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생, 워킹맘 그리고 영국(7)
맨체스터 3일째 아침
2023.2.10(금) 07:52
점점 늦게 눈이 떠진다. 오늘은 6시가 넘어서 잠이 깼다가 알람을 꺼고 멍하게 누워있다가 7시가 넘어서야 벌떡 일어났다. 7시 반쯤 해가 뜨는 이곳은 그제서야 차량들이 돌아다니고 바깥이 조금씩 시끌벅적하기 시작한다. 간간히 들리는 싸이렌 소리도 있다. 조금전에도 경찰차인지 구급차인지 구분되지 않는 요란한 경보음 소리가 울렸다. 어젯밤에도. 낮에 버스를 타고 있을때도. 싸이렌을 울리며 긴급차량은 어딘가로 다급하게 달려가고 있었다. 그 순간만은 집에 있는듯 착ㅇ각에 빠졌다.
오늘 아침은 문득. 어제 축구장 투어를 마치고 돌아오는 버스안에서 보았던 중년 아저씨가 떠올랐다. 안내원들이 입는 형광색 유니폼을 입은 채 피곤한 얼굴로 버스에 올라 빈 좌석을 찾아서 털석 주저앉았던 분이다. 내가 조금 뒤쪽 좌석이기도 했고 그의 유니폼때문인지 나도모르게 그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퇴근시간 지친 몸을 이끌고 집으로 향하는 아버지들의 모습은 한국이나 영국이나 비슷한 느낌이다. 그 주위를 둘러싼 젊은 사람들은 각자의 휴대폰으로 화장품광고, 누군가의 인스타그램, 챗팅 등. 나름의 즐거움에 빠져 있었다. 퇴근길 붐비는 버스안에서 유독 중중년의 그 아저씨는 화려한 스마트폰폰 액정화면 대신 앞자리를 초첨없이 바라보며 있었기에 더욱 내눈에 들어왔다.
나도 요즘은 퇴근 후에 모든 에너지가 소진된 느낌이다. 그래서 우선은 집에 가고싶다는 생각뿐이다. 가서 씻고 아이 밥을 챙기고 그리고나서 나의 공간에 '털썩' 주저앉으면 그리 편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런 느낌이 아닐까. 그 와중에 옃자리 중학생 아이는 게임에 정신없이 빠져 즐거워한다.
인생의 시점마다 각자 편한 자리가 다르다. 세상을 움직이는 동력을 미래의 세대에게 넘겨줄 때는 과감하고 미련없이 줘야한다. 그리고 조용히 뒤로 물러앉아 조금은 여유있게 자신과 세상을 돌아볼줄 아는 것. 그것이 지금 내 나이에서 내 위치에서 해야할 일 같다. 여행내내 아이에게 나와 같은 마음을 강요하지 않으려고 무던히 애를 쓰지만 생각만큼 잘 되진 않았다. 아이도 나도 조긍씩 양보하면서 그렇게 지내고 있다. 강요하지 않는 삶. 자유롭게 살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형광색 유니폼을 입은 버스 안 아저씨에게도.
오늘 맨체스터는 하루종일 구름이 낀단다. 지난 일주일 햇빛 쨍쨍한 맑은 날을 경험했는데 이제는 흐린 날을 즐길때도 되었다. 역시 나는 운이 좋은 사람이다. 골고루 다양하게 여기 날씨를 맛볼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