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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May 02. 2019

싱가포르가 '공무원 천국'이면 여긴?

동 주민센터 시간제 근무 그 네 번째 이야기

미국 USA투데이는 리셴룽 싱가포르 총리의 연봉이 161만 달러(약 18억 7000만 원)로 각국 정상 중에서 1위라고 발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40만 달러) 보다는 4배나 많은 규모다. 그나마 많이 깎인 액수다...(중략)... 2007년 총리 연봉은 37억원, 장관 연봉도 15억원을 웃돌았다. 많이 낮아졌지만 지금도 장관 5억~8억원, 초임과장 1억원대로 세계 최고 수준이다.
<2019.5.1.일자 한국경제신문 '천자칼럼' : '공무원 천국' 싱가포르>


지난 노동자의 날 어느 경제신문의 칼럼 내용이다. '공무원 천국' 싱가포르.  여기선 정부가 인재를 공직으로 모으특별한 전략이 '고액연봉'이란다.  나라 총리가 무려 18억을 받는  시대에 나는 대한민국의 공무원으로 살고 있다. 그리고 공무원 보수규정에 따른 나의 급여를 계산해 본다. 그나마 지금 '시간선택제' 신분이라 본봉의 절반, 거기에다 '차포?' 다 뗀 금액을 수령하고 있는 나. 칼럼 속 싱가포르 고위 공무원들의 수억 대 연봉은 이 나라의 평범한 공직자인 내게 과연 어떤 의미를 남기는가. 그냥 남의 나라 이야기로만 치부해야 하는 걸까?




싱가포르 정부처럼 고액 연봉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우리나라 공직의 최고 장점을 꼽으라면 단연 휴직제도와 시간선택제 전환제도다. 나는 지금까지 육아와 학업을 위해 두 번의 휴직과 한 번의 전환 제도를 이용했다. 현재 6개월 한시적으로 주 20시간 시간제 근무를 신청해서 동 주민센터에서 일하고 있다. 근래 들어 육아나 학업 등 다양한 이유로 정규직 공무원들이 나처럼 일시적으로 근무시간을 단축해서 전환하는 추세가 우리 조직에서도 급격히 증가하고 있다.  


물론 승진이나 인사고과 등 불이익은 어느 정도 감수하고 선택하는 것이다. 내 경우 승진보다 더 우선한 것이 있었기에 망설임 없이 시간제 근무를 선택했다. 이제 절반을 보냈고 남은 절반의 기간. 하루하루가 아쉬울 따름이다. 사실 승진이 얼마 남지 않은 내게 이 선택이 결코 평범한 것은 아니다. 실제로 몇몇 지인들은 '왜 하필 지금이냐'고 직접 물어보기도 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나는 "지금 내게 더 중요한 것을 선택한거고 그나마 '선택지'를 가질 수 있음에 감사한다"라고 답한다.


조직에서 성공한다는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 오랜 기간 고민해 온 나의 숙제였다. 늦은 나이에 민간에서 7년이라는 짧지 않은 경력을 가지고 공직에 들어온 나. 그래서 이 조직에서 소위 '빠른 성공'은 결코 내 얘기는 아닐 거라고 막연하게 생각만 했다. 하지만 현실 속 나는 너무도 달랐다. 몇 번의 승진 과정에서 '나도 똑같이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절실히 느꼈다. 이미 동기들보다 나이가 꽤 많은 내가 승진까지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불안감을 떨칠 수가 없었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운이 좋아서 '평범'하게 왔다. 근데 문제는 지금부터다. 나는 이미 다른 길을 선택했기에.


과연 남들과 비슷한 시기에 승진을 하고, 주요 보직을 가서 경력을 쌓고, 인맥을 만들고, 라인을 타고 그러다가 또 조금 이른 승진을 하는 것이 진정한 성공인가. 내가 2년 전 일과 공부를 병행하기 전에 끊임없이 고민한 것이다. 승진이든 보직이든 남들하고 비슷하거나 조금은 빨리 가는 게 내가 이 조직에서 뭔가 문제없이 잘 가고 있다는 '안전한 느낌'을 준다고? 진짜? 근데 왜 이미 그 자리에 있는 선배들이 그닥 행복해 보이지 않을까? 이런 질문들의 답을 찾기 위해 2년 전 MBA 입학을 결정했다. 그 후 학교에서 만난 교수님들과 민간의 각양각색의 경영인들과의 교류는 내게 기대 이상의 많은 것을 남겼다. 수년간 고민해 오던 '조직에서 성공 의미'에 대한 명료한 답도 그 속에 있었다.


