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제프 Dec 27. 2023

듀크 엘링턴과 사우스사이드

두 번째 페어링, 감미로운 재즈와 상큼한 칵테일


Duke Ellington – Mood Indigo

첫인상(향): 잔잔한 리듬감의 관악기 소리들

색채(맛): 곡 전반을 지배하는 감미로움

피니쉬(여운): 다른 재즈 음악을 바로 이어 듣고 싶게끔 만드는 좋은 분위기


Southside (cocktail)

첫인상(향): 상큼한 민트향과 진 특유의 솔 내음

색채(맛): 언제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새콤달콤하며 밸런스 잘 잡힌 맛

피니쉬(여운): 너무 술 같지도 않고, 그렇다고 너무 음료 같지도 않은 깔끔한 마무리



무드 인디고(Mood indigo). 남색 혹은 쪽빛 분위기. 어디선가 한 번쯤 들어본 아주 감각적인 타이틀이다. 특히, 2010년대에 20대였던 세대들에게는 더욱 익숙한 단어일지도 모르겠다. 2013년에는 프랑스의 영화감독 미셸 공드리가 연출한 동명의 영화 무드 인디고가 개봉했고, 2016년에는 앞선 영화에서 영감을 받은 싱어송라이터 치즈(CHEEZE)가 무드 인디고라는 곡을 발표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세상 모든 무드 인디고의 원조는 1930년 미국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무드 인디고라는 타이틀을 처음 만든 사람은 바로 미국 초창기 재즈의 아버지 피아니스트 듀크 엘링턴(Duke Ellington, 1899-1974)이다. 듀크 엘링턴 오케스트라 소속이었던 클라리네티스트 바니 비가드(Barney Bigard, 1906-1980)는 어느 날 자기가 작곡한 메인 테마 한 소절을 연습실에서 연주하고 있었다. 이를 흥미롭게 듣던 듀크 엘링턴이 그 곡에 살을 붙이며 편곡하기 시작했고, 이 노래가 듣자마자 마음에 들었던 오케스트라의 프로모터 어빙 밀스(Irving Mills, 1984-1985)가 이에 노랫말을 붙이며 곡이 완성되었다. 훗날 듀크 엘링턴은 본 곡의 제목과 관련된 비화를 어느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하였다.


“나는 처음에 이 곡을 꿈결 같은 블루스(Dreamy Blues)라고 제목을 짓고 연주했었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이 곡이 많은 사랑을 받기 시작하니 이내 어빙이 곡에 노랫말을 붙이더군요. 그는 이 노래에 좀 더 시적인 제목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우리는 그때부터 이 노래를 무드 인디고라고 부르기로 하였습니다”


우리는 이 비화를 통해 꿈결 같은 블루스가 좀 더 감각적으로 시화(詩話)되어 남색의 혹은 쪽빛의 분위기가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오후에서 저녁으로 넘어가는 그 무렵의 하늘을 마음속으로 떠올려 보자. 파랗던 하늘이 남빛으로 물들어 가고 오후 일정을 분주하게 보낸 후의 우리의 마음도 하늘 그라데이션의 명도(明度)를 따라 왠지 모르게 차분히 가라앉는다.


Blue Indigo 색의 팔레트


바로, 이 느낌이 듀크 엘링턴의 무드 인디고라는 곡이 우리에게 전달하는 심상이다. 곡을 들어보자. 우선 제일 앞에 서 있는 부드러운 클라리넷의 음색이 곡 전체에 몽환적인 분위기를 이끌어 가고 있다. 그 바로 밑에 뮤트로 연주되는 트럼펫이 그 특유의 톤으로 저녁 질감의 블루지한 터치를 더 해주고, 동시에 클라리넷과 저음역대의 트럼본 사이에 위치하여 앙상블의 입체성을 한껏 드러내고 있다. 자칫 나른해질 수 있는 곡의 진행이지만, 해가 진 뒤에도 가로등불과 건물들의 불빛으로 저녁길이 밝은 것처럼 듀크 엘링턴의 연주가 적절한 스윙감을 통해 곡에 기분 좋을 만큼의 활력을 주고 있다.


