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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pr 18. 2022

"너, 공무원이나 되라!"

영지의고민상담실 23

나란 공무원

나는 지방자치단체에서 근무하고 있는 이제 14년 차에 접어드는 현직 공무원이다. 사실 평균보다 조금 많은 30대 초반에 공무원 생활을 시작했다. 그 전에는 7년 정도 중소기업에서 해외영업 업무를 했기에 민간기업과 공공기관 모두 합해 20년이 넘는 직장생활을 한셈이다.


공무원 vs. 작가

직업은 공무원이면서 2019년부터 이곳 브런치에서 영지라는 필명으로 글도 쓰는 '공무원 작가'이다. 그리고 2년 전에는 직업에세이(애썼다, 오늘의 공무원, 2020년 7월, 출판사 허밍버드)를 세상에 내놓은 출간 작가이기도 하다. 오늘 이 글은 작가가 아닌 직업인으로서 ‘공무원’ 영지에 초점을 맞추어 풀어내는 이야기다.


"공무원이 적성인 사람이 있을까?"

공무원이 적성인 사람이 있을까? 이렇게 물어보면 대부분은 아마 "에이, 누가 공무원이 적성에 맞아서 해요, 그냥 되면 좋은 거지 "라고 답할 것이다. 그럼 '그냥 하는 직업이 공무원일까?' 사실 공무원이 적성을 따지기에는 워낙에 직렬도 많고 하는 일도 다양하기에. 일단은 그냥 하는 게 맞는 것도 같다. 뭐 사실 나도 그랬으니까. 내가 수험생일 때 엄마도 "우선, 합격이나 하고 그런 소리를 해라 “라고 했듯이.


하지만 막상 합격 후 발령이 나면 그때부턴 또 얘기가 달라진다. 합격의 즐거움도 잠시. 이런저런 일을 경험해볼 기회를 만들고, 나와 맞는 업무를 (어쩌면 수험생 때보다 더) 치열하게 찾아 나서야 한다. 그야말로 본 게임에 들어온 것이다.


그래서 공무원은 그냥 되는대로 하면 또 안 되는 직업이기도 하다. 공무원의 일은 마스크 미착용 과태료를 부과하는 딱딱하고 욕먹는 일부터 마스크 착용 홍보문구를 만드는 말랑말랑하고 톡톡 튀는 업무까지 보기보다 꽤 다양하다. 공공기관이 만들어내는 수천 가지 행정서비스가 '합격한' 공무원 누군가의 애정 어린 손길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정기인사가 있는 매년 1월과 7월이면 전국 곳곳에서 수만 명의 공무원들이 옆 사무실로 앞 건물로 건너편 동네로 이웃 도시로 해외로 때론 집으로. 새로운 업무와 일을 찾아 짐을 싸고 푸는 일을 한다.


내 경우 약 13년 동안, 4개의 동행정복지센터, 2개 구청, 본청에서 7개 정도의 부서에서 근무를 했다. 업무로는 민원, 민방위, 회계, 주민자치, 2개의 국제행사, 관광축제업무 등등 다채로운 일들을 맡았다. 일 년에 세 번이나 짐을 싸고 풀었던 적도 있었고. 심지어 매번 다른 업무였다. 그때마다 주어진 업무와 나는 주도권을 위한 지리한 싸움을 한다. 일명 ‘밀당’이다. 그 밀당의 결과에 따라 때론 내가 바뀌기도 하고 업무가 달라지기도 한다.


