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에서 느껴지는 불편함을 정리하는 방식
"애매하네..."
(주차장 들어와서 차문을 열면서 나즈막히 나는 속삭였다)
얼마전 오랜만에 지인과 점심을 먹고. 각자의 화이팅을 기원하며 웃는 얼굴로 헤어진 후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나는 이렇게 중얼거렸다. 그날 만남부터 헤어지는 순간까지, 왠지모를 애매함이 내 안에서 사라지지않았다. 그리고 헤어진 직후, 그 만남의 느낌을 다시 확인하듯 곱씹고 있었다. 나는 뭔가 더 해야하나 찜찜함이 남았지만 이내 잊어버리자 마음먹고 다음 일정을 위해 차를 몰았다.
그리고 며칠 후 오늘.
어제 꽤나 즐거웠던 지인들과의 송년모임 후 카톡 멀티프로필 친구 명단에 어제 만난 지인의 이름을 추가하기 위해 친구목록 메뉴를 열었다. 그러다가 최근 나에게 만남내내 애매함을 제공했던 그 사람의 이름이 보였다. 너무도 자연스럽게 그 이름 옆의 '해제'버튼을 눌렀다. 그제서야 며칠 전부터 찜찜했던 이름모를 감정이 사라지며 마음 한켠이 시원해졌다. 애매함의 정리.
애매할때는 그때그때 정리가 필요하다.
방치된 애매함은 내 안에서 또아리를 틀 여지를 남긴다. 그래서 어떤 형태로든 일상의 다양한 형태의 애매함에 대한 나만의 '정리'를 의식적으로 해야한다. 이번에는 카톡 멀티프로필 친구목록 해체로 실천했을뿐이다. 뭘 이렇게까지 해야할까싶은가? 카톡 멀티프로필은 수백명의 연락처 중, 극소수의 사람들에게만 허용하는 유일한 사생활 공유 영역이다. 그래서 의미가 있다. 이 그룹의 포함여부는 관계에 있어서 나만의 기준선이기도 하다. 결코 애매하지않다. '해제'와 '포함'만 있을 뿐. 관계에 있어 애매함의 가지는 취약함은 상상보다 크다.
관계에서 애매함이 가지는 이중성.
사람들과의 관계는 눈에 보이지않지만 시간과 감정, 돈, 노력까지 각자의 자원이 적지않게 투자되는 영역이다. 동시에 유지관리를 위한 지속적인 세심함도 필요로 한다. 눈에 보이지않기에 상황과 순간의 감정과 기분에 따라서 상대와의 관계가 무엇인지부터 그 깊이와 온도까지 완전히 다르게 보일 수 있다. 사람과의 관계는 각자 다르게 규정될 수 있기에 유연해보이지만, 동시에 각자의 가장 취약한 내면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그 속에 만약 '애매함'이 점점 더 크게 자리잡는 다면 어떻게 될까? 그렇게 우리는 점점 '애매한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다. 사람에 대한 취향부터 음식, 취미, 패션, 지하철 좌석까지 선명하지 않은 태도는 즉각 애매하지않은 사람들에게 일상의 주도권을 (그걸 스스로 의도를 했든 아니든) 자연스럽게 내어준다.
일상에 깃든 애매함은 생각보다 위험하다.
짜장? 짬뽕?
양념치킨 혹은 후라이드?
산이냐 바다냐?
이런 종류의 취향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사람들과의 관계에서 무심코 드러내는 애매한 태도는, 결국 '나'를 관계에서 지워버리는 행동과 같다. 누군가와 함께하는 시간, 종종 애매하고 설명되지않는 불편함이 느껴지는가? 내가 며칠전 느꼈던 그럼 애매한 기분. 그럼 그 관계는 원점에서 다시 돌아봐야하지 않을까? 내가 오늘 멀티프필 친구목록에서 주저없이 지원버린 그 지인은 과거 몇번 비슷한 불편감을 내게 느끼게 해주었기에 조금은 늦은감이 있었던 애매함의 '정리'였다. 그래서 어젯밤 송년모임에서 결정한 나의 2026년 새해 키워드는 '여유'다.
애매함은 여유로 관리가 될까?
이 글을 시작하면서 '애매함과 여유'를 제목으로 정하면서, 한 템포 쉬어가는 '여유'로 내년도 나만의 키워드를 정하면서, 도대체 이걸 애매함과 어떻게 연결할지 그 애매함에 고민이 되었다. 그리고 이제 글을 마무리하는 시점에 나름 정리가 되었다.
자신감과 기다림이라는 여유
첫째, 관계를 시작할지말지의 애매함은 내 모습 그대로의 자신감의 '여유'로.
둘째, 관계를 정리할지말지의 애매함은 일단 정리하고 기다리는 '여유'로.
그렇게 2026년, 내가 기대하는 여유의 모습은 '자신감과 기다림이라는라는 조금 더 선명한 옷을 입게 되었다. 뭐, 그렇다고 애매함이 내안에서 완전히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다. 그래도 '여유'에게 좀더 눈에 띄는 옷을 입혔으니 애매함이 조금은 천천히 드러나지않을까.
(영지)"OO아, 방금 맥주한캔을 먹었더니 화장실을 가고싶네."(글을 쓰다말고 옆에 있는 친구에게 툭 던진다)
(영지)"근데 샤워까지 같이 하고와야하나 애매하네..."(고민하다가 다시 중얼거린다)
(친구)"그것도 애매함이냐?"
(영지)"그렇지, 일상에 스며든 애매함이 바로 이런거 아니겠어!"
(친구)"가끔씩 상대방을 배려할때 애매함을 쓰지않니?"
(영지)"흠... 애매함이 늘 나쁜건 아니지..."
(친구)"어디에다 그 애매함을 쓰느냐에 따라 차이가 있지...친구와의 약속을 상처받지않게 거절할때?"
(영지)"그럼 나는 애매함이 조금 더 필요한 사람같은데...애매하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