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영지 Aug 11. 2024

PT 3개월이 내게 준 선물

우리가 가진 두 가지 근육의 균형에 대하여

(영지)"안녕하세요! 늦은 시간 죄송합니다. 혹시 PT문의드려도 될까요?

(헬스장)"안녕하세요 회원님^^ 방문 가능하실까요~?"

(영지)"아 지금요?"

(중략)

(PT선생님)"회원님! 일도 하시고 학교도 다니시는데 PT수업 가능하시겠어요?"

(영지)"아, 그래서 PT가 제게는 필요해요. 체력을 키워야 일도 하고 공부도 할 수 있잖아요"

(PT선생님)"아.. 그렇죠...", "그럼 지금 등록하고 수업 한번 받아보시겠어요?"

(영지)"네, 저 이미 PT 받기로 결심하고 온 거니까, 바로 수업하시죠!"

 

지난 4월 나의 생일날 저녁.

나는 우리 동네 헬스장에서 PT상담과 함께 등록비를 내고 수업부터 냅다 시작했다. 처음 가본 헬스장, 처음 만난 PT선생님. 돌이켜보면 개인적으로는 꽤나 리스크가 큰 거래가 아니었다 싶다. PT상담문자를 보내자마자 바로 헬스장에서 답이 왔고, 밤 10시가 훌쩍 지난 시간임에도 방문이 가능하다는 답변에 그 순간 나는 이 순간을 놓치면 뭔가 나중에 단단히 후회할 것 같은 막연한 느낌이 들었다. 평소보다 푸짐했던 저녁 생일상을 먹은 탓에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포만감은 기분 나쁜 거북함으로 바뀌었다. 과제준비를 위해 앉은 책상 앞이 아닌 침대에 길게 널브러진 나의 몸을 어떻게든 일으켜세웠다. 퇴근 후 피곤함으로 찌든 얼굴을 모자로 겨우 가리고 추리닝바지 차림으로 헬스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늦은 밤 집 현관문을 나설 때부터 나는 이미 결심을 하고 있었던 것 같다. 내 몸을 위해 뭐든 해야 할 시점이 드디어 온 것 같다고


최근 몇 년 동안 조금씩 불기 시작한 체중과 체지방량.

몰랐던 건 아니다. 하지만 매일 조금씩 늘고 있던 터라 실제 체형의 변화를 그다지 심각하게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그리고 일과 공부, 가족... 일상의 여러 가지 문제들에 밀려서 정작 내 몸에 대한 걱정은 그다지 급한 문제로 와닿지도 않았다. 다만, 한 가지 꽤나 내 신경을 거슬리게 한 것 바로 옷사이즈였다.


수년동안 큰 불편 없이 입고 다니던 재킷, 코트, 바지와 치마들. 오랜 시간 나를 포근하게 때론 시원하게 감싸주었던 정든 옷들이 점점 내 몸을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매일 아침 출근시간 나를 꽤나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외출 때마다 몸에 꽉 끼어서 맞지 않는 옷들과 거울 앞에서 씨름했다. 상의든 하의든. 옷 사이즈가 바뀌는 문제는 생각보다 복잡하다. 갖고 있던 옷들에 대한 정리와 더 큰 사이즈의 옷을 새로 마련해야 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까지 뒤따르기 때문이다.


옷을 내 몸에 맞출 것인가 아니면 내 몸을 옷을에맞출 것인가. 길게 혹은 짧게 체중의 변화를 겪는 누구나 가지는 자연스러운 고민이 바로 몸을 바꿀 것인가 아니면 옷을 바꿀 것인가가 아닐까. 체형이 불어나면서 점점 작아지는 나의 옷들과의 실랑이도 길어졌다. 더 이상 내가 가진 옷에 내 몸을 맞추는 건 불가능한 일처럼 보였더. 체형을 바꾸느니 더 큰 사이즈의 옷을 사는 것으로... 나의 마음은 점점 막다른 지점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렇게 꾸역꾸역 고민의 시간만 허비하고 있던 나에게 누군가 던진 말 한마디는 그동안의 고뇌를 한 번에 끝내고 나를 직접 '행동'하게 만들었다.


건강검진 그리고 체지방!

