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을 향한 발걸음: 교도소 이야기'
나는 현재 유치원 교사다. 전산을 전공한 후, 다시 유아교육을 공부하게 되었다.
2000년대 말, 초등학교에서 컴퓨터 특기적성 교사로 근무하던 중, 우연히 한 학부모님께서 강의를 요청하셨다.
“정보 통신을 가르쳐 주실 컴퓨터 강사가 급하게 필요하니 꼭 출강해 주셨으면 좋겠다”라는 간곡한 부탁이었다.
그런데 그 장소는 영화 '7번방의 선물'과 '하모니'의 배경이 되었던 바로 그곳,
‘교도소’였다.
당시 내 나이는 스물일곱, 아이가 세 살이 되던 해였다.
겁도 없이 의욕만 가득했던 20대의 그 시절, 일단 생각해보겠다고 말씀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지만 그 날 이후 고민이 시작되었다.
첫 번째로, 폐쇄된 공간인 교도소에 대한 부정적인 이미지와 낯설음 때문에 무서운 마음이 가장 크게 작용했다.
또 한편으로는 재소자들이 사회에 다시 발을 내딛고 살아가는 법을 배울 수 있는 직업훈련이 의미 있고 보람 있는 일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마음 속의 갈등 끝에, “그래! 지루한 일상에서 벗어나 보람 있는 일을 해보자”라는 결심으로 교도소 강의 제안을 덜컥 받아들이게 되었다.
그 후, 강의를 위한 날짜와 목표를 계획하고 강의안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날짜가 다가올수록 왜 그렇게 겁이 나던지…
급기야는 추억의 만화 ‘똘이장군’에 나오는 늑대 캐릭터의 악몽을 꾸기도 했다.
걱정을 하면 할수록 더 빨리 다가오는 법이죠. 마치 직장인에게 긴 연휴의 마지막 날이 어김없이 찾아오는 것처럼 말이다.
처음 출강하는 날, 교도소 정문 입구에 ‘촬영금지’라는 표지와 함께 스마트폰을 맡기고 긴장한 마음으로 입장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들어서는 길에서는 여느 집과 다름없는 따뜻한 밥 냄새와 국, 반찬 냄새가 뒤섞여 나며 “이곳도 결국은 사람이 사는 또 다른 사회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교도관께서 강의실로 안내해 주셨고, 떨리는 마음을 부여잡고 대학 강의실 같은 곳으로 들어갔다.
푸른 수의를 입고 죄수번호가 적힌 명찰을 단 재소자들이 앉아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순간 눈을 의심할 수밖에 없었다. 그들의 순하고 밝은 웃음, 언제 어디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하고 호감 가는 모습에 당황했던 기억이 난다. (똘이장군 꿈이 부끄러울 정도로...)
더욱 놀라운 것은 이 분들이 굉장히 스마트하다는 점이었다. 배움에 대한 열정이 가득했고, 퇴소 후의 계획이 매우 구체적이고 진지했다.
강의 분위기에서도 그들의 몰입도와 진지한 태도에서 진정성을 느낄 수 있었다. 나중에는 일상에서의 재미있는 에피소드나 농담까지 주고 받으며 사람 냄새 나는 수업이 진행되었다.
휴식 시간 동안에는 교도소 생활과 용어에 대해 구체적으로 알려주기도 했다.
그중 몇 가지 용어를 소개하자면:
- 영치금: 재소자가 교도소에 맡겨두는 돈으로, 가족이나 지인이 재소자에게 넣어주는 돈이다. 이 돈으로 과일, 채소, 스낵, 음료수 등 다양한 음식을 사먹을 수 있고, 필요한 물건도 주문할 수 있다고 한다.
- 접견: 가족과의 면회.
- 서신: 편지.
- 출역: 작업장.
- 사약: 자비구매 의약품.
특히 기억에 남는 것은 아기를 키우는 이야기였다.
여성 수용자가 교정시설에서 출산할 경우, 아기를 18개월까지 양육할 수 있다고 한다.
18개월이 지나면 아이는 교도소에서 생활할 수 없고, 사회에 있는 가족이 양육하거나 보육원에 맡기게 된다.
비록 출산 시 가족의 보살핌을 받지 못했더라도 아이와 함께 지냈던 시간은 큰 힘이 되었을 텐데, 그 사랑하는 아이를 떠나 보내야 했던 마음은 감히 상상하기 어려웠다.
누군가의 어머니이자, 딸, 아내, 며느리로 살다가 어떤 사연으로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강력범도 있었고 교통사고로 피해자가 사망하고 본인도 치료와 재활을 거쳐 교도소에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믿음에 의지하는 분들도 있었고, 그 중 한 분은 슈퍼모델 출신으로 항상 성경책을 소지하고 다니며 "하나님은 살아 계십니다"라고 나를 전도하셨던 기억이 난다. 그분은 교통사고로 들어오셔서 믿음으로 성실하게 생활하셨고, 일찍 출소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꽤 오래된 일이지만, 나에게 특별한 경험이라 비교적 오래 기억에 남아 있다. 1년 가까이 출강을 하며 정이 들어 가족 같은 분위기가 되었다.
그러던 2001년 12월, 아쉽게도 교도소가 이전하여 마지막 인사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그곳에 35층 초고층 아파트가 지어졌지만, 그곳을 지날 때마다 예전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마지막 인사날, 한 재소자 분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출소 후 연락할게요. 전화번호 좀 알려주세요!"
그때 나는 용기가 나지 않아 그 요청에 응하지 못했다.
그 순간은 정말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그 이후로 연락은 끊겼지만, 그 시절 함께했던 분들이 출소 후 새로운 삶을 펼치며 성실하게 인생의 후반기를 보내고 계실 거라 믿는다.
그들의 희망과 열정이 계속해서 이어지길 바라며, 언젠가 다시 만날 수 있는 날을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