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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베짱이J Feb 02. 2022

#19 가시덤불숲 마녀(9)


포목점집 조수가 일을 그만두고 마을을 떠났다는 소문은 나흘 만에 퍼졌다. 훤칠하고 착실하던 그는 다른 가게에서도 탐내던 차였다. 마음에 안 든 게 있으면 말을 할 일이지, 낭아의 아비는 혀를 차며 안타까워했다. 당장 사업이 커가는 마당에 능숙한 일꾼을 잃었다는 건 적잖은 손실이었다. 그러나 평소 정이 제 가게를 열고 싶어한다는 걸 알았을 뿐더러, 아들도 돌아온 마당에 정을 대신할 일꾼을 찾는 것 자체는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저 제대로 된 인사도 없이 떠난 것을 괘씸히 여다.


조수와 인사를 주고받지 못한 것은 포목점 주인만이 아니었다. 외지인이라지만 그럭저럭 잘 지내던 동네 청년들마저 그의 이사를 알지 못했고, 향할 곳의 연락처를 받은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렇게 정없는 줄 몰랐는데. 동리 사람들이 저들끼리 쑥덕였다. 말도 없이 떠나네그려. 그 와중에도 사람들은 초미의 관심사를 놓치지 않았는데, 조수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던 포목점집 막내딸의 동태가 그것이다. 이따금 상심한 처녀들이 그러하듯 그 딸도 자릿내가 나도록 누워 보전하진 않을까? 어쩌면 울고불고 난리가 나 집안이 뒤집어질지 모를 일이다.

     

그런 예상을 비웃기라도 하듯 포목점집 딸은 무탈했다. 여느 때처럼 아비와 오라비의 사업을 도왔고, 이따금 장을 보러 다녔다. 새언니와 가게 앞에 앉아 새로 태어날 조카 옷을 만들기도 했다. 너무 아무렇지 않아 애초에 연분 났다는 소문부터가 거짓부렁 아니냐는 말까지 돌았다. 심술궂은 몇은 은근한 말로 처녀를 떠봤으나 그네는 웃는 낯으로 농을 피했다. 별 거 없던데, 스캔들의 가능성에 부풀었던 이들은 실망한 얼굴로 떠들었다. 그렇게 아무렇잖을 만큼 그 집 딸이 독하진 못하지.

      

다만 꼭 한 가지 이상한 일이 있었다. 정이 살던 집에서 난데없는 개소리가 난다고 이웃들이 불평하기 시작한 것이다. 가끔 그 울음은 곡절이 있나 싶을 만큼 구슬퍼서 듣는 이로 하여금 애간장이 끓을 정도였다. 이웃들의 불만이 심해지자 정에게 세를 줬던 집주인은 문을 따고 들어가 살폈다. 세간까지 말끔히 정리된 집엔 개의 흔적이라곤 없었고, 정과 맺은 계약기간도 좀 남은 터라 주인은 망설였다. 잠깐 떠돌이 개가 들었었나 보죠, 집주인은 다시 문을 잠그고는 대수롭잖게 말했다. 좀만 기다려보쇼, 봄이 오면 새 세입자를 들일 테니. 다행히 그 후로는 울음소리가 뚝 끊다. 이웃들은 잠깐의 이변이었나 하고 잊기 시작했다. 모든 것이 원만히, 순조롭게 흘러가고 있었다.      


낭아에게는.     


     




그녀에겐 계획이 있었다.      


털이 누런 쌀개였다. 어깨가  벌어진 잘생긴 개는 병에라도 걸린 듯 거품을 물고 날뛰었다. 다행히 저 스스로 선반에 머리를 박고 기절해 낭아는 간신히 목줄을 묶을 수 있었다.     


“사람으로 돌아올 거에요. 정말이에요. 일 년의 기한을 받았어요. 그 후엔 정말, 당신 뜻에 따를게요.”     


개가 깨어났을 때 낭아는 말했다. 개는 발작난 것처럼 몸을 떨었다. 낭아의 손길을 피했고, 부엌 구석에 배를 붙이고 앉아 눈물을 흘렸다. 몇 날이 가도 밥은 먹지 않았다. 걱정이 된 낭아가 고깃국에 쌀밥을 말아 건넸으나 구슬피 울 뿐이었다.     

 

그러지 말아요, 마침내 정의 집 주인이 문을 따고 들어온 날 낭아가 말했다. 이웃들 사이에서 말이 나오는 것을 알고 미리 개를 덤불숲 안쪽에 묶어둔 참이었다. 당신이 아픈 건 보고 싶지 않아요. 내 아이의 아버지니까. 처음으로 개 귀 쫑긋거렸다. 사람이었을 적 정이 깜짝 놀랐을 때 짓던 표정이 그대로 떠 있었다. 낭아가 울며 말했다. 떠나겠다고 하는 당신에게 아이를 가졌음을 말할 수 없었다고. 아이가 태어날 때까지만, 짐승의 모습으로라도 내 옆에 있어달라고. 개는 다시 울었고, 몸을 웅크리며 낑낑거렸다. 이틀이 지나서야 체념한 것처럼 보였다. 정의 집에 돌아왔을 땐 더 이상 큰소리로 우짖지 않았다.

     

낭아는 생각했다. 정에겐 시간이 필요한 거야. 아이가 태어나 그 조그만 생명을 제 눈으로 보기만 하면 된다. 그럼 떠날 마음도 사라질 것이다. 네 오라비처럼? 귓가에 울리는 노파의 물음에 낭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오라비처럼. 그녀는 봄까지만 정의 집에 그를 두자고 마음먹었다. 날이 풀리면 제 집에 데려가자고. 사람들이 정에 대해 잊고, 조카가 태어나고, 아이를 배었다고 부모에게 이실직고할 때까지만이었다. 당분간은 짐승으로 변해버린 정을 혼자만 알고 싶었다.      


그럼에도 한 번씩 몸이 떨려왔다. 정에게 밥을 주기 위해 찾은 어느 오후, 또다시 자신을 피하는 개를 보며 낭아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었다. 괜찮을 거야. 목구멍에서 화기가 올라왔다. 눈물이 주룩주룩 흘렀다. 개는 멀찍이서 그 모양을 물끄러미 보더니, 절룩거리며 다가왔다. 낭아의 얼굴을 핥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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