어찌 보면 적성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이때부터 시작이 아닐까 싶다. 공무원의 적성은 발령 후에 그가 만나게 되는 수많은 업무들 중 그 공무원과 맞는 일을 끊임없이 찾아가는 '발견의 여정'을 얼마나 잘 즐길 수 있는지가 아닐지. 세상엔 공무원 시험 객관식 문제처럼 딱딱 떨어지는 질문도 있고 그렇지 않은 것도 있다. (어쩌면 정답이 없는 질문이 훨씬 많을 수도 있다) 조금 앞서서 그 길을 걷고 있는 내가 후배 공무원이나 공무원이 되고자 꿈을 꾸는 사람들에게 줄 수 있는 답은 '있는 그대로 알려주고 방향을 제시'하는 정도가 각자 '다른 답'을 찾는데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이 글을 쓴 이유

그래서 오늘 이 글은 있는 그대로 나의 10여 년 공무원 생활을 솔직하게 풀어놓고 그것을 통해 독자들이 나름의 답을 찾을 수 있도록 작게나마 도움을 드리는 것이다.


두 마리 개

지난달 나는 서울 약수역 근처에서 이틀간 코칭 관련한 교육을 받았다. 이틀째 강의에서 이런 내용이 있었다. 우리 모두는 항상 두 마리의 개를 데리고 다닌다고.

바로, ‘편견’과 ‘선입견’이다. 편견은 ‘공정하지 못하고 한쪽으로 치우진 생각을 의미’하고, 선입견은 ‘어떤 대상에 대해 이미 마음속에 가지고 있는 고정적인 관념이나 관점’을 의미한다.(출처:국립국어원 누리집) 이 두 가지가 비슷한 것 같지만 분명히 다른 개념이다.


공무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

일반적으로 공무원에 대한 편견으로는 철밥통, 무사안일, 상명하복 등을 들 수 있다. 선입견은 ‘박봉인 월급, 편한 직업, 늘 똑같은 일만 하는 직업’이라는 관점이 있다.(나의 아주 개인적인 생각이다)


공무원이란 직업에 대한 사람들의 오해도 오해지만, 내가 생각하는 더 큰 문제는 내 안의 두 마리 개다. 공무원이 되기 전에도, 공무원이 되어서도. 나는 솔직히 이 공무원이란 직업의 강점보다는 약점에만 집중했다. 어딜 가서도 직업을 당당하게 말하기가 꺼려졌다. 어설픈 ‘공무원스러움’에서 벗어나려고만 했지, 진짜 ‘공무원다움’이 어떤 것인지 심각하게 고민한 적이 별로 없었다.


공무원에 대한 3가지 오해와 진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의 직업, 공무원에 대해서 많은 부분이 잘못 알려지거나 부풀려진 점들이 있다는 걸 종종 느낀다. 그래서 먼저, ‘공무원에 대한 3가지 오해와 진실’부터 시작하려고 한다.


“공무원스러움”

“공무원스럽다”. 이런 말 들어본 적이 있을까? 요즘은 잘 모르겠지만, 10년 전쯤, 내가 공무원이 되고 처음 몇 년 동안 종종 들었던 말이다. 내 나이 30대. 미니스커트를 즐겨 입었고, 클러치백도 종종 들고 다녔다. 해외영업을 오랫동안 하다 보니 말투 또한 꽤나 적극적이었다. 보수적인 공무원 조직에 나라는 사람이 바로 적응하기 어려운 건 당연했다. 그러면 도대체 공무원스럽다는 건 무슨 말일까? 말투가 딱딱하다든지, 표정이 무표정하거나, 옷을 튀지 않게 무채색으로 입는 것. 뭐 그런 걸까? 단순하게 보여지는 겉모습이 그런 것이지 딱히 공무원이라고 다 그렇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더 중요한 건 그 직업 자체에 대한 분위기나 딱 떠오르는 이미지가 아닐까 한다. 그래서 ‘내 마음대로’ 꼽은 대표적인 공무원스러움 3가지를 소개하려 한다.


