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도와 효율" 대신 "깊이와 연결"을 택한 프랑스 교육
올해 미국 독립선언 250주년을 맞아 다시 재조명되고 있는 뉴스가 있다.
"미국의 젠지(Gen Z)는 독립선언문을 읽지 못한다."
미국의 청년층 대다수가 필기체로 쓰인 독립선언문 원본을 읽지 못한다는 것이다.
미국은 2010년 '공통 핵심 교육과정(Common Core)'에서 필기체 의무 교육을 제외했고, 그 자리를 타이핑과 코딩으로 채웠다.
반면 프랑스는 여전히 초등학교 저학년의 가장 큰 과업을 '아름답고 정확한 필기체 구사'로 둔다.
태블릿 PC를 이용하거나 컴퓨터 자판을 사용하는 법 대신 손글씨, 특히 필기체를 배우는 데에 오랜 시간 공을 들인다.
마테넬 3년 동안 아이들은 수직과 수평의 개념을 배우며 점과 점을 잇고, 곡선과 대각선 그리기를 매일같이 연습했다.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입학하고 나서야 나는 깨달았다.
지금까지의 모든 수련이 글씨 쓰기를 위한 밑작업이었음을.
프랑스 아이들은 글자를 하나하나 따로 쓰는 법을 배우기 전에, 모든 글자를 물 흐르듯 연결해 쓰는 법부터 배운다.
프랑스어로 '붙여쓰기'라는 뜻의 '아타셰(Attaché)'이다.
이를 위한 필수품이 있으니, 바로 프랑스 학교에서 기본으로 사용하는 Cahier Seyès(까이에 세예), '세예' 공책이다.
19세기말 서점상이자 사서였던 장알렉산드르 세예 (Jean-Alexandre Seyès)가 고안한 정교한 격자노트는 다음의 필수요소를 갖춘다.
기본 격자: 8mm x 8mm 크기의 큰 정사각형
가로 보조선: 이 큰 칸 안에 2mm 간격으로 그어진 3개의 가로 보조선
세로 여백: 왼쪽에는 보통 붉은색으로 수직선이 그어져 있어, 들여 쓰기와 교사의 채점 공간을 확보
이렇게 정밀하고 복잡하게 설계된 바탕종이는 다음과 같은 규칙으로 필기체의 비율과 높이를 완벽하게 통제한다.
몸통: 'a, e, o' 같은 소문자의 몸통은 첫 번째 보조선(2mm) 높이에 딱 맞춰 써야 한다.
올라가는 선: 'l, b, h' 같은 글자는 세 번째 보조선(6mm)까지 올라가야 한다다.
내려가는 선: 'p, g, j' 같은 글자는 아래로 두 칸(4mm) 내려가야 한다.
대문자: 무조건 세 번째 보조선(6mm) 높이까지 꽉 채워 쓴다.
여기까지 인내심을 갖고 읽은 독자라면 당연히 물을 수밖에 없다.
'왜 이렇게까지 하는 건데?'
아이의 글씨연습 공책을 보며 나도 가졌던 의문이다.
처음에는 단순히 전통을 고수하는 것이라 여겼었는데, 프랑스 교육부의 문서들을 살펴보면 흥미로운 이론과 철학적 배경을 만나게 된다.
2020년에 업데이트된 프랑스 교육부의 지침서를 살펴보면 필기체 교육의 분명한 목적성을 엿볼 수 있다.
L'écriture est une habileté qui, non maîtrisée, place les élèves en difficulté... Tant que le geste d'écriture n'est pas automatisé, il est difficile pour l'élève de se concentrer sur les autres aspects de l'écriture."(쓰기는 숙달되지 않으면 학생을 어려움에 빠뜨리는 기술이다. 쓰기 동작이 자동화되지 않는 한, 학생은 글쓰기의 다른 측면(내용 구성, 어휘 선택 등)에 집중하기 어렵다.)
즉, 프랑스 교육과정은 아이가 글자를 쓰는 신체적 움직임을 완벽하게 자동화하여 '무의식'의 영역으로 보내는 것을 중요 과제로 삼는다.
손이 글자를 쓰는 데 에너지를 쓰지 않게 되었을 때, 비로소 뇌의 에너지는 '무엇을 쓸 것인가(사고와 창작)'라는 고차원적인 작업으로 옮겨갈 수 있다는 논리이다.
특히 프랑스에서 '붙여쓰기'식 필기체를 우선시하는 데에는, 손글씨를 단순한 기록 수단이 아닌, 사고의 형성 과정으로 보는 시각이 담겨있다.
필기체를 쓸 때 손은 멈추지 않고 리듬을 타며 움직여야 한다.
글자를 하나하나 따로 쓰는 인쇄체(Script)는 "a-p-p-l-e"처럼 글자를 파편화하여 인식하게 할 위험이 있는 반면, 필기체는 하나의 단어를 하나의 움직임으로 완성한다.
프랑스 교육부는 이를 "단어를 철자의 나열이 아닌, 하나의 시각적·운동적 단위(Unité visuelle et motrice)로 인식"한다고 표현한다.
필기체 학습은 생각의 흐름을 끊지 않고 '사고의 연속성'으로 이어지게 하는 교육적 설계인 셈이다.
지난 금요일, 둘째가 다 쓴 공책을 집으로 가져왔다.
까이에 뒤 주흐 (Cahier du jour), '매일 학습장'인데, 그간 연필 쥔 손으로 켜켜이 쌓아온 아이의 노력이 그대로 담겨 있다.
선생님께서 왼쪽 여백칸에 반듯하게 써주신 글자를 아이는 수 차례 반복해 따라 썼다.
너무 크거나 너무 작거나 선을 넘거나 선에 닿지 않거나 곡선이 뚜걱거리거나 직선이 흐물거리거나 - 규칙을 어긴 글씨에는 어김없이 선생님의 찐분홍 물결무늬 밑줄이 그어져 있다.
선생님과 꼼꼼하고 섬세한 지도 덕에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아이의 글씨는 점차 의젓해진다.
단어 몇 개만 던져주면 AI가 순식간에 글 한 편을 뽑아내주는 시대에 손글씨가, 더군다나 필기체는 너무 비효율적이지 않느냐고 혹자는 물을지도 모른다.
AI는 순식간에 문장을 만들어내지만, 그 문장은 우리의 뇌를 거치지 않는다.
반면 손글씨는 뇌에서 손끝까지 신경세포를 자극하고, 생각의 속도를 늦춰 깊이를 만들어낸다.
특히 필기체는 필압, 기울기, 연결 방식에 따라 쓴 사람의 감정과 개성이 그대로 드러난다.
모두가 같은 폰트로 이야기하는 디지털 세상에서, '이건 오직 나만의 생각'임을 증명하는 귀중한 수단이다.
오늘도 손에 흑연 때를 잔뜩 묻혀 온 아이들은 나만의 생각을 세상과 연결시키는 법을 배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