올해 조금 이른 건강검진을 받으면서 나의 건강자료 전반에 대해 의사 선생님과 문진을 하는 시간이 있었다. 그날 나를 처음 본 의사는 수년 치 자료를 쪽 훑어보더니 딱 한마디 내게 던졌다. "체지방이 너무 많네요. 빼셔야겠네요" 어릴 때부터 다소 마른 체질로 체중에 대해서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살아온 내게 체지방을 빼야 한다는 그 말은 꽤나 당황스러운 진단이었다. 그날 이후 '체지방을 빼야 한다'는 의사의 조언은 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고 어떻게든 조치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더 강해졌다.


그 후 얼마 지나지 않은 주말 오후.

장을 보기 위해 아파트 상가 지하층을 향하는 에스컬레이터에 서서 주위를 두리번거리고 있던 나의 시선에 마트 건너편에 위치한 헬스장이 들어왔다. 하얗게 비추는 밝은 실내조명과 그 안에 즐비하게 놓인 이름 모를 수십 개의 헬스기구들이 보였다. 주말이어서 이용자가 그다지 많지는 않았지만 저렇게 많은 헬스기구가 사람의 부위별 운동에 사용된다니 신기하고 재밌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헬스장 입구 앞에 세워진 홍보배너에는 '헬스, 체형교정, 다이어트, 010-0000-0000'이 큼직 막하게 쓰여 있었다. 잠시 후 물건을 사서 나오는 길에 나는 배너 앞을 지나치려다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그리고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어 사진을 찍었다. '언젠가 이 연락처가 필요하지 않을까'하는 그 순간의 막연한 생각이 지난 수개월 동안 내게 일어난 모든 일의 시작이었다.


첫 상담 후 PT등록

건강검진을 받은 지 2주 후 나는 연락처를 우연히 찍어두었던 상가 헬스장에 PT를 등록했다. 뭐 누군가는 헬스장 영업에 혹해서 바로 등록한 거 아니냐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어떻게 등록을 했든 그렇게 가볍게 단정해버리기엔 지난 3개월여 새하얀 조명과 검정 일색의 헬스기구가 대조적이면서도 신기해 보였던 그 공간 속에서 내가 땀 흘리며 치열하게 보낸 시간의 의미는 남달랐다. 그동안 내가 날려버린 체지방과 그 자리를 새롭게 채운 근육의 양만큼 무겁고 또 다채롭기까지 하기에.


3개월 전과 지금 나의 몸

지난 4월 말과 현재의 내 몸 사이의 가장 큰 변화는 무엇일까. 바로 체지방이다. 당시 내 몸에 있던 체지방 9킬로가 거짓말처럼 어디론가 사라졌다. 대신 그 자리를 새로운 '근육'들이 조금씩 채워지고 있는 중이다. 내 마음과 몸 곳곳에서. 아마 지금 이 순간도 조금씩 자라고 있을지도 모르겠다.


몸 근육

먼저, 몸에서는 등과 허벅지, 팔, 복근, 엉덩이 등 몸 여기저기에 근육이 붙으면서 몸을 지탱하는 뼈대와 함께 휘어지고 말려있던 체형이 조금씩 꼿꼿해지고 펴지는 과정에 있다. 3개월이라는 짧다면 짧고 길다면 긴 그 시간 동안 곳곳에서 숨겨진 근육을 발견하고 끄집어내고 새롭게 만들어지는 모습을 내 눈으로 바라보고 손끝으로 직접 만져보고 피부로 그 감촉을 느껴보았다. 그 과정에서 이 아이들(?)에게 내가 너무 무관심했던 것이 아닐까 하는 미안함이 들었다. 태어나서 나와 365일 24시간 늘 함께하면서 (병원을 가야 하는 심각한 고통을 제외하고) 몸 이곳저곳에서 미세하게 보내오는 갖가지 신호에 대해 나는 그동안 충분한 관심을 주었던가.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없었다. '뭐 이제라도 잘하면 되는 거야' 그렇게 스스로 위안을 하면서 나는 온 신경을 몸에 집중하고 또 집중했다. 그렇다.  