공무원은 편한 직업이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했다. 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다가 어느 한순간 어쩌면 과거에는 편하게 보일 수밖에 없지 않았을까 또 생각도 든다. 인허가를 내주고 신분증을 확인하고 몇 억짜리 부동산 거래, 출생신고, 사망신고, 이혼신고 등등. 어쩌면 개인에게 아주 중요한 일들과 관련된 서류를 발급하는데 담당 공무원이 정신없이 전화받고 서류를 산더미처럼 쌓아두고 일을 한다고 상상하면. 솔직히 일을 보러 온 주민들이 많이 불안하지 않을까. 그래서 유난히 더 조용하고 엄숙한 관공서 분위기는 그런 이유 때문에 시간이 흐르면서 자연스럽게 만들어진 것이 아닐까 추측해 본다.


사실 공무원은 본연의 업무도 업무지만, 태풍, 전쟁, 폭염, 폭우와 같은 자연재난 상황에서 24시간 비상근무를 유지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거기에다 얼마 전 치른 대통령 선거와 6월에 있을 지방선거까지 지방직 공무원들이 거의 전부 동원되어 새벽부터 각 투표소를 설치하고, 투표함을 이송해서 밤새 개표하는 업무까지 담당하고 있다.

무엇보다 2년 이상 지속된 코로나 팬데믹으로 공무원이 편한 직업이라는 인식이 최근에 또 많이 바뀐 것도 사실이다. 보이지 않는 적, 감염병과의 전쟁은 공무원들에게도 어려운 과제였다. 마스크 착용부터 시작된 방역수칙의 홍보, 안내, 현장지도, 단속업무와 재난소득과 같은 각종 지원금 지급, 역학조사 지원, 방역, 자가격리자 모니터링, 치료센터 지원 근무 등등 코로나19 대응의 현장에 공무원들의 손길이 미치지 않은 곳이 없었다. 지난 2년간 코로나19 와의 전쟁으로 인해 아마 많은 시민들이 공무원이란 직업의 어려움을 알았으리라 조금의 기대는 하고 있다.


늘 똑같은 일?

두 번째 오해는 공무원은 늘 똑같은 일만 한다?이다. 과연 그럴까? 나의 경험상 오히려 일반 회사보다 더 다채로운 일을 경험할 수 있는 직업이 바로 공무원이다. 나의 경우, 2019년과 2020년 사이 1년 동안 세 번이나 부서와 업무가 바뀌었다. 동 주민센터에서 민원과 회계, 청사관리 업무를 6개월간 하다가 바로 구청으로 발령이 났다. 거기서 주민자치 업무를 몇 개월 하고 바로 국제행사를 준비하기 위해 컨벤션센터 내 TF팀으로 발령이 났다. 그리고 준비하던 국제행사가 팬데믹으로 계속 지연되고 개최가 불투명해지면서 현재 근무하고 있는 코로나19 대응 부서에서 1년 반째 일하고 있다. 사실상 굉장히 다른 성격의 업무들이 나에게 주어졌다. 다행히 10년 이상 공무원 생활을 거치면서 최소 한번 이상은 비슷한 업무를 해봤기에 별문제 없이 주어진 일에 대한 처리가 가능했다.


공무원, 특히 지방자치단체 행정직 공무원은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고 있다. 등초본을 발급하는 민원대 업무부터 회계, 총무, 인사, 청소, 예산, 홍보, 행사, 국제교류 등등. 주민들을 위한 행정서비스는 굉장히 폭넓은 분야에 다양한 형태로 제공되고 있다.


공직의 스페셜리스트 vs. 제너럴리스트

그래서 공직에서는 일명 스페셜리스트와 제너럴리스트가 탄생한다. 스페셜리스트는 특정 분야에 특별한 재능과 실력을 발휘하는 공무원을 의미한다. 제너럴리스트는 어떤 업무를 맡겨도 무난하게 잘 처리해 내는 직원을 말한다. 조직 내에서 빠르면 1~2년 내 눈썰미 좋은 상사에 의해 일찍 발탁되어 본인의 능력이 제대로 발휘되는 자리로 가는 경우도 있고, 또 그렇지 않은 경우도 많다.


