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대학교 심리학과 최인철 교수의 행복한 삶을 위한 인생 지침서 <굿 라이프>를 읽다 보면이런 구절이 나온다.
삶이란 해석과 재해석의 연속이다. 순간의 경험들은 그 순간에 종료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의 흐름 속에서 끊임없이 재해석되고 재평가된다.
지금 지방자치 행정의 최하부 조직인 주민센터에서 시간선택제로 근무하고있는나. 조직의보이지 않는신뢰망. 그 힘에 대한 믿음을 바탕으로 하루하루 치열하게 고민하고 또반성하면서 작은 실천을 하고 있다. 이런 것들에 대한 나름의 의미를 <굿 라이프>속에서 찾아다시 한번 더 힘을 내어본다. 이제 '동 주민센터 시한부 시간제근무 그 다섯 번째 이야기'를시작하려 한다.
'의미'로 시작한 오늘의 이야기는 나름 이유가 있다. 왜냐하면 이제 3개월을 넘어선 주민센터 90년대생 후배 공직자 2명과의 멘토링이 생각보다는 잘되고 있지 않기에. 지난번 마지막 저녁 회식 이후로 두 후배와 뭔가 보이지 않는 벽이 생겨버린 느낌이다. 원인은 나였다. 내가 너무 성급하게 이것저것 해보자고 제안하고 너무 많은 것들을 한꺼번에 후배들에게 던져 놓은 것이다. 그냥 가볍게 맥주 한잔 하면서 그 친구들 마음 속 이야기만 들어줬어도 좋았을 텐데. 내가 너무 나간 거다.
회식 말미에 나는 조금은 신이 나서 두 후배에게 정기적인 멘토링 모임을 제안했다. 내가 그전에 다른 부서에서 만나 오랜 기간 멘토링을 해 준 후배 2명과 같은 직급의 '선배' 직원까지 5~6명이 두 달에 한 번씩 모이는 멘토링 모임을 제안한 것이다. 사실 2~3개월 후 내가 주민센터를 떠날 때를 나름 준비한 것이었다. 여기를 떠나더라도 이 친구들을 정기적으로 만나 지속적인 멘토링과 피드백을 하고 싶은 나의 바람이었다.
그날 자리에서는 둘 다 좋다고 내게 화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다. 아마도 각자 집에 돌아가서 나름 고민을 했을 터. 낯선 사람들과 자기의 깊은 얘기를 해야 하는 모임이었다. 분명 그런 자리에 경험이 없는 두 친구에게 부담이 되었을 것이다. 아니나 다를까 남자 후배가 며칠 뒤 모임 참여를 다시 생각해 보고 싶다고 한다. 그리고 또 얼마 지나지 않아 여자 후배도 비슷한 얘기를내게 털어놓는다.
'아차' 싶었다.이건명백하게 내가 후배들 나름의 '이해의 정도와 수용의 속도'를 고려하지 않고 나만의기대와 속도로 그 친구들을 몰아붙인결과였다. 2~3일 동안 곰곰이 생각하다가 나는 두 친구에게 얘기했다. 이 멘토링 모임이 원래 둘을 위해 시작한 것이지만 부담이 될 것임을 충분히한다고. 그리고 나머지 직원들만이라도 모임을 시작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이 모임 시작의 계기가 된 둘에게 감사하다고. 하지만 둘에 대한 별도 멘토링은 계속해서 하고 싶고 언제든 편하게 다시 얘기하자 했다.
그 후 얼마간의 시간이 지났지만 사실 보이지 않는 서먹함이 셋 사이에 생겨버렸다. 나의 성급함이 만든 이 서먹함. 나와 이 후배들이 함께 풀어야 할 공통과제가 생긴 듯하다. 그래서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마음한편은 무겁다. 여기까지그간의 동 주민센터 멘티들과의 이야기다. 솔직히많이 아쉽다. 무엇보다 나의 부족함에 대해. 왜 좀 더 기다려주고 왜좀 더 섬세하지 못했을까.
다행히 같은 사무실에 '아침 3분 스트레칭과 스쿼트'를 도입하고 추진하는데 주도적으로 앞장서 준나와 같은 직급의 직원 한 명이 멘토링 모임 참여를 선뜻 결정해 주었다. 그래도 운명의 신은 나를 버리지 않았다.나머지 세 명의 공직자들 그리고 나, 이렇게모두5명으로 '생각하는 공무원 멘토링 모임'이 공식적으로 만들어졌다.조금 더 빨리 가본 선배 3명과 이제 막 공직을 시작한 2명의 후배들.이 친구들 이력, 나름 화려하다. 해외 유학파에 영사관 근무, 기자, IT기술영업 등 공직 전 다양한 전문 분야에서 경험을 거치고 온 능력자들이다.
앞으로이 다섯명이 만나서 각자의 개성과 잠재적 역량을 공직안에서 어떻게찾아 성장시킬 수 있을지 전방위적으로 멘토링을 하려 한다. 선후배 관계없이 서로가 멘토가 되어줄 것이며 모든 이야기는 기록으로 남길 것이다. 물론'비판금지'와 '경청'은 모임의 기본 룰이다. 중요한 것은 다같이 함께 만들어가는 과정속에있다고 생각하기에멤버들의 의견을 수시로 반영하여 바로바로 적용할 것이다. 계획은 이러하다. 하지만 현실에서의 예기치 않은 난관과 구체적실천은 또 두고 볼 일이다.성급함이 또 일을 그르칠까 두렵기도 하다.
사실 나머지 네 명의 '동료와 후배'는나와 상당기간 많은 대화와함께한경험들이있었기에상호간신뢰가 나름있었던 듯하다. 그래서 내가 멘토링 모임을 제안했을 때 망설임 없이 참여를 결정했고 오히려 모임에 대한 솔직한기대감을내게 표현해 주었다.나도 공직에서 이런 멘토링 모임은 처음이라성공여부에 대해서는나도 궁금하다고. 함께 잘 꾸려 가보자고 솔직하게 답했다. 아직은 모든게 막막하고 안개 속이다. 무엇보다두 멘티들과의 관계가 나를 다시 한번 돌아보게 한 날들이었다.
동 주민센터 2명의 멘티들이 빠진 '생공 멘토링 모임'. 어쩌다 보니 이렇게 시작하게 되었다. 이달 말 첫 모임을 갖게 되는 멘토링 모임과 동 주민센터 두 멘티들 그리고또다시 고민에 빠진 나. 앞으로 2개월 남짓 남은 동 주민센터에서의 시간. 나는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내가 주도하는 이 모임을 '모두'가 주도하는 것으로, 현재의 서먹함을 '신뢰의 그물망'으로 과연 나는 바꿀 수 있을까? 먼 훗날 나는 이 시간을 어떻게 재평가하게 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