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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제프 Dec 19. 2023

외롭고 쓸쓸한 연말을 위한 노래 추천

길에서 흘러나오는 따뜻한 캐롤 음악들이 버거운 누군가를 위해

Intro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코 앞이다. 올해가 끝나고 새해가 맞닿아 있는 그 어디 즈음인 셈이다. 어쩌면 어중간할 수도 있는 이 시기에 아기 예수님은 세상에 태어나셨고, 으레 우리는 가족, 연인과의 사랑, 행복, 범인류애 등 그와 어울릴 법한 심상들을 이 시기의 속성으로 삼는다. 내가 이 뻔한 내용들을 굳이 언급하는 것은 바로 위에 언급된 연말의 속성에 대해 의심하거나 이죽거리기 위해서가 아니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에 부여된 속성이 얼마나 역사적으로 드라마틱하게 확립되었는지를 드러내고 싶을 뿐이다.


확고한 속성은 이와 대비되는 다른 속성을 수반하기 마련이다. 높고 낮음. 뜨거움과 차가움. 그리고 밝음과 어두움 같은 양상으로 말이다. 따라서, 크리스마스의 트리와 장식들이 빛나면 빛날수록 반대편에는 그만큼의 그림자가 드리워질 수밖에 없다는 것을 나는 상기해 본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라는 이 시즌 아래, 행복과 사랑이라는 테마에 속하지 못하는 누군가는 평상시보다 더 큰 외로움과 쓸쓸함을 느끼고 있을지 모를 일이다. 나는 오늘 이들의 편에 서서 글을 남기고자 한다.


크리스마스와 연말이라고 한들 외롭고 쓸쓸해도 괜찮아.


이 역사적으로 계승된 낭만과 테마를 잠시 옆으로 치워두고 말을 해보자면, 한 해가 지나가고 새해가 교차하는 이 시점에는 외롭고 쓸쓸한 마음을 느끼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고 나는 생각한다. 사실 한 해의 그 어느 시점을 특정 짓는다 하더라도 해당 시점에 가족과의 유대가 끈끈하고, 사랑하는 애인이 함께 하고 있으며, 따라서 삶이 만족스럽고 행복할 수 없는 노릇이다. 이러한 요소들은 마치 아귀가 잘 맞지 않는 퍼즐 조각과도 같아서 어느 조각들이 맞아떨어지면 반대편 모서리가 틀어지는 그런 까다로운 퍼즐 같은 것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일 년 열두 달 삼백육십오일을 이 퍼즐 조각들을 이리저리 끼워 맞춰 본다. 이마저도 정갈하고 조용한 방에서 했으면 좋았으련만 대부분의 조립은 경제적 불평등과 양극화, 취업난, 주거 문제, 낮은 연애 인구와 혼인율 등 뉴스에서 지겹게 봐 온 토픽들로 인해 너저분해진 방에서 이루어진다. 정말로, 외롭고 쓸쓸하지 않을 수가 없잖아.


누군가가 크리스마스와 연말로 들뜬 분위기에 속하지 못한다고 해서 스스로를 연말의 분위기와 반대되는 존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면 한다. 행복의 반대말을 불행이라고 붙이기엔 다소 폭력적으로 느껴지는 것처럼 스스로를 가혹하게 대비시킬 필요는 없으니까. 우리가 아는 크리스마스와 연말의 속성은 퍼즐 상자에 그려진 '조립 예'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퍼즐은 예쁜 그림을 직접 한 조각 한 조각 조립해 가며 맞춰가는 것에 의미가 있지 그 일러스트 자체에는 큰 의미를 지니고 있지 않는 것처럼 말이다. 외롭고 쓸쓸함에도 불구하고 일 년 열두 달 365일 그러니까 8,760시간 정도를 씩씩하게 버텨온 당신과 내가 꽤나 자랑스럽다. 더군다나 이만큼의 시간을 다시금 겸허하게 맞이하는 모습은 멋져 보일 지경이다.