중요한 건 공무원의 일이 늘 비슷하고 별것이 없다는 선입견을 최대한 빨리 깨고 스스로의 가능성을 끊임없이 발견하려는 노력을 누가 먼저 기울이느냐가 아닐까.


합격하면 땡?

그래서 마지막 세 번째 오해가 나오게 된다. 공무원 시험 ‘합격만 하면 땡’인 걸까? 험난한 수험생활을 견뎌내고 필기시험과 면접을 무사히 통과해서 첫 번째 근무지로 발령을 받게 되면 이제 신규 공무원 앞에 꽃길만 펼쳐져 있을까. 나도 예전엔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막상 시작된 공직생활은 혼자만의 싸움이었던 수험생 생활이 그리워질 정도로 쉽지 않았다.


가장 큰 이유는 공무원이란 직업에 대해 가 너무 큰 환상을 가졌던 것이다. 합격만 하면 모든 것이 다 잘될 줄만 알았는데, 동 주민센터 민원대에서 하루에도 수십, 수백 명의 민원인들을 상대하면서 ‘현실 속 공무원’을 모습을 제대로 경험하게 되었다.


등본 서류 하나를 발급하는데도 두꺼운 규정집과 법령집을 꼼꼼히 살펴봐야 제대로 된 답변과 처리가 가능하다는 걸 공무원이 되고서야, 민원대 그 자리에 앉아서야 깨달은 것이다. 그래서 나의 공직생활 첫 1년은 그다지 행복하지 않았다. 그만두고 싶다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다. 민원인과 동료에 대한 불평, 불만을 끝없이 쏟아내는 굉장히 부정적인 직원이었다. 퇴근 후에 거실 소파에 누워 당시 좋아하던 밤식빵을 우적우적 씹으며 멍하게 TV 화면을 바라보는 것이 유일한 나의 즐거움이었다. 아마 그 상태로 계속 근무를 했더라면 지금의 ‘공무원 영지’는 없었을 수도 있다.


다행히 첫 발령 후 10개월여 만에 육아휴직을 들어가게 되었고, 1년을 쉬면서 다시 일할 수 있는 에너지를 회복해서 직장으로 복귀했다. 복직과 동시에 내가 좋아하는 영어공부와 새벽 운동을 통해 다시금 일터에서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되찾는 노력을 시작하게 되었다. 그 후로 나는 주로 국제행사나 주민들과 함께 일을 만들어가는 주민자치 업무를 하게 되었다. 다행스럽게도, 나의 관심분야와 하는 일이 많이 일치되면서, 내 직업에 대한 만족감도 차츰차츰 상승곡선을 타기 시작했다.


공무원 시험. ‘합격만 하면 땡’이 아니라, 첫 발령을 받고 근무를 시작하면 그때부터가 본 게임이다. 수많은 규정집과 법률을 챙겨봐야 하고, 근무지마다 만나는 직원들과 2~3번 다시 또 근무하게 되는 구조이기에. 직원들이 만들어내는 나에 대한 평판도 굉장히 중요하다. 그래서 합격 후 1~2년 동안은 내가 뭘 못하는지와 또 뭘 잘하는지를 정확하게 파악하는데 모든 에너지를 쏟아야 하는 것이 지방직, 특히 행정직 공무원의 최우선 과제가 아닐까 생각한다.


이렇게 세 가지 정도, 공무원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정리해 보았다. 편한 직업이 결코 아니라는 점, 늘 같은 일이 아닌 굉장히 폭넓은 업무를 할 수 있다는 점, 세 번째 합격만 하면 땡이 아니라, 합격하고 1~2년간은 치열하게 본인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려는 노력이 굉장히 중요하다는 것이다. 지금까지 들어보면 공무원이란 직업이 일단 합격 자체가 쉽지 않고, 그다지 편한 직업도 아니고, 합격해서 더 많은 공부를 해야 하고, 심지어 민간분야와 비교해서 수입이 많은 직업도 아니다. 나는 도대체 왜 이 직업을 사람들에게 추천해야 할까? 그럼에도 나의 대답은 '그렇다'이다.


