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small but life changing move

미셸오바마 Becoming '필사'의 기록2, 사소하지만 인생을 바꾼것

by 영지
"It was a small but life changing move"
그건 아주 사소했지만 내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지나고 보니 정말 사소한 일이 나중에 내 인생의 결정적인 사건으로 기억되는 것. 누구나 한 번쯤은 가진 경험 아닐까? 오늘 필사할 부분은 미셸오바마와 그녀의 어머니와 관련된 에피소드다. 지금의 미셸오바마가 있기까지 그녀의 어머니가 어떤 존재였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을 중심으로 발췌했다. 조용히 미셸을 뒤에서 지지하고 좋은 여건에서 딸이 자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던 그녀의 어머니. 마리안 쉴즈 로빈슨. 과연 그녀는 어떤 어머니였을까?




My second-grade classroom turned out to be a mayhem of unruly kids and flying erasers, which had not been the norm in either my experience or Craig's. All this seemed due to a teacher who couldn't figure out how to assert control-who didn't seemed to like children.
2학년 때 우리 반은 통제 불능의 아이들과 휙휙 날아다니는 지우개로 아수라장이었다. 그런 상황은 내 경험으로도 오빠의 경험으로도 정상이 아니었다. 통제력을 행사할 줄도 모르는 데다 아이들을 좋아하지도 않는 것 같은 담임선생님 탓으로 보였다.

미셸이 초등학교를 입학하던 시기, 그녀의 터전이었던 시카고의 사우스쇼어 지역이 본격적으로 슬럼화가 되기 시작한다. 백인들은 교외로 떠나고 남겨진 흑인 거주민의 비율이 점점 높아지는. 미셸의 동네는 그렇게 급격한 변화를 맞이하게 되고 학교 교실에도 그것은 어김없이 찾아왔다. 초등학교 2학년 어두컴컴한 지하 교실, 다양한 이유로 '방치'된 아이들. 그 속에 미셸이 비참하게 앉아 있다.


In her eyes, we were a class of "bad kids," though we had no guidance and no structure and had been sentenced to a grim, underlit room in the basement of the school. Every hour there felt hellish and long.
선생님에게 우리는 '나쁜 애들'이 모인 반이었다. 하지만 실상은 이끄는 사람도 규율도 없는 상태로 학교 지하의 어두침침한 교실에 갇힌 어린아이들일뿐이다.

교실에서 선생님의 역할은 절대적이다. 한번 아이들을 '나쁜' 또는 '불량한'으로 규정한 선생님에게 아이들은 어떤 것도 배울 수 없다. 이 대목에서 나는 고등학교 어느 담임 선생님을 떠올린다. 당시 야간 자습이 밤 10시까지 있던 시절이었다. 어느 날 당직이었던 우리 반 담임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앞뒤 교실문을 걸어 잠갔다. 본의 아니게 한동안 나를 비롯한 우리 반 학생들은 교실에 갇히게 되었다. 위협을 가하려 한 건지, 본때를 보여주려 한 건지 기억은 가물가물하다. 하지만, 우리 반이 그 선생님의 돌발행동으로 교실에 갇힌 경험은 이후 상당한 트라우마로 남았다. 아직도 궁금하다. 왜 그랬을까? 어린 미셸에게 지하 교실에서 아이들을 훈육하지 않고 방치하는 선생님이 어떻게 비쳤을지는 굳이 말하고 싶지 않다. 그냥 공감만 꾸욱.

When I got angry as a kid, I almost always funneled it through my mother. As I fumed about my new teacher, she listened placidly, saying things like "Oh, dear" and "Oh, really?" She never indulged my outrage, but she took my frustration seriously...She knew the difference between whining and actual distress.
어릴 때는 화가 나면 거의 어머니에게 쏟아냈다. 내가 새 선생님에 대해서 씩씩거리면, 어머니는 "저런, 그랬니""정말이니"하고 대꾸하면서 차분히 들어주었다. 내 화를 오냐오냐 받아주는 적은 없었지만, 좌절감은 진지하게 여겨주었다...우리 어머니는 그냥 징징거리는 것과 진짜 괴로워하는 것의 차이를 알았다.

그런 미셸에게 어머니는 하나의 돌파구였다. 학교에서의 우울함을 방과 후 점심을 먹는 그녀 앞에 앉은 어머니에게 털어놓으면서 하루하루 버텨 나간다. 그렇게 버티 던 미셸에게 '진짜' 좌절감을 읽었던 것도 바로 그녀의 어머니였다. 그녀는 즉시 딸을 위해 행동으로 옮긴다. 바로 3학년 반으로 월반이었다. 미셸을 포함한 몇 명이 시험을 거쳐 햇볕이 따뜻하게 스며드는 지상의 교실로 이동한다. 그곳에는 '진짜' 가르치는 선생님이 있었다. 미셸의 표현에 의하면.