+

언젠가 크리스마스와 연말을 앞둔 채로 연인에게 이별 통보를 받은 적이 있었다. 길거리 곳곳에서 흘러나오는 캐롤이 소음 공해처럼 느껴지던 그해 겨울. 일기장을 꺼내 캐롤 대신 들을만한 선곡표를 적어 두었다. 본 플레이리스트를 이 글을 읽고 계신 당신과 공유한다.


년도는 가리고 그해 겨울의 일기장에서 발췌

Track 1. Coldplay - Everything's Not Lost

2000년에 발매된 콜드플레이의 첫 앨범 'Parachutes' 앨범에 마지막 트랙이자 히든 트랙으로 들어 있는 트랙이다. 크리스 마틴의 부드러운 보컬과 교차하는 따뜻한 피아노의 진행 그리고 노래에 서사와 진행감을 부여하는 기타 선율이 어우러진 희망찬 분위기의 곡. 특히, 곡의 후반부 곡의 제목인 '아직 모든 걸 잃지 않았다'는 가사가 가스펠처럼 반복되는 구간 고조되는 감정에서 이 추운 겨울 포근함을 느끼기에 충분한 곡이다.  


So if you ever feel neglected (네가 소외된 것 같이 느껴지고)
And if you think that all is lost (모든 걸 잃어버린 것 같다면)
I'll be counting up my demons, yeah (나는 다시 내 어둠들을 세어 봐)
Hoping everything's not lost (아직 모든 걸 잃어버리지 않았다는 걸 기대하며)



Track 2. KT Tunstall - Lonely This Christmas

록 기반이 강한 스코틀랜드의 싱어송라이터 KT 툰스탈의 곡을 가져왔다. 사실 2005년 그녀의 데뷔앨범 'Eye To The Telescope' 이후 세계적인 히트 넘버가 없어서 우리나라에서는 인지도가 그다지 높지 않은 뮤지션일 것이다. 기타(어쿠스틱 혹은 일렉트릭)를 멘 채로 홀로 무대에 올라 열정적으로 노래하는 여성 록커의 모습이 궁금한 사람들은 그녀의 실연 모습을 한 번 검색해 보길 바란다. 


이 곡은 75년도 영국의 글램록 밴드 'Mud'가 크리스마스를 겨냥해 발매했던 트랙을 2007년 KT 툰스탈이 리메이크한 곡이다. 원곡은 엘비스 프레슬리 스타일을 참고한 블루스 & 로큰롤 스타일로 작곡이 되었으나, KT 툰스탈은 오로지 본인의 목소리와 기타 단 두 트랙을 통해 소박하면서도 담백하게 본 곡을 재해석하였다. 곡의 심플한 구성과 편곡 그리고 힘을 주지 않은 KT 툰스탈의 목소리가 멜랑콜리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는 곡이다.



Track 3. Eagles - Please Come Home for Christmas

언젠가 아버지 차에서 한 번은 들어봤을 법한 'Hotel California(1976)'의 주인공인 미국 아메리칸 록의 대부 이글스의 크리스마스 타이틀이다. 원곡은 1960년에 미국의 R&B 가수인 찰스 브라운에 의해 발표되었지만 1978년 이글스가 커버한 본 버전이 현재는 더 많은 사람의 기억에 남게 되었다. 이 노래는 블루스 기반의 로큰롤 작법 그대로 만들어진 크리스마스 송이라고 할 수 있겠다. 끈적한 박자와 소위 '뽕끼(마이너 블루스)'가 맛깔나게 드러나는 곡. 특히, 가사적인 측면에서도 집 나간 당신을 그리워하는 블루스 가사의 단골 주제 역시 그대로 담고 있다.