“공무원다움”

어설픈 ‘공무원스러움’ 대신 ‘공무원다움’이 과거에도 현재에도 지금 어딘가에서 묵묵히 일하고 있을 이름 모를 공무원의 마음속에 있다고 나는 믿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군가는 공무원은 어떤 직업이며, 어떤 소명의식과 가치를 가져야 하는 것인지, 진짜 ‘공무원다움’이 무엇인지 끊임없이 고민하고, 정립하고, 시대 흐름에 따라 바꾸기도 해야 한다. 하지만 현실은... 보여지는 움직임이 너무도 약하다. 그래서 열심히 하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자꾸 힘이 빠진다. 하지만 그럼에도 이 문제의 개선을 위해 누군가 뭔가를 해야 한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사실 가장 이상적인 것은 실제 그 안에서 일을 하고 있는 공무원이 하는 것이다. 그래서 미약하나마 지금 현재 7급 공무원인 내가 '공무원다움’에 대해 정리한 내용을 이렇라도 소개해 보려 한다.


프로정신, 균형감각, 품격유지

나에게 ‘공무원다움’의 세 가지 요소는 ‘프로정신, 균형감각, 품격유지’이다.


먼저, 프로정신이다.

공무원이란 직업과 프로정신이 과연 어울릴까 조금은 의아하게 생각할 수도 있다. 13년 동안 공직생활을 하면서 나는 이 직업만큼 다양한 분야의 프로페셔널리즘이 필요한 것이 또 있을까 자주 생각했다. 예를 들면, 사람들이 가장 많이 접하게 되는 공문서인 등본을 발급받으려면, 민원인 입장에서는 민원실을 가서 발급기에 지문을 인증하고 받거나, 지문 인식이 안 되는 경우에는 신분증을 공무원에게 제시하고 수수료를 계산하고 서류를 받아 가는데 5분도 채 걸리지 않는 단순한 일이다. 하지만, 반대로 민원대 앉은 공무원의 입장이 되면 완전히 다른 과정이 시작된다. 민원인이 신분증을 제시하는 순간부터 서류를 받아 가는 순간까지 담당 공무원은 민원 규정과 각종 판례에 따른 절차를 준수해야 하는 의무가 생긴다. 세대주와 세대원들의 주민등록번호와 주소지가 모두 기록된 주민등록등본은 혹시라도 잘못 발급되는 경우 개인의 재산상, 신분상의 피해가 심각하기 때문이다. 수백만 원부터 수십억까지 부동산 거래에 사용되는 인감증명서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공무원이 발급하는 공문서 한 장 한 장이 중요한 법적 효력을 발생시킨다. 겉으로 보기엔 평범한 종이 한 장이지만 제대로 절차에 맞게 발급하기 위해서는 공무원 한 명 한 명이 철저하게 프로정신으로 무장해야 한다.


다음은 ‘균형감각’이다.

