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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영지 Apr 21. 2019

유연성

우리의 '실패할 수 있는 권리'에 관하여

실패 안에서도 유머를 잃지 마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마라. 긴장을 늦추라. 그러면 주위의 모든 사람도 긴장을 풀 것이다.
-샘 월튼(월 마트 창시자)-


며칠 전 국립창극단 '패왕별희'의 대중적 흥행에 대해 정수연 뮤지컬 평론가가 주간지에 기고한 칼럼('패왕별희'의 성공이 던진 화두, 중앙SUNDAY 2019.4.20일자)을 읽었다. 내용에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칼럼 마지막 언급된 '실패할 수 있는 권리'다.


국립창극단의 '패왕별희'는 우리의 전통적인 '창극'중국'경극'합한 최초의 시도였다고 한다. 이 무모한 도전을 시작한다고 했을 때 극단을 바라보는 우려와 걱정의 시선이 얼마나 컸을지 쉽게 짐작이 된다. 


극단은 이전에도 몇 번 비슷한 시도를 했었단다. 이미 몇 번의 실패를 겪은 것이다. 작품성에 대한 비판은 물론 흥행도 끌지 못해 주위의 따가운 시선을 견뎌내야 .


그런데  상황에서 극단은 창과 경극의 조합이라는 새로운 도전을 다시 시도한다. 다행히 이번에는 달랐다. 작품성과 흥행.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다. 정수연 평론가는 이 성공이 결코 우연이 아니라고 한다. 전의 쓰라린 실패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것이다. 나는 전적으로 동의한다.


일반 극단이었으면 아마 어려울 수도 있었으리라. '국립'이라는 '공익성'을 가진 단체이기에 가능한 시도들이었고 실패를 견디면서 새로운 도전을 다시 할 수 있는 나름의 유연성을 유지할 수 있지 않았을까? 


그럼에도 극단의 일련의 실패와 도전 그리고 패왕별희의 성공이 있기까지 드러나지는 않은 '극단 내부 역량'과 실패에도 위축되지 않고 꾸준히 앞으로 나아 간 '유연한 조직문화'에 따뜻한 박수를 보내고 싶다.

 

우리는 일상생활에서 일터에서 수많은 시도를 한다. 그중에는 한 번도 해보지 않은 들도 있다. 나는 리스크테이커(Risktaker)인가  아니면 리스크어보이더(Riskavoider)인가 잠시 고민해 본다. 예전에 비해 요즘은 확실히 위험을 기꺼이 감수하는 리스크테이커 쪽으로 나는 많이 기울었다.


사실 거절을 당하든 실패를 하든 내가 느끼는 실망감과 상처의 정도는 예전과 비슷하다. 근데 뭐가 다르냐고? 바로 회복력이다. 요즘은 확실히 빨리 정상 상태로 돌아오는 편이다. 그리고 냉철하게 분석한다. 왜 실패했고 왜 거절당했는지에 대해. 이게 달라진 점이다.


월 마트의 창시자 샘 윌튼이 남긴 말로 돌아가자.  실패는 어차피 우리가 피할 수 없는 것이다. 더 중요한 건 실패가 가져온 '의기소침'에서 빨리 벗어나는 것이다. 특히 리더  또는 선임자의 위치에서 이런 긴장을 너무 길게 가져가는 것은 별로 좋지 않다. 팀워크와 함께 일하는 조직원들의 사기 측면에서. 나는 오히려 이때가 적절한 리더십을 발휘하여 끈끈한 팔로워십을 만들어 낼 절호의 기회라고 본다. 당연한 말이지만 의외로 실천은 항상 어려운 법이다.


2년 전 당시 근무하던 부서 동료에게 들었던 전 부서장님에 대한 일화가 하나 있다.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실패에 대처하는 '유연성'을 가진 리더는 이런 모습이다.

지자체 공무원들이 연중 가장 바쁠 때가 바로 시의회 행정사무감사 때다. 일명 '행감'. 약 3개월 전부터 감사자료 준비로 각 부서 수 천명의 공직자들은 긴장 상태다. 그만큼 의회에 제출되는 행감 자료는 중요하고 여러번의 감수를 거쳐 최종 제출된다.

문제는 감사장에서 터졌다. 그 부서에서 만든 행감책자에서 어이없는 오타가 발견된 것이다. 당시 타 부서의 부서장들과 각 기관장들과 함께 출석한 그 부서장은 시의회 의원들에게 이 문제로 유독 심한 질타를 받았다. 감사는 전 부서에 생중계되고 있었고 전체 공직자가 그걸 지켜보게 되었다. 부서장은 정중한 사과를 했고 감사는 무거운 분위기에서 끝이 났다. 당시 문제된 자료를 제출한 팀 직원들은 죄송한 마음에 아무 말도 못 하고 안절부절하면서 기다리고 있었다. 비난과 질책을 예상하면서.

그런데 그날 저녁. 그분은 감사장에 함께 있던 부서 직원들에게 삼겹살을 곁들인 푸짐한 회식을 쏘셨단다. 괜찮다고. 그럴 수 있다고. 오히려 직원들의 그 간 고생을 격려하면서 그 날의 악몽 같았던 행감을 다량의 '주'님과 함께 훈훈하게 마무리했단다.

 

 후 나는 부서를 떠나 지난 해 그분과 같은 건물에서 근무하게 되었다. 그리고 복도와 엘리베이터에서 종종  부서장님을 마주치게 되었다. 그때마다 그 일화 때문인지 나는 괜히 더 반갑게 인사를 하게 되었다. 그분이 부서를 떠난  이미 수년이 다. 하지만 매년 행감 때마다 직원들은 그 이야기를 새로 온 직원들에게 전해주지 않을까. 사람은 때가 되면 떠난다. 하지만 남길 수 있는 것들은 많다. 그분의 유연한 리더십처럼.


실패에 대처하는 자세. 상황마다 딱 들어맞정답은 없다. 하지만 선택은 해야한다. 그래서 치열한 고민이 필요한 것 아닐까. 나는 주로 어떤 텐스를 취할 것인가?


P.S. 얼마 전 그분이 조금은 빠른 승진을 하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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