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도로 낭만 6개와 60학점

대학원 3년차가 내게 남긴 것들

by 영지

이틀 전, 2025년 12월 19일.

올해 대학원 가을 학기가 공식적인 방학에 들어갔다. 아, 드디어 학교 수업에서 해방되다니. 이런 날이 오긴 오는구나. 나에게 이번 방학은 조금은 남다르다. 인생 두번째 대학원에서 6번째 학기를 마쳤다. 그리고 내게 남은 건? 60학점. 그렇다.


평일 퇴근 후, 토요일 하루종일.

지난 3년간 나는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왕복 4시간 거리의 학교를 수백번 오갔다. 그리고 한 학기를 마무리할때마다 나의 학적부 자료에는 차곡차곡 학점이 쌓이기 시작했다. 첫 학기를 마치고 전산으로 확인한 나의 첫 학점이 10학점이었는데 벌써 60학점이라니. 조기 수료 학점을 채우고 맞은 첫 방학 첫 주말. 나는 노트북을 들고 동네 빵집 작은 테이블 하나를 자리잡고 앉아있다. 힘들었지만 낭만이 있었던 3년의 시간을 조금은 정리해 두고 싶었기 때문이다.


힘든 여정 속 체력과 열정은 사라지고 있었다.

대학원 1년차때 유난히 더 힘들었던 것 같다. 평일과 토요일 매주 3번씩 학교를 오가는 생활이 1년이상 이어졌다. 퇴근 후 서울 도심의 극심한 교통정체를 뚫고 학교 주차장에 도착하는 순간. 그때 이미 나는 피곤함에 눈은 풀렸고 어깨는 한없이 쳐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긴 한숨과 함께 전공 교재와 가방을 둘러메고 늦지않게 강의실로 뛰어올라갔다. 발제와 토론 중심의 대학원 수업은 집중하지 못하면 아무것도 가져가지 못한다. 힘들게 학교에 왔는데 뭐든 머리에 마음에 넣어가야했다. 그래서 나는 어떻게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있있다. 그렇게 학기가 지날수록 나의 학점은 한점한점 쌓여갔다. 하지만, 동시에 나의 체력과 열정은 조금씩 바닥이 나고 있었다. 공부 그 자체보다는 공부를 하기위해 학교를 오가는 여정에 나는 점점 찌들어갔다.


하지만, 낭만도 있었다!

그렇다고 모든 시간이 힘든 건 아니었다. 특히, 평일 저녁 수업 후 11시가 넘어 경부고속도로를 타고 내려올때면. 나는 몰려오는 피곤함과 졸음을 쫓기위해 음악을 크게 틀어놓곤 했다. 졸음껌은 필수였다. 눈을 비비며 검정색의 네모낳고 앙증맞게 생긴 졸음껌 두 개를 입에 툭 털어넣고 큰 소리로 가사를 흥얼거렸다. 그러다가 손가락으로 박자를 맞추면서 급기야 몸을 흔들흔들 움직인다. 그렇게 음악에 취한건지 졸음에 취한건지 모를때쯤 어느새 집 주차장에 도착해 있곤 했다. 나는 이 기억을 지금 '낭만'으로 부르고 싶다. 내가 스스로 선택한 힘든 여정 안에서 나름 찾아낸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 꽤 지난 유행어지만, '소확행'이 나는 여전히 좋다. 인생은 어짜피 고통이 아닐까. 그 속에서 찾아내는 순간순간의 작은 행복에서 나는 내가 살아있음을 느끼는 사람이다. 그래서 저녁 수업 후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힘듦이 아닌 낭만으로 기억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이제는 돌아가고싶어도 갈수 없는 시간이 되었다. 그래서 더욱 그렇다.


인생 두번째 대학원 3년차가 내게 남긴 것?

이 지점에서. 대학원 6학기동안 내게 남은 게 달랑 60학점이라고 결론을 내기엔 조금 아쉽다. 그래서 이렇게 쓰고 싶다. 고속도로 '웃픈' 낭만 6개. 사실 위에서는 흥겹게 노래 가사를 따라부르면서 내려오는 장면만 넣었다. 하지만 쓰다보니 그 낭만의 시간 중간중간 흘렸던 눈물이 함께 떠오른다. '내가 왜 이렇게 힘든 여정을 선택했을까'하는 후회와 (그래서 어디에도 하소연할 수 없었던) 스스로 위한 위로의 눈물이기도 했다. 몇번인지 기억은 잘 안나지만 유쾌하게 노래부르던 낭만 3번과 나를 위로하고 다독이던 낭만 3번까지 총 6번이라고 하자. 그래서 '고속도로 낭만 6개'가 60학점과 함께 내게 남았다.


대학원 3년차, 학점과 낭만이라는 이상한(?) 조합이 내게 남았다.

이제 대학원에서 최종 학위를 위해 2년을 더 달려가야 한다. 그땐 또 무엇이 내게 남아있을까? 학위보다 더 궁금한 낭만을 대체하는 그 무언가... 과연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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