내가 6~7년 전 어느 구청에서 주민자치업무를 맡고 있을 때다. 12월에 되면 자치센터 프로그램이 잘 되어있는 곳은 강사들과 수강생들이 모여서 연주회 겸 송년회를 개최하면서 구청장도 초대한다. 그때 통기타 프로그램이 굉장히 인기가 많았고, 청장님 앞으로 송년회 초청장이 와서 담당자인 나도 함께 동행을 했다. 건물 전체가 뷔페 행사장이었고 한 층을 전부 빌린 굉장히 큰 행사였다. 청장님의 축사가 끝나고 팀장님과 두 분은 바로 떠나고 (전부 가버리면 좀 그러니까) 담당자인 나만 행사장에 덩그러니 남겨졌다. 겉으론 아무렇지 않게 음식도 먹으면서 주변 사람들과 이야기하며 어울렸지만, 사실 나는 언제쯤 가야 할지 내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축하연주가 시작되었고, 사람들의 시선이 무대 쪽으로 쏠리자 그때를 놓치지 않고 나는 조용히 가방을 들고 나왔다. 그리고 곧장 지하층 행사 주최 사무실로 내려갔다. 거기엔 여직원 한분이 앉아 있어고, 나는 행사장 위치를 말하며 1인분이 얼마인지 물어봤다. 왜 그걸 물어보는지 궁금해하는 얼굴로 그 직원이 가격을 얘기하자나는 얼른 내 카드를 꺼내서 계산해 달라고 했다. 카드 승인 소리가 나자 그제야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안녕히 계세요!”라는 인사를 남기고 사무실을 나왔다. 주차장으로 가는 나의 발걸음은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날정도로 가볍고 경쾌했다.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일명 ‘김영란법’으로 불린다. 이 법이 2016년에 9월에 시행되면서 공무원 조직에도 굉장히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전까지 당연히 가능한 것으로 인식되던 식사나 음료, 간식이 처벌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바뀐 것이다. 그 연말 행사가 12월이었으니 이 법이 시행되고 3개월쯤 지났으니까 한창 현장에서 혼란이 많이 있을 때였다. 행사장에 혼자 남겨졌을 때, 배는 고프고 떠날 수는 없고, 다들 먹는데 나만 안 먹자니 이상하고. 머릿속으로 만감이 교차했는데 음식 계산을 하고 나니 너무도 쉽게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다.


공무원에게 공적인 일과 사적인 생활 사이의 균형은 굉장히 중요하다. 식사 한 끼라도 균형감각을 잃지 않는 것이 필요하기에 공무원이란 직업, 다시금 쉽지 않음을 느낀다.


세 번째, ‘품격유지’.

여기서 품격은 뭔가 대단한 것이 아니다, 일상생활에서의 소소한 규칙들 앞에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의미한다. 내 경우는 집 앞 커피전문점을 갈 때 가장 많이 느끼는 것이다. 보통 주택가 횡단보도가 굉장히 짧고 차들이 많이 다니지 않는 도로에 위치한다. 그런데 또 파란불 신호는 굉장히 오래 기다려야 한다. 그때마다 나는 또 갈등을 한다. ‘이걸 건너 말어? 아무도 안 볼 텐데, 저분도 그냥 가잖아. 너도 건너 그냥.’ 마스크도 비슷하다. 식당에서 식사가 끝나면 나는 가능하면 바로 마스크를 쓴다. 얼마 전 점심시간 식사를 끝내고 마스크를 쓰니까 옆자리 일행이 벌써 가냐고 물어본다. 아니라고, 식사 끝났으니 마스크 쓰고 얘기하는 것이라고 답했다. 횡단보도 신호 준수와 마스크 쓰기가 대단한 규칙은 아니지만, 시민들에게 수칙을 홍보하고 안내해야 하는 게 공무원의 일인데, 내가 지키지도 않으면서 시민들에게 지키라고 하는 건 뭔가 맞지 않는 것 같아서 완벽하게는 어렵지만 늘 생활 속 ‘품격유지’ 네 글자를 기억하면서 소소한 규칙들부터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다.


지금까지 ‘공무원다움’을 내 나름대로(마음대로) ‘프로정신, 균형감각, 품격유지’ 세 가지로 정리해 보았다. 지금까지 만나보고 경험했던 여느 공무원의 이미지와 많이 다르지 않기만을 희망해 본다.