So won't you tell me, you'll never more roam? (다시 떠나지 않을 거라고 말해줄래?)
Christmas and New Year will find you home (크리스마스와 연말이 네게 집으로 돌아오는 길을 알려줄 거야)
There'll be no more sorrow, no grief and pain (이제 더 이상 슬픔도, 아픔도 없겠지)
'Cause I'll be happy that it's Christmas once again (왜냐하면 나는 다시 한번 크리스마스를 행복하게 보낼 테니까)


돈 헨리의 칼칼한 목소리를 통해 전달되는 마지막 소절을 듣고 있으면 느닷없이 싸구려 버번위스키가 마시고 싶어지는 신비한 경험을 할 수 있을 것이다.



Track 4. Belle and Sebastian - Fox in the Snow

밴드 벨앤세바스천의 음악을 한 줄로 설명하려니 좀 막연한 기분을 느낀다. 1995년 데뷔하여 현재까지도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이 스코틀랜드의 밴드는 사실 밴드라고 설명하기보다는 음악적 집단이라고 얘기하는 편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고정적으로 유지되는 멤버나 악기 포지션도 없이 누군가 키보드 연주를 하다 말고 갑자기 바이올린을 꺼내 연주하는 등의 유기적인 방법으로 밴드를 구성하고 이루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록이라고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포크를 하는 밴드라고 하기엔 다양한 스타일을 다룬다. 굳이 분류하자면 인디팝. 벨앤세바스천은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이 편안해지는 그런 유기농 같은 음악을 한다고 나는 설명해 본다. 


1996년 이들에게 상업적, 비평적 성공을 가져다준 'If you're feeling sinister'는 참 겨울에 잘 묻어나는 질감을 지닌 앨범이다. 피아노와 어쿠스틱 기타의 아르페지오(혹은 리프)가 서로의 소리를 감싸 안은 채로 반복되고 있으며 이는 벨앤세바스천이 연출하는 신비롭고도 몽환적인 분위기에 중심이 된다. 그리고 그들의 레이어 한 층 뒤에서 연주되는 바이올린과 첼로와 같은 스트링이 노래에 입체감을 더해 준다. 특히 본 곡 'Fox in the Snow'를 눈을 감은 채로 들으면 북유럽 어딘가의 설원 속 우두커니 서 있는 여우가 그대로 그려질 정도로 그들의 음악에서 겨울의 찬 공기 냄새가 느껴질 정도로 곡이 연출하고자 하는 분위기의 해상도가 높다는 생각이 든다.



Track 5. Fleet Foxes- White Winter Hymnal

플리트 폭시즈는 2008년에 데뷔한 미국의 인디 밴드이다. 본 곡이 수록된 동명의 데뷔 앨범 Fleet Foxes(2008)은 발매됨과 동시에 평단의 열렬한 지지를 받으며 이들을 단숨에 인디 슈퍼스타로 만들었다. 그들은 우리가 일반적으로 현재 포크라 할 수 있는 음악을 더 거슬러가 그 원류에 가까운 음악을 하고 있는 인디 포크 밴드라고 할 수 있겠다. 할아버지가 들려주는 옛날이야기와 같은 노랫말과 멤버들의 목소리로 쌓아 올린 화성은 흡사 중세 시대나 판타지 소설 속 음유 시인들의 음악을 연상케 한다. 실험적이면서도 동시에 예쁜 선율을 유지하는 본 밴드의 음악은 다른 여타 뮤지션이 흉내 낼 수 없는 오직 그들만의 오리지널한 것이다. 


본 곡 White Winter Hymnal은 겨울의 풍경을 바탕으로 한 가사를 통해 눈이 내리는 풍경 속 붉은 스카프로 목을 감은 사람들의 모습을 묘사한다. 가사는 하나의 이야기처럼 자연의 아름다움과 시간이 흐름에 따른 변화를 다루고 있다. 음악적으로는 미국의 전통의 민요의 요소와 현대적인 접근을 결합하고 있다. 플리트 폭시즈의 멤버들이 쌓아 올린 화음과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혼자 앉아 있는 내 방 안이 마치 미국 시골 어딘가에 떠들썩한 펍이 되는 것 같은 기분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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