노래를 들으면서 나는 생각해 본다. 듀크 엘링턴과 베니 굿먼 그리고 아트 테이텀이 연주를 하던 그 시절 뉴욕의 밤은 분명 이 음악처럼 멋지지 않았을까. 1920년부터 1930년 사이의 시기의 미국은 소위, 재즈의 시대(Jazz age)라고 불리는 낭만의 시대였다. 세계 1차 대전 승전에 힘입어 경제적으로 세계 최대 반열에 오른 미국은 아주 풍요로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고, 더불어 새로운 문화와 예술이 한 데 뒤섞여 들끓었던 문화의 용광로 같은 시간이었다. 재즈는 단순 음악을 넘어 이 문화의 용광로를 관통하는 새로운 예술 양식이었다.


재즈 시대의 사진

이전 세대의 보수적인 가치관에 반항적이었던 새로운 세대의 코케이션 미국인들과 대이동을 통해 남부에서 미국 주요 도시로 넘어온 아프리카계 미국인들은 신나면서도 분위기에 따라 즉흥적으로 바뀌는 스윙 재즈 음악에 맞춰 춤추기 시작했다. 길거리마다 넘치는 사람들과 곳곳을 수놓는 음악과 파티가 이 시기의 밤이었다.  하지만 정작 아이러니하게도 1920년은 아직까지 금주령의 영향력 아래에 있던 시기였다. 그러나 음악과 춤이 있는 곳에 술이 빠질 수가 있겠습니까. 억압은 억압하는 그 만큼의 반작용을 수반하기 마련이고 밀주 제조와 온갖 편법을 통해 술의 문화도 꽃을 피우고 있었다. 국제 바텐더 협회에서 공인된 꽤나 많은 수의 클래식 칵테일이 이 시기에 만들어졌다.



오늘 무드 인디고와 페어링하고자 하는 칵테일 '사우스사이드' 역시 이 시기에 만들어진 클래식 칵테일이다. 칵테일의 정확한 기원은 없지만 1917년의 어느 한 문헌에 따르면 사우스사이드 칵테일이 뉴욕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다고 기록이 되어 있다. 드라이 진을 베이스로 민트 잎과 라임(혹은 레몬즙)을 넣어 얼음과 쉐이킹해 만들어진 사우스사이드는 파티와 가벼운 사교 모임에 딱 적합한 그런 맛을 내주는 클래식 칵테일이다. 새콤달콤하면서도 드라이 진이 넉넉하게 들어가 있다. 너무 음료 같지 않으면서도 적당한 술맛과 취기를 보장하는 사우스사이드는 신나지만 어느 정도 세련됨과 정갈함을 유지하는 스윙 재즈와 정말 잘 어울리는 술이라고 할 수 있겠다. 특히, 이 술은 전설적인 마피아 알 카포네가 가장 좋아했던 칵테일로 유명하다. 흥미로운 것은 알 카포네는 불법 밀주를 통해 어린 나이에 막대한 영향력을 쌓을 수 있었고, 재즈 시대의 대표적인 문학 작품인 스콧 피츠제럴드의 소설 '위대한 개츠비'의 주인공의 거부 개츠비 역시 이 밀주를 통해 부를 축적하였다.


최근 적지 않은 사람들이 MZ세대를 곱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이들은 MZ세대가 이기적이고, 쾌락주의적이며, 근시안적으로 살아가는 허무주의자라고 한다. 그러나 앞서 살펴본 바와 같이 구세대 시선에서 이해가 가지 않는 신세대라는 주제 역시 클리셰한 내용이다. 1920년대의 재즈 시대도 지금의 MZ세대와 같은 비판에 시달렸던 세대들이 주도했던 시대였다. 이전과는 분명히 다른 새로운 가치관과 문화가 일으키는 우려도 있을테지만 1920년대의 재즈 음악과 문학 그리고 수많은 사교모임이 그랬던 것처럼 이들이 훗날 어떤 문화적 풍요로움이나 창의의 역동성을 우리에게 불어 넣어 줄지도 모를 일이다.

이전 01화 엘리엇 스미스와 조니 워커 레드 위스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