안경사는 국가면허를 취득한 전문가입니다 

여기 사진 한 장이 있다. 내가 지난해 9월 공무원에 대한 첫 강연을 하는 날 아침, 긴장된 마음을 좀 풀어보려고 동네를 산책하다가 매번 무심코 지나치던 안경점을 앞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그날따라 이 문구가 눈에 들어왔다. “안경사는 국가면허를 취득한 전문가입니다.” “공무원은 국가면허를 취득한 행정전문가입니다.” 어떤가? 공무원 버전으로 한번 바꿔봤다. 조금은 다르게 느껴질까?

 

공무원다움, 그다음은?

공무원에 대한 오해와 진실, 공무원다움 그러면 그다음은 무엇일까? 바로 롤모델이다. 현실에서 진짜 사례를 찾아내어 실제로 그것이 가능하다는 증명해 보이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공무원과 꿈

그래야 보다 많은 청소년들이 공무원이란 직업을 ‘꿈의 영역’으로 가져갈 수 있을 테니까. 그럼 과연 꿈을 가지고 그 꿈을 이루어간다는 의미는 무엇일까? 나에게 꿈을 이루어간다는 의미는 ‘나의 일’과 ‘나다움’을 직장에서 그리고 일상생활 속에서 끊임없이 일치시키는 노력이다. 나의 학창 시절 꿈은 기자였다. 중학생 시절부터 책을 워낙 좋아했고, 신문방송학과를 들어가고 싶었지만 여러 가지 현실적인 여건이 되질 않아 경영학과를 갔다. 하지만 나는 결국 글을 쓰는 일을 지금도 하고 있다. 내가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까진 가져가진 못했지만 일상에서 글을 쓰는 일을 통해 언젠가는 그 비슷한 영역 근처까지는 가지 않을까 막연히 생각하면서 시간만 나면 쓰고 또 쓰고 있다.


사회생활의 출발선에 선 세 사람

한 명은 공장 기술자, 또 다른 한 명은 전자회사 평사원 그리고 나머지 한 면은 공무원 9급 면서기이다.


첫 번째,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공장 기술자는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LG전자 통OO 세탁기 많이들 알 것이다. 그걸 만든 사람이 바로 “세탁기 고졸 신화”로 유명한 LG전자 조성진 전 부회장이다. 세탁기에 대한 끊임없는 열정과 연구로 고졸 공장 기술자에서 대기업 부회장의 자리까지 올랐다.

두 번째, 전자회사 평사원은 바로 “삼성반도체의 신화”로 불리는 권오현 전 회장이다. <초격차>라는 저서로 더욱 유명해진 분이다. 나도 이 책을 읽으면서 삼성반도체가 어떻게 세계 유수의 경쟁사들을 물리치고 반도체 분야에서 정상 자리를 유지하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이 분은 삼성반도체 평직원부터 시작해서 조직의 최고 자리까지 올라선 전문경영인으로서는 가장 성공한 분으로 꼽힌다.

출처:나무위키

이렇게 민간분야에서 평사원에서 시작하여 기업의 최고의 자리까지 오른 ‘신화의 주인공’이 있었기에 많은 사람들이 대기업 취업과 그 안에서의 또 다른 성공을 꿈꾸고 있는지 모르겠다.


마지막 9급 면서기 한 명

이 분은 지금 어떻게 되었을까? 거제도에서 행정 9급 면서기로 시작해서 경기도청, 행정안전부를 거쳐 마지막 공무원 생활을 울산광역시에서 근무하고 퇴직한 김윤일 울산광역시 전 시민안전실장님에 대한 이야기이다.