마음 근육

다음으로 마음 근육에 대해서는 할 얘기가 좀 더 많다. PT와 함께 시작한 식단관리. 먹는 것을 통제하는 일은 내가 그동안 가졌던 음식에 대한 근본적인 생각을 완전히 바꿔놓았다. 음식을 먹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사실 나는 그걸 단순히 배고픔을 달래는 수단으로만 여겨왔다. 그렇기에 매 끼니때마다 밀가루와 튀김을 피하고 고단백 저탄수화물로 식사의 양과 질을 고민해서 먹어야 하는 일은 '식욕'이라는 내 안의 오래되고 익숙한 본능을 참아내는 마음속 '근육'까지 길러준 것 같다. 거기에다 하루종일 수분이라고는 커피밖에 먹지 않았던 내게 최소 1.5리터 이상의 물을 마시는 일은 한마디로 고통 그 자체였다. 더욱이 늘어난 수분 섭취량만큼 화장실을 가는 횟수도 잦아졌기에  이 모든 불편함들을 참아내는 것 자체가 '인내의 근육'을 만드는 과정이었다. 3개월여 동안 평생 한 번도 하지 않았던 식단관리와 1.5리터 이상 물 마시기는 욕구와 고통을 '참아내는' 마음 근력을 키우는데 탁월한 수단이었다.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빵을 커피만큼이나 사랑했던 내가 빵 없이 3개월 이상을 버텨낼지를. 이제 겨우 3개월 버틴 걸로 섣부른 자신감이라고 누가 뭐라 할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지금까지 길러낸 조그만 마음속 근육을 잘 지켜내서 더 큰 근육으로 키워낸다면. 나중엔 어쩌면 큰 일을 도모하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이 내 안에 생긴 것 같다. 이것으로 충분하지 않을까.  


PT 3개월이 내게 준 선물

자, 이제 드디어 'PT 3개월이 뭐 어쨌다는 건지'에 대해 결론? 아니 나름의 의미를 부여할 차례다. PT는 단순한 육체 운동이 아니다. 몸과 마음의 근육 운동을 결합한 균형운동이다. 여기서 균형이라는 단어가 왜 갑자기 등장했을까. 나의 경우, 최근 몇 년 동안 마음 근력 기르는 것에 너무 치중한 나머지 내 몸에 체지방이 과도하게 불어나는지도 모르고 살아왔다. 그래서 이번 기회를 통해 몸과 마음에 대한 관심, 관리 그리고 근력운동이 둘 다 똑같은 중요도로 필요함을 알게 된 것은 정말 내게 소중한 선물이다. 몸과 마음 근육의 균형운동이 어쩌면 PT에 대한 나의 정확한 시선이 아닐까 한다. 이걸 알게 된 이상, 앞으로 나는 근력운동을 평생 놓지 못할 것 같다.


일, 공부, 운동의 3종 선물세

일, 공부 그리고 몸과 마음의 근력 운동까지. 내 인생을 단단하게 지탱하는 삼각의 꼭짓점이 이제야 완성된 느낌이다. 마치 3종 선물세트처럼,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생을 제대로 이끌어 가는 비밀의 보물상자를 발견한 것 같은 근거 없는(?) 자신감에 나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살며시 떠오른다. 아무튼, 운동이 답이다!

 



(영지)선생님, 혹시 다른 운동도 해보셨나요?

(PT선생님)네, OOO종목 선수생활을 꽤 오래 했습니다. 근데 직업적으로는 전망이 밝지 않아서요...

(영지)아, 그렇군요. 혹시 헬스트레이너로 직업을 바꾸신 이유가 있어요?

(PT선생님)헬스를 시작하고 몸의 근육과 골격에 대해 본격적으로 공부하면서 개인적인 재미를 많이 느꼈어요. 지금도 (회원님들 강습하면서) 틈틈이 관련된 교육을 듣고있어요.

(영지)우와, 대단하시네요. 저도 이번에 PT받으면서 선생님 덕분에 제 몸에 대해 새로운 시각을 가지게 되었거든요.

(PT선생님)자, 회원님! 오늘은 하체운동 위주로 가볼께요. 이쪽으로 오시죠!

(영지) 넵!


#헬스pt #pt3개월 #어센틱짐 #헬스 #운동 #건강

매거진의 이전글 '밀물 때'와 '새들의 나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