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m I good enough?

미셸오바마 Becoming '필사'의 기록1,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나

by 영지

"Am I good enough?"

나는 충분히 잘하고 있는가?


미국 최초의 흑인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의 자서전 <Becoming>에서 그녀가 어릴 적부터 스스로를 향해 반문한 것이 'Am I good enough?'였다. 올해 1월 우연히 브런치의 어느 작가님으로부터 선물 받은 이 책을 받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읽기 시작했다. 근데 며칠을 늦은 밤까지 손에서 책을 떼지 못할 정도로 푹 빠져 읽게 되었다.


나는 그녀의 독백들이 좋았다. 시카고 흑인 밀집지역의 평범한 흑인 소녀. 장애를 가진 아버지와 그다지 넉넉하지 못한 집안 형편에도 불구하고 퍼스트레이디의 자리까지 올라 간 그녀. 성장의 과정에서 많은 편견과 난관에 맞닥뜨린 그녀가 자신에게 하는 다짐과 독백들. 급기야 유튜브에서 그녀의 연설 영상들을 찾아보았다. 그녀가 선택하는 단어와 신뢰감을 주는 목소리, 그리고 진지한 눈빛까지 더해지니 왜 그녀가 남편 버락 오바마보다 더 많은 인기를 지금 미국에서 얻고 있는지 이해 되었다.


그래서 바로 비커밍의 영문판을 주문했다. 막상 원서를 받아 들고 나는 다시 고민에 빠졌다. 좀 더 특별하게 그녀의 말들을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이 없을까? 그래서 시작한 것이 영어 '필사'다. 매일 한 페이지 분량으로 영문판 필사를 시작하면서 미셸 오바마의 말을 통해 나의 인생 그리고 나의 일상을 다시 돌아보고 있다. '내가 충분히 잘하고 있는지' 성찰의 작은 의식(ritual)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일주일 한번 그 주에 필사한 내용을 하나 골라서 기록으로 남기기로 했다. 이유는 이 작업을 통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미셸 오바마가 '그녀 다워지는 과정' 을 공유하고 함께 공감을 나누고 싶기 때문이다. 부디 이 '필사'의 기록이 나를 비롯한 많은 분들에게 보다 '자기다워지는 계기'가 되길 바라며 첫 번째 Becoming '필사'의 기록을 시작한다.




"I'm not sure," she said, giving me a perfunctory, patronizing smile, "that you're Princeton material." "네가 프린스턴에 갈 재목인지 잘 모르겠구나." 그녀는 형식적이고 가르치려는 듯한 미소를 지으며 이렇게 말했다.

미셸이 고등학교 졸업 학년이 되어 대학 진학을 본격적으로 고민하면서, 학교에서 정해 준 진학 상담사와의 첫 의무 면담에서 들은 말이다. 오빠 크레이그를 따라 프린스턴 대학에 가고 싶다고 얘기한 그녀에게 상담사의 이 말은 상처가 되어 가슴에 박힌다. 이 장면은 나의 고3 진학상담과 꼭 닮았다. 당시 나는 담임 선생님과 상담을 했었고, 선생님은 내가 가려는 대학이 좀 무리지 않겠냐고 낮춰서 지원하라고 은근히 압박을 하셨다. 수능까지는 시간이 좀 남아 있었고, 이 말에 상처 받은 나는 과연 어떻게 했을까?


But as I've said, failure is a feeling long before it's an actual result. And for me, it felt like that's exactly what she was planting-a suggestion of failure long before I'd even tried to succeed. She was telling me to lower my sights, which was the absolute reverse of every last thing my parents had ever told me.
그러나 앞에서 말했듯이, 패배감은 실제 결과가 나타나기 한참 전에 엄습한다. 상담사는 바로 그런 기분을 심어주려는 것 같았다. 내가 시도도 해보기 전에, 보나 마나 실패할 것이라고 말하는 것 같았다. 그녀는 내게 눈을 낮추라고 말했지만, 그것은 부모님이 평생 내게 당부해온 말과는 정반대의 말이었다.

미셸과는 달리 우리 부모님(특히, 엄마)은 자식들을 '방목'하시는 편이셨고, 나의 대학 진학에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사실 엄마는 내가 간호대학에 가길 바라셨다. 당시까지만 해도 여자는 선생님 아니면 간호사가 되어 좋은 남편감을 만나 시집을 잘 가는 게 성공한 인생이라고 많이들 믿고 있을 때였다. 씁쓸하지만 사실이었다. 나도 거의 그렇게 살 뻔했으니까.


Had I decided to believe her, her pronouncement would have toppled my confidence all over again, reviving the old thrum of not enough, not enough.
만약 내가 그녀의 말을 믿었다면, 그 한마디로 내 자신감은 도로 거꾸러졌을 것이다. 나는 부족해. 부족해하는 자책이 다시 귓전에 울리기 시작했을 것이다.

내가 담임 선생님 말에 상처를 받아 그냥 공부를 놔 버렸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다행히 나도 미셸과 비슷한 마음을 가졌던 것 같다. 자존심. 그것 때문에 더 열심히 수능을 준비한 것 같다. 자존심에 상처 받은 주목받지 못한 평범한 여학생이었던 나. 점심시간에도 자리에서 일어나지 않고 미친 듯이 공부한 것 같다. 자존심이었다.


But...I was something more. I wasn't going to let one person's opinion dislodge everything I thought I knew about myself.
그러나...나는 그 이상이었다. 한 사람의 의견이 나에 대한 나 자신의 평가를 무너뜨리도록 놓아두진 않을 터였다.