사실 지자체 공무원 9급에서 시작해서 이분처럼 광역지자체와 중앙부처까지 두루 거치면서, 광역시에서 실장급으로 퇴직하는 경우는 굉장히 드물다. 거기에다 퇴직과 함께 <공무원 상위 1%에 도전하라>는 후배 공무원을 위한 책까지 출간했다. 나도 이 책이 아니었다면 이런 분이 공직에 근무했다는 것도 몰랐을 것이다. 사실 앞서 내가 ‘공무원다움’ 으로 정리한 ‘프로정신, 균형감각, 품격유지’ 이 세 가지를 김윤일 전 실장님은 평생을 실천했고 그 결과, 거제도 9급 면서기로 시작해 광역시에서 3급까지 오른 경우다. 김윤일 전 실장님의 이야기를 통해 나는 공무원이란 직업도 현실에서 훌륭한 롤모델을 계속 찾아내고 알린다면 지금보다 훨씬 더 긍정적으로 일반 사람들에게 받아들여질 수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내가 쓴 ‘애썼다, 오늘의 공무원’이 공직의 중간쯤, 어디로 가야 할지 여전히 고민하는 가슴 꽉 막히는 고구마 같은 책이라면, 김 전실장님의 저서는 성공한 상위 1% 공무원의 명쾌함이 가득한 사이다 같은 책이다. 성공하는 공무원의 진짜 이야기가 궁금하신 분들은 꼭 한번 읽어보시길 추천한다.


"너, 공무원이나 되라!"

이런 말 나는 많이도 들었다. 딱히 할 것이 없으면 공무원 준비나 하라는 말. 공무원이 여전히 인기가 많구나 하는 뜻으로도 들렸지만, 한편으로는 씁쓸한 기분도 들었다. 이제 겨우. 나름 행정 분야의 전문가라는 자부심도 느끼며 일하고 있는데, 이것저것 선택할 직업이 없으면 하는 것이 공무원 준비인가라는 그런 허탈감 비슷한 느낌 때문이다. 대통령도 공무원인데, 왜 아이들은 공무원이라고 하지 않고 대통령이 꿈이라고 말하는 걸까요. 공무원도 하나의 꿈이 될 수 있지 않을까?

한창 미래의 꿈을 꾸는 시기인 중고등교 시절, 취업을 준비하던 20~30대. 중간 중간 중요한 순간에서 내게 진짜 필요했던 것이 무엇일까 한번 고민해 봤다. 그것은 바로 질문이다.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나에게 던지는 질문이다.


공무원 영지 ‘나를 향한’ 질문들

학창시설, 공시생, 공무원 1년차, 공무원 7년차, 공무원 13년 차에 나는 어떤 질문들을 제게 던졌고, 또 “아 이때, 나는 바로 질문이 필요했어”라고 생각하고 있을까.

이 글을 읽은 독자들에게 내가 바라는 점은  딱 하나. 바로 제대로 된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것이다.

“나는 무엇을 할 때 가장 즐겁지?”“내가 행복하려면 무슨 일을 해야 할까?”


나의 대답은.

내 안의 답을 생각하면서 새삼 공무원이 되어 언제 내가 가장 행복했는지 되돌아보았다. 그러다가 예전 부서에서 만든 자료들을 검색해 봤다. 신기하게도 나는 이미 년 전에 답을 알고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공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

약 6년 전 근무하던 지역의 둘레길을 걷는 행사를 담당하던 때. 가족단위 참여자가 대부분이었고, 중간중간 쉬면서 아이스크림도 나눠먹고 그렇게 두어 시간 걷는 일정이었다. 무엇보다 걷는 길 내내 진행하는 공무원들과 주민들의 얼굴에서 웃음이 떠나지 않았던 시간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같은 구청 비슷한 시기에. 그 지역 고등학생 30여 명과 함께 봉사단을 만들어 활동을 지원했다. 1년 동안 지역의 축제 자원봉사, 환경정비, 발표회 등을 아이들과 함께 하면서 행사장 여기저기를 많이도 돌아다녔다. 당시 마지막 발표회를 끝내고 강당에서 해맑게 장난치듯 포즈를 잡은 아이들의 사진을 찍으며 카메라 렌즈 뒤에서 나도 모르게 지었던 미소가 새삼 떠오른다. 그때를 나는 공직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으로 지금도 기억한다.

이렇게 나는 진짜 공무원이 되어가는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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