다. 실제로 박 사무장은 국토부 진상조사와 검찰 조사 과정에서 또 다른 피해자인 여승무원이 변호사를 비롯한 회사의 전폭적인 지원을 받고 있고, 본인은 조직의 '버린 카드'임을 알게 되면서 현실을 직시하게 된다. 그는 곧바로 공중파 방송국으로 달려가 단독 인터뷰를 진행한다. 그가 소위 '버린 카드'가 아니었다면 '땅콩 회황'의 진실은 영원히 묻혔을 수도 있었다.

당시 대부분 사람들의 관심은 또 다른 당자사였던 재벌가 그녀와 그녀의 아버지였다. 그리고 많은 이들의 예상대로 '반전'은 없었다. 그들은 여전히 대한민국 공식 항공사 오너로 당당히 건재하고 있다. 단지 바뀐 게 있다면 그때보다는 조금 더 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민낯'을 알게 되었다는 점이다.


복귀와 객실 승무원 강등, 그는 더 이상 평범한 피해자가 아니었다

그러다 몇 년이 지난 후 우연히 기사를 검색하다 박창진 사무장이 대한항공을 그만두지 않고 여전히 비행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접하게 되었다. 입사 22년 차 팀장과 사무장 직책까지 올라갔던 그가 이제는 일반 객실 승무원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단다. 심지어 박 사무장은 그동안의 상황을 겪으면서 공황장애를 앓았고, 머리에 생긴 큰 종양을 제거하는 대수술까지 받은 터였다. 솔직히 기사 내용을 선뜻 믿기가 어려웠다. 왜 아직도 이 사람은 자신을 버린 회사를 다니지? 무슨 이유로 일부러 힘든 길을 선택해서 가고 있는 거지?

궁금증으로 찾아본 그의 인터뷰에서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되었는지 어느 정도 짐작은 할 수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선택과 결정이었기에 그의 일관성 있는 행보들은 참으로 신선하게 다가왔다. 그는 나에게 더 이상 평범한 피해자 '박창진 사무장'이 아니었다. 당시 나는 개인 SNS에 이렇게 글을 남겼다.

"'미약한 개인이지만 권력과의 투쟁에서 정도를 걸었을 때 권리를 회복할 수 있다, 그게 맞는 사회다'라는 걸 보여주고 싶어서 이 과정에 있는 거예요"
(박창진, 2017년 인터뷰 중)

최근 21년 차 사무장에서 이코노미 객실 승무원으로 복직하여 근무 중인 그가 언론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진정한 용기'란 바로 이런 것이 아닐까. 그의 외롭고 힘든 투쟁을 보며 매 순간 현실과의 타협에 흔들리는 나를 되돌아본다. 박창진, 그를 응원한다.
- 2017년 7월 페이스북-


플라이 백(Fly Back) 출간과 제2의 인생 역전

그 후 다시 2년여의 시간이 흘러 얼마 전 그의 책 '플라이 백(Fly Back)이 출간되었다. 지난 2월에 출간된 책은 단숨에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내가 느꼈던 그 만의 솔직하고 진정성 있는 메시지는 조직에서 외롭게 싸우며 하루하루 '버티고' 있는 수많은 '을'들에게도 이미 엄청난 공감을 얻고 있는 것 같다. 아마도 책의 출간으로 그는 '다른 의미'의 인생역전을 또다시 맞이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추측해 본다.


플라이백은 그의 대한항공 입사부터 소위 '잘 나가는' 직원으로 조직과 오너의 인정을 받아 승승장구하던 시절, 노조와 힘겹게 싸우고 있는 동료를 외면했던 자신에 대한 회상, 땅콩 회황 사건 후 완전히 바뀌어 버린 인생에서 그도 인간이기에 겪는 내적 갈등, 대한항공 직원연대의 출범과 그의 참여, 직원연대 공동대표를 거쳐 현재 노조 지부장으로 선출되기까지 일련의 과정을 그의 목소리로 솔직하게 담아내고 있다.




'지지 않을 용기'의 실천 그리고 그의 'dignity'

그의 인생 그리고 그의 선택이 무엇보다 특별했던 이유는 바로 한국사회 특징인 집단주의 문화와 견제장치 없는 권력의 횡포에 대해 '지지 않을 용기'를 몸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필로그에서 그는 '이 세상에 존엄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며 우리 개개인이 가지는 dignity(존엄)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가 2014년 12월 그날, 뉴욕 JFK공항 활주로의 차가운 겨울바람 속으로 쫓겨났을 때 그는 마지막까지 '미안하다'는 말을 버릇처럼 하고 내렸다고 한다. '을'이기에 '을'에게 주어지는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는 프레임과 착각을 깬 힘은 그가 무엇보다 소중하게 생각한 그의 'dignity' 때문이었다. 자신의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해 '권력'에 결코 굴복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고 그것을 지금까지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실천하고 있을 뿐이다. 앞서도 얘기했듯이 시작부터 박창진 사무장이 무언가 큰 뜻이 있어서 지금까지의 행보를 보여준 것은 아니었다. 단지 당연히 존중받아야 할 것들이 존중받지 못하는 현실, 지켜져야 할 기본적인 룰(rules)이 작동되지 않을 때 기꺼이 '아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그 '용기'를 남들보다 먼저 가졌던 것뿐이다.


'혼자 하는 싸움'에서 '함께하는 연대'로

박창진 사무장의 선택에서 가장 인상적인 점은 그가 동료들의 의도적인 따돌림과 비난에도 불구하고 회사를 그만두지 고 지금도 '버티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는 말한다. 병가에서 복귀 이코노미 객실 승무원으로 다시 근무를 시작한 그에게 가장 큰 상처가 된 사람들은 다른 누구도 아닌 함께 일하는 동료들이었단다. 복귀 후 몇 년간은 회사와 동료들에 대한 그만의 외로운 싸움이었다면, 2018년 이후 '대한항공 직원연대'가 결성되면서 이제는 400여 명의 직원연대 노조원들이 그의 곁에 있다는 점이 변화라면 변화다. 그는 책에서 예전의 싸움이 자신의 자존심과 존엄성을 지켜내기 위한 것이었다면, 지금은 400여 명의 직원들을 위해서 싸운다고 한다. 누군가 앞장서서 싸워야 한다면 기꺼이 자신이 되겠노라 이야기한다.


버티는 사람들을 위한 '위안'스토리, 대한항공 박창진 그를 응원한다

나는 그가 당장 내일이든 몇 년 후든 웃으며 타의가 아닌 스스로의 결정으로 대한항공을 걸어 나가는 그 순간을 상상해 본다. 지금 그는 내부고발자의 위치에서 하루하루 '버티면서' 그 나름의 인생 스토리를 쓰고 있다. 그 마지막이 성공이든 실패든 큰 의미는 없을 것 같다.


박창진의 플라이 백(Fly Back, 갑질로 어긋난 삶의 궤도를 바로잡다), 그의 이야기는 하루하루 말없이 '버티면서' 나름의 이유와 희망으로 살아가고 있는 세상의 수많은 '을'들을 위한 '위안'으로도 충분히 의미가 있다. 내일도 출근을 위해 이른 잠을 청해야 하는 세상의 제2, 제3의 '박창진'을 힘껏 응원한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내 우아함은 스스로 쟁취해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