나는 이제 더 이상 고민하지 않는다. 그래서 올해 초 시간제 전환으로의 결정이 그리 어렵지 않았다. 가끔씩은 조직의 중심에서 잠시 떨어져 나를 다시 돌아보고 호흡을 가다듬을 시간이 필요하지 않을까. 다행히 내가 공직자라서 그게 필요한 시기에 나는 '선택지'를 가질 수 있었다. '긴 호흡'으로 가는 성공은 그 나름의 의미가 있다고 믿고 있다. 삼성전자를 세계 반도체 시장 1위로 이끈 오현 회장의 저서 <초격차>에는 '시프트 프론트'라는 용어가 자주 언급된다. 기본으로 돌아가서 원점에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 지금 공직 11년 차, 조직의 말단으로 다시 돌아  현장에서 주민들과 다시 호흡하고 있는 내 모습에서 이 'Shift Front'를 떠올리는 건 무리일까.


이 모든 과정은 남들과 비슷한 경험으로 비슷한 시기에 따라가기만 하면 얻을 수 있는 그런 성공을 위한 것이 아니다. 나는 이미 그 길을 선택하지 않았다. 대신 '나만의 호흡으로' '나만의 색깔을 칠하면서' 가는 '나만의 성공길'. 그 위에 내가 있다. 남들보다 조금은 늦게 갈지도 모른다. 아니면 아예 탈선할 수도 있다. 모든 가능성은 열려 있기에. 우선은 열어 두어야 하기에 지금은 알 수 없다. 지금 내가 알고 있는 건 '이 방향이 맞다'는 것뿐.




싱가포르 공무원들의 고액 연봉이 왜 먼 나라 얘기가 되어야 하는가. 싱가포르는 리콴유 초대 총리의 유별난 공무원 사랑과 "적절한 대우가 공무원 청렴 유지에 필수"라는 나름의 철학이 바탕이 된 것이다. 우리의 경우는 물론 달라야 할 것이다. 중앙 정부는 물론 지자체 공무원들도 업무와 정책에서 탁월한 역량을 발휘하여 충분히 고액 연봉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과 풍토를 지금부터라도 만들면 되지 않을까?


사실 공직에 들어와서 자주 드는 느낌이 하나 있다. 공직 초반 나름 풋풋하고 야심에 찬 능력자들 이었던 동료와 후배들이 시간이 지나면서 점점 '하향 평준화'가 된다는 것이다. 이게 과연 나만의 착각일까? 그러면 얼마나 좋을까. 조직의 특성상? 설마. 도대체 왜 그래야만 하는가. 공직이 가진 공공성, 공정성, 경직성, 전통, 관습 등등 갖다 붙일 수 있는 이유와 변명은 참으로 많다. 하지만 더 이상 방관자가 되어 문제를 방치하는 것도 아닌 것 같다. 나란 사람이 뭐 얼마나 대단하게 이 조직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른다. 그럼에도 나는 그걸 꿈꿔 왔다. 그리고 그걸 실현하기 위해 나름의 '작지만 꼭 필요한 것들'을 일터에서 그리고 일상에서 실천하고 있다.


행정의 공공성과 경영의 효율성. 이 둘의 절묘한 융복합. 이를 통해 보다 합리적인 공공조직의 운영과 공직자 개인이 가진 개성, 창의성 그리고 무한한 잠재력이 맘껏 발휘될 수 있는 그런 공직 시스템을 만들고 정착시키는 것. 이것이 지금 내가 이 조직에서 만들어 가고 있는 '나만의 성공' 의미다.

이제 싱가포르만큼은 아니지만 한국 공무원도 박봉을 벗어난 지 오래다. 올해 연봉은 평균 6,360만원으로 3,519만원(국세청 2017년 기준)인 직장인을 크게 웃돈다. 그래도 민간으로 옮기는 우수 공무원 행렬이 이어지고 있다는 소식도 들린다. 공무원이 유능한 싱가포르와 민간이 유능한 한국의 같은 듯 다른 행보다.
<2019.5.1.일자 한국경제신문 '천자칼럼':'공무원 천국' 싱가포르>


'공무원이 유능한 싱가포르와 민간이 유능한 한국'으로 칼럼은 결론을 맺는다. 그렇다. 공무원에게 싱가포르가 '천국'이라면 여긴 달콤한 꿈에서 막 깬 후 맞닥뜨리 '씁쓸한 현실'이랄까. 그럼에도 나는 10년 전 가졌던 것과는 사뭇 다른 '장밋빛 미래'를 이 조직에서 꿈꾸고 있다. 과연 불가능한 미래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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