미셸 오바마는 어린 나이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섣부른 누군가의 평가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나중에 남편 버락 오바마의 선거유세 지원 연설을 본격적으로 하면서 그녀의 있는 그대로를 표현하는 솔직한 화법이 반대편의 공격과 일부 사람들에게 좋은 가십거리를 제공했을 때도 그녀는 무너지지 않았고 더 현명하게 상황을 대처할 줄 알았다.


I've lucky enough now in my life to meet all sorts of extraordinary and accomplished people-world leaders, inventors, musicians, astronauts, athletes, professors, entrepreneurs, artists and writers, pioneering and doctors and researchers. Some(though not enough) of them are women. Some(though not enough) are black of of color.
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운 좋게도 온갖 부류의 비범한 사람들과 성공한 사람들을 만나보았다. 국가 원수, 발명가, 음악가, 우주인, 운동선수, 교수, 사업가, 화가와 작가, 선구적인 의사와 연구자... 그중(비록 충분한 수는 아니었지만) 일부는 여성이었다. 그중(역시 충분한 수는 아니었지만) 일부는 흑인이나 유색인종이었다.

남편 버락 오바마의 재선 성공으로 2번이나 퍼스트레이디가 된 미셸 오바마. 영부인 자리는 수많은 유명인들과의 교류를 만들었고, 이것은 그녀를 한층 더 깊이 있게 성장시킨 듯하다. 누구나 이런 경험을 미셸 오바마처럼 받아들이지는 않는다. 일부는 자기 과시로, 일부는 권력을 위한 발판으로 하지만 일부는 그들의 인생을 보고 자신의 인생을 반추하고 그리고 깨닫는다. 그녀처럼.


What I've learned is this: All of them have had doubters. Some continue to have roaring, stadium-sized collections of critics and naysayers who will shout I told you so at every little misstep or mistake. The noise doesn't go away, but the most successful people I know have figured out how to live with it, to lean on the people who believe in them, and to push onward with their goal.
내가 그들로부터 배운 교훈은, 그들에게도 의심하는 사람이 있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어떤 사람은 성공한 후에도 대형 경기장을 메울 수 있을 만큼 수많은 비판자와 회의론자가 따라붙는다. 그들은 그가 사소한 실책을 저지를 때마다 "내 그럴 줄 알았지!"하고 외친다. 그런 소음은 영원히 사라지지 않는다. 하지만 성공한 사람들은 그 소음을 견디는 법을, 대신 자신을 믿어주는 사람들에게 의지하며 목표를 꿋꿋이 밀고 나가는 법을 터득했다.

두 아이의 엄마이자 로펌 변호사. 평범한 전문직 워킹맘에서 흑인 인권과, 미국 아동의 비만 문제 등 점차 미국의 사회적 문제까지 관심분야를 넓히고 적극적으로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영부인 미셸 오바마. 많은 것을 성취할 수 있었던 그녀의 힘이 어디서 나왔는지 잘 알 수 있는 대목이다.


That day I left the college counselor's office at Whitney Young, I was fuming, my ego bruised more than anything. My only thought, in the moment, was I'll show you.
휘트니 영 진학 상담사의 방을 나서던 날, 나는 분해서 어쩔 줄 몰랐다. 무엇보다 자존심이 상했다. 그 순간 떠오른 생각은 하나뿐이었다. 두고 보라지.

그렇다. 우리는 살면서 '휘트니 영 진학 상담사'와 같은 사람들을 무수히 만난다. 그때마다 본의 아니게 상처 받고 또 그 상처로 인해 좌절하기도 한다. 하지만 내가 겪어 본 대부분의 사람들은(아주 일부를 제외하고) 그냥 그게 상대방을 위하는 것이라는 믿음이거나 아니면 괜한 기대감을 심어주지 않으려고 그렇게 한다. 나에 대한 악의를 가진 것은 아니었다. 중요한 건 이런 상황을 내가 어떻게 극복하고 나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나를 이끌 수 있느냐가 아닐까? 미셸 오바마도 나도 '자존심'을 잘 활용한 경우다. 당시 나도 담임 선생님께 '한번 두고 보세요'라고 수십 번 다짐하지 않았을까 기억을 더듬게 된다.


I never did stop in on the college counselor to tell her she'd wrong...And in the end, I hadn't needed to show her anything. I was only showing myself.
(그러나) 나는 상담사에게 들르지는 않았다. 가서 당신이 틀렸다고, 나는 프린스턴 재목이었다고 말해주지는 않았다... 그리고 애초에 그녀에게 증명해 보일 필요가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증명해 보인 셈이었다.

결국, 그녀는 프린스턴 대학의 합격 통지서를 받아 든다. 통쾌하게 진학 상담사에게 복수한 것이다. 하지만 결코 그 상담사를 찾아가 자기 성공을 증명하지 않는다. 그녀가 자신에게 증명한 걸로 충분하기에. 나의 경우도 결과는 비슷했다. 내신은 별로였지만, 담임 선생님과 면담 후 구겨진 자존심을 회복하려 미친듯이 공부한 결과 수능에서 소위 '대박'이 났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포기하라던 '그 대학'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더하자면, 사실 내가 빠지기 쉬운 함정이 바로 이런게 아닐까.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해 열심히 하는 것. 내가 할 수 있느냐에 대한 자기증명이 아니라 '타인'에게 인정받기 위해 뭔가를 열심히 하는 것이다. 심지어 가끔은 이 두 가지 목적이 뒤죽박죽 혼재되기도 한다. 그럴수록 잠시 멈추고 지금 하고 있는 자격시험 준비, 외국어 공부, 운동 등등 이것들이 진짜 나를 위한 것인지 반문해 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 반문하지 않으면 어느 순간 나는 '내'가 주인공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주인이 된 인생을 살고 있을지도 모른다. 어떤 것이 정답이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그래서 더 자기반문이 필요하지 않을까?


Am I good enough for myself?

나는 '나 자신'을 위해 충분히 잘하고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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