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크 로스코, 순수한 감정에 온전히 항복, 중첩
예술이 인간의 깊은 감정에 말을 걸어야 한다고 늘 믿어왔다. 내 작업에 들어서는 순간은 물감을 섞거나 예쁜 그림을 그리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 존재의 본질을 찾아 기쁨, 절망, 환희 같은 감정을 캔버스에 담아내는 일이다.
'오렌지와 옐로우'는 바로 그런 순간을 담아낸 작품이다. 따뜻하고 생동감 넘치는 이 색들을 택했다. 한 겹, 한 겹. 층층이 쌓아올린 석양의 찬란한 빛이나 새로운 하루의 불타는 에너지처럼, 이 작품이 꿈틀꿈틀 살아 숨 쉬기를 바랐다.
하지만 내 예술의 진정한 목적은 아름다움에 있지 않다. 그것은 물리적인 세계를 초월해 더 깊은 무언가와 연결되는 것이다. 사람들이 내 작품을 그저 바라보는 것을 넘어, 온전히 느끼기를 원한다. 이 캔버스 앞에 서서 조용이 속닥속닥 색들과 대화를 나누기를 바란다.
오렌지와 옐로우 사이의 부드럽고 흐릿한 경계는 실수가 아니다. 그것은 색채의 아우라 속으로 자신을 잃어버리고, 현실의 딱딱한 선들을 놓아주며 순수한 감정에 온전히 항복하라는 초대이다.
마크 로스코 (Mark Rothko) ‘Orange and Yellow’
내 그림은 영혼을 들여다보는 창이다. 마치 양자 중첩처럼, 이 색면들은 다양한 감정 상태를 동시에 품고 있다. 따뜻함과 고요함, 희망과 사색, 이 모든 감정의 파동이 한 공간에 어른어른 공존한다.
이 그림을 마주하는 순간, 그제야 하나의 특정한 감정이 '관측'되어 현실화될 수도 있고, 혹은 여러 감정들이 모호한 채로 당신의 마음을 꿀렁꿀렁 흔들 수도 있다.
그림에 대한 나의 경험은 지극히 주관적인 현상이다.
이 그림이 내게 불러일으키는 가장 강력한 감정은 숭고함이다. 숭고함은 아름다움과는 다른 종류의 미적 경험이다. 아름다움이 균형과 조화에서 오는 안정적인 감정이라면, 숭고함은 압도적인 힘 앞에서 느끼는 경외와 두려움이 뒤섞인 감정이다. 이 그림은 내