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의 이름은 김희연이다. 김희연은 1987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선생님이던 아버지는 희연이 태어나자 기뻐서 어쩔 줄 몰라 했다. 희연의 친가엔 고모 하나 없이 삼촌만 다섯이었고, 사촌 열 명 중엔 꼭 희연 하나만 여자였다. 시상에 우린 여자씨가 아예 없는 줄 알았다, 조모가 신기해하며 말했다.
희연은 무럭무럭 잘 컸다. 밥도 잘 먹고 똥도 잘 싸고 쌈질도 잘했다. 집안의 타고난 양기는 어디가지 않았는지 골목대장 노릇을 곧잘 했다. 학교에 가자 공부를 잘했다. 지는 건 참을 수 없었다. 선생님이 질문을 하면 답을 알건 모르건 일단 손부터 들었다. 다행히 머리회전이 빠르고 임기응변이 좋아 답을 모르는 순간에도 아는 것처럼 말할 수 있었다.
희연의 부모는 딸을 대견해하면서도 걱정했다. 희연은 불같은 아이었다. 제 몸뚱이까지 태워서라도 원하는 걸 이루지 못하면 성에 차지 않아 했다. 중학교 땐 매일 매일 공부할 양을 정해놓고 다하지 못하면 새벽 두 시까지 울면서 문제를 풀었다. 그냥 좀 자지 그러니, 엄마가 말하면 숨 넘어가는 표정으로 내가 도대체 어떻게 잘 수 있겠느냐고 되물었다. 그 기세 덕에 희연은 명문고에 가고 명문대에 갔다. 원하던대로 사시를 패스해 변호사까지 됐을 때, 더 이상 인생에 걸리적거릴 건 많지 않아 보였다.
결혼할 때 희연은 남자의 외모와 성격 외엔 아무것도 보지 않노라고 천명했다. 돈은 내가 벌면 그만이야. 로얄이 많은 법조계에서, 또래 여자친구들은 나이를 먹을수록 조건에 점점 더 까다로워졌지만 희연만큼은 한결같았다. 난 얼굴 뜯어먹고 살 거야. 나랑 잘 맞는 사람 아니면 안 돼. 마침내 만난 그 이는 잘생긴 얼굴에 비해 순진한 사람이었다. 강하디 강한 희연의 성격을 마주하고도 되도 않는 남자의 자존심을 세우거나 희연을 깎아내리지 않았다. 서른이 될 때까지 은근히 자신을 후려치지 않고는 못 버티는 남자들을 숱하게 봤던 희연은 주저없이 그를 택했다. 희연이 하고 싶은대로 하는 데 익숙해져 있는 가족들은 여느 때처럼 익숙하게 사위를 맞았다.
남편은 아이를 원했다. 너처럼 똑똑하고 예쁜 딸이었음 좋겠어, 그가 머리칼을 쓰다듬으며 말할 때마다 희연은 새삼스레 설렜다. 문제는 희연이 임신할 수 없다는 것이었다. 건강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다. 그냥 너무 바빴다. 악착같이 일했고, 일하고 있었으며, 일할 예정이었다. 아이 생각이 없는 건 아니었지만 아이를 가질 물리적 시간도, 그 애를 몸에 붙여놓고 있을 여유도 없었다. 제발 이직하자. 희연이 유산할 때마다 남편은 말했다. 로펌을 나와 일반 대기업만 가도 업무강도는 낮아질 게 분명했다. 그러나 경쟁의식에 사로잡힌 희연은 그럴 수 없었다.
마침내 세 번째로 아이를 잃었을 때, 희연의 가슴 안쪽에서 무언가가 부서졌다. 잘못됐다는, 이건 아니라는 깨달음이 낯선 손님처럼 걸어들어왔다. 생각을 바꿨다. 그러나 그 땐 남편의 마음도 더 이상 희연 곁에 있지 않았다. 그녀의 몸에서 아이가 속절없이 무너져 내리는 걸 세 차례 본 남편은 더 이상 희연에게서 온기를 느낄 수 없다고 했다. 세 번 잃은 아이만큼 몸이 상한 희연은 그 말에 더 깊이 마음을 베었다. 한동안 떨어져 지내다 마지막으로 남편을 만났을 때, 희연은 정말로 끝났다는 걸 실감했다. 인생의 한 장이 막을 내리고, 다음 장으로 넘어가고 있었다. 손쓸 틈 없이, 바란 적도 없는데.
오후녘의 카페에서 비어버린 앞자리를 두고 희연은 엉엉 울었다. 카페 안의 사람들이 술렁이고 종업원이 다가와 휴지와 물을 건넬 때도 신경쓰지 않았다. 이제 막 태어난 아기처럼, 자신이 잃은 아기처럼, 다시는 울지 못할 사람처럼 울었다. 몸 안의 물기가 모두 말라버린 것 같았다. 침실 창밖으로 아침해가 뜨기 전 샛별이 마지막으로 반짝이는 게 보였다. 카페의 그 날로부터 나흘이 지나 있었다.
그녀는 한동안 두문불출했다. 밥도 먹지 않았고 씻지도 않았다. 가족들이 찾아왔으나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가장 빠른 답을 모르는 건 아니었다. 일을 해야 한다. 일하다 보면 잊혀질 거다. 그치만 왜? 희연은 자신이 이유를 잃었음을 알았다. 태어났을 때부터 자동기계처럼 끓어오르던 투지는 이제 이유가 되지 못했다. 갑자기 발가벗은 채로 삶의 한가운데에 끌려나온 것 같았다. 인생에는 아무 것도 없었다. 이제껏 길 위를 걷고 있다고 생각했던 자신이 바보였던 것이다. 철두철미한 계획만 있다면 능히 삶을 통제할 수 있을 거라 믿은 자신이 머저리였던 것이다.
열흘이 지났을 때, 희연은 컴퓨터를 켰다. 이왕 잃은 길, 찾고 싶지 않았다. 가장 먼 곳으로 가자. 아무도 모르는 곳으로, 아무도 나를 모르는 곳으로. 문득 한국의 대척점이 우루과이라는, 쓸모는 없지만 그럴듯한 잡지식이 떠올랐다. 희연은 항공사 사이트에 들어가 인천에서 몬테비데오로 가는 티켓을 끊었다. 두 번의 경유 시간까지 합해 47시간이 걸리는 비행이었다. 입국하는 데만 예방접종이 한가득 필요했다. 돌아오는 티켓은 구하지 않았다. 그 길은 필요하지 않았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