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장실과 포크. 두 개 발음때문에 나는 여행내내 난감한 표정의 현지인들과 마주해야 했다. 영어를 너무 오랫동안 쓰지않아서 그런것 같다. 예전에 내게 그다지 어려운 단어가 아니었는데... 맨체스터에서의 마지막 밤을 나는 아들과의 발음교정시간으로 채우고 있다.
여긴 편의점 대부분을 테스코익스프레스가 차지하고 있다. 과일부터 맥주, 샌드위치까지 거의 모든 생활 필수 식음료를 테스코익스에서 살수 있다. 숙소가는길에 들른 그곳에서 수박을 좋아하는 아들이 조각수박을 골랐다. 계산대에서 캐셔를 바라보는데 'fork'발음이 왜이리 어려운지 나도모르게 주눅이 들었다. 역시나 p와 f를 잘못 발음한 탓에 계산원이 못알아듣는 표정이다. 더 분발하자. 앞으로 대학원 가면 영어수업도 있을텐데 어쩌려고.
아무튼. 맨체스터에서의 마지막 날은 박물관 두군데와 미술관으로 알차게 채웠다. 맨체스터과학산업박물관은 숙소에서 트램 1~2정거장 거리에 있다. 외곽의 castle field 바로 옆에 위치한 박물관으로 단정하면서도 활기찬 기운이 느껴지는 곳이었다. 아무래도 2층의 놀이터때문이다. 아들이 가장 재밌어했던 장소도 바로 그곳이었다.
내게 가장 기억에 남았던 것은 롤스로이스 거의 초기 모델을 직접 눈으로 본 것이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차 "롤스로이스'의 출발점이 맨체스터였다는 사실과 '롤스'라는 엔지니어와 '로이스'라는 탐험가가 함께 만든 자동차가 바로 롤스로이스다. 전혀 다른 분야의 전문가 둘의 조합이라는 사실에 다시금 놀랐다.
박물관 투어를 통해 맨체스터가 영국 산업혁명의 중심에 있었던 것은 방직산업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도 알게되었다. 자동차와 섬유산업이라니. 잘 어울리지 않는 조합같지만 롤스로이스처럼 이곳 영국에서는 충분히 가능한 성공 모델이란 생각이 들었다. 혁명, 아이디어, 민주주의, 의회...영국을 상징하는 몇가지 이미지에서도 그런게 마구마구 느껴지니까.
과학박물관에서 맨체스터 산업과 경제의 밝은 부분을 보았다면 오후에 혼자서 간 'People's Museum'은 산업혁명과 뒤이은 대공항으로 소외된 노동자, 혁명가, 노예, 여성, 장애인, 이민자들의 권리를 찾기위한 역사를 보존한 곳이다.
영국 산업혁명이 빛과 어둠의 빛이라면 그 빛을 위한 어둠의 역할을 상대적 사회적 약자들인 이들이 담담했던 것이다. 다행히도 영국인들은 제대로 기억하고 보존하고 존중하는 법을 아는 사람들이다. '노동자들의 노래'를 30여곡 선별해서 박물관 안 뮤직박스에서 무료로 언제든지 들을 수 있다. 긴 하루의 노동이 끝나고 근처 바(bar)에서 맥주 한잔을 앞에 두고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그들의 모습이 노래와 함께 내 머릿속에 그려졌다.
런던 입국 첫날, 철도파업으로 숙소로 가는 급행 기차가 취소되면서 여러가지 곤란한 상황에 처했기에, 런던에 머무는 내내 나는 파업에 대하 무작정 거부감부터 들었다. 하지만 오늘 people's 박물관을 다녀와서는 영국노동자들의 깊은 역사를 조금이나마 알게되어서인지 한결 마음이 누그러졌다. 그렇다. 아는만큼 이해할 수 있는 것이다. 알기 전에는 가능하면 판단하지 말자. 일단, 그려러니..가 어쩌면 최선일수도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