It was a small but life-changing move. I didn't stop to ask myself then what would happen to all the kids who'd been left in the basement with the teacher who couldn't teach. Now that I'm an adult, I realize that kids know at a very yound age when they're being devalued, when adults aren't invested enough to help them learn.
월반은 물론 사소한 일이었지만, 내 인생을 바꿔놓은 사건이었다. 그때 가르칠 줄 모르는 선생님과 함께 지하에 남은 친구들은 어떻게 되었을까 하는 생각을 나는 내내 떨치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어른이 되어보니 알겠다. 아이들은 아무리 어려도 남들이 자신을 낮잡아 본다거나 어른들이 자신의 공부를 돕는 데 열의가 없으면 귀신처럼 알아차린다.

미셸의 어머니가 조용히 물밑에서 추진한 3학년 월반. 미셸이 만약 월반을 하지 못했더라면, 지금의 미셸오바마가 있었을까? 그녀의 어머니는 일상에서 항상 미셸의 말을 경청한다. 매일 습관처럼 딸의 말을 세심히 들었던 그녀는 아주 미묘한 딸의 감정 차이를 알아챌 수 있었다. 그리고 미셸의 인생을 바꿔놓은 월반을 위한 행동을 망설임 없이 하게 된다. 이 부분에서 나는 미셸 어머니의 일상적인 경청과 또 심각성을 느꼈을 때 바로 행동으로 실천한 대목에 주목했다. 매일 딸의 말을 경청하는 습관이 없었다면 과연 그 차이를 알 수 있었을까? 나는 그래서 미셸오바마의 성공적인 인생 드라마에 그녀의 어머니는 하나의 큰 강물처럼 흐르고 있음을 느꼈다. 미셸이 사람들과 녹록지 않은 환경에 의해 흔들리고 좌절하고 상처 받을 때, 그녀의 어머니는 바위처럼 또는 큰 강물처럼 그녀 옆에서 든든하게 그녀를 지지해 주는 존재였다.


Their anger over it can manifest itself as unruliness. It's hardly their fault. They aren't "bad kids." They're just trying to survive had circumstances.
그래서 쌓인 분노를 막된 행동으로 표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은 아이들 잘못이 아니다. 그들은 '나쁜 애들'이 아니다. 나쁜 환경을 견디려고 애쓰는 것뿐이다.

아이들이 엇나갈 때는 다 이유가 있다는 말. 미국이나 한국이나 비슷한 생각을 갖고 있는 듯하다. 미셸은 2학년 어두컴컴한 교실 속 반항적인 아이들에 대해 다양한 이유로 방치되어 관심받지 못한 아이들 나름의 '절규'였다고 회상한다. '안타까움' 바로 그것이다. 다행히 그녀, 미셸에게는 자신의 말을 항상 경청하고 지지해 주는 그녀의 어머니가 있었기에 그 난관을 잘 빠져나올 수 있었다고.


But, I'd learn many years later that my mother, who is by nature wry and quiet but generally also the most forthright person in any room, made a point of seeking out the second-grade teacher and telling her, as kindly as possible, that she had no business teaching and should be working as a drugstore cashier instead.
그리고 세월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안 사실이 하나 있다. 평소 무덤덤하고 과묵하지만 어느 집단에서든 가장 직설적인 편인 우리 어머니는 그때 2학년 선생님을 일부러 찾아갔다고 한다. 그리고 최대한 상냥한 표현을 동원하여, 당신에게는 아이들을 가르칠 자격이 없으니 차라리 슈퍼마켓 계산원 일이 어울릴 거라고 조언해주었다고 한다.

'스승님의 그림자도 밟지 말라'는 말이 있었다. 아주 아주 예전이다. 지금은 이 말을 거의 듣지 못하는 것 같다. 그만큼 지금은 '선생님'의 위상 자체가 예전과 비교해서 많이 떨어진 듯하다. 그렇게 이해를 해도 아직은 나에게 미셸의 어머니가 2학년 담임 선생님을 찾아가서 한 말은 조금은 '과격'하게 보인다. 대신, 나는 가정과 학교에서 선생님 또는 부모가 가져야 할 나름의 '철학'에 대해 얘기하고 싶다. 누구든 각자의 자리에 적합한 책임과 역할이란 게 있다. 하루 종일 선생님과 같은 공간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초등학생들. 그들에게 선생님의 철학은 그의 행동과 말투와 그리고 그 속에 담긴 메시지로 학생들에게 매 순간 전달되고 흡수된다. 스펀지처럼 지식을 빨아들이는 아이들에게 선생님의 중요성은 정말 큰 것이다. 어머니가 만들어 준 3학년 월반은 미셸에게 '진짜' 선생님을 만나게 해 준 의미 있는 사건이었다. 미셸의 어머니가 가졌던 딸에 대한 '경청'과 '지지'. 그 나름의 철학을 느꼈다. 그런 철학을 가진 사람에게 2학년 선생님이 어떻게 보였을지, 그래서 딸을 위해 그녀가 선택한 행동. 이해가 된다면 무리일까?




그렇게 모든 건 미셸 어머니의 경청에서 시작되었다. 어린 딸아이가 학교를 다녀와 쏟아내는 말들에 세심하게 귀 기울여 들었던 그녀의 '사소한' 일상의 습관이었다. 나는 과연 내 아이의 말을 잘 듣고 있는가? 다시금 반성해 본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Am I good enou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