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 우주와 하나가 되는 신성한 합일
앞에 놓인 거대한 캔버스, ‘No. 14’가 비로소 스스로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나는 그저 조용히 붓을 들고 색을 얹는 행위를 반복했을 뿐인데, 이 두 개의 색 덩어리는 이제 나를 넘어선 존재가 되었다.
붉고 푸른 거대한 색채의 덩어리가 나를 압도한다. 붉은색은 불타는 듯한 열정으로 나의 시선을 단숨에 사로잡고, 그 아래의 푸른색은 깊은 심연처럼 묵직하게 그 존재감을 드러낸다. 두 색의 경계는 희미하고 모호하여, 마치 경계 없는 내면의 풍경을 보는 것 같다. 붉은색은 끓어오르는 감정의 소용돌이로 나를 이끌고, 푸른색은 차분하고 고요한 감정으로 나를 감싼다. 그림에 압도되어, 존재와 주변의 모든 것이 사라지는 듯한 경험을 한다. 오직 그림과 나만이 존재하는 듯한 이 순간, 무한한 공간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마크 로스코, 'No.14'.
붉은색과 푸른색의 충돌은 내 내면의 감정들을 흔들고, 나는 이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러나 이 무력함은 불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존재를 초월하는 경험으로 나를 이끈다. 나는 그림 속에서 나의 한계를 깨닫고, 더 큰 존재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또한 붉은색은 인간의 열정, 고통, 그리고 신을 향한 갈망을 담고 있다. 나는 이 붉은 면을 채우며 인류가 겪어온 무수한 고뇌와 희생을 묵상한다. 그 아래의 푸른색은 세상의 끝없는 어둠, 슬픔, 그리고 깊은 고독을 의미한다. 하지만 동시에, 그 어둠 속에서 빛을 찾으려는 인간 영혼의 침묵 속 외침이기도 하다.
이 작품을 바라 볼때에, 자신의 가장 깊은 곳에 숨겨둔 감정들과 마주하길 바란다. 그림이 당신의 감정을 대변하고, 당신의 내면에 깊이 감정이입되어 당신의 영혼을 어루만져 주기를. 이 색채들이 당신의 아픔을 공감하고, 당신의 기쁨을 함께 나눌 수 있는 친구가 되기를.
그림은 눈에 보이는 풍경을 그리는 것이 아니다. 나는 모든 형상을 지워버렸다. 오직 색과 면만을 남겨 두었다. 그것은 관람객의 눈이 아니라 영혼에 말을 걸기 위해서다. 이 붉은색과 남색의 경계는 육체의 한계와 같다. 하지만 그 사이의 희미한 틈은 영혼이 육체를 벗어나 빛을 향해 나아가는 문과 같다. 이 작품 앞에서 당신의 눈은 더 이상 그림을 '보는' 행위에 머무르지 않는다. 당신의 의식은 색의 파동에 휩쓸려 점차 고요해지고, 마침내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바로 그 순간, 세상의 소음으로부터 벗어나 자신과 신, 그리고 우주와 하나가 되는 신성한 합일과 양자적 얽힘을 느끼게 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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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Mark Rothko) 의 관점에서 그림 읽어 가기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러시아 제국 출생이지만 미국으로 이민하여 주로 활동했으며, 거대한 색면(Color Field) 회화인 《주황, 빨강, 노랑(Orange, Red, Yellow)》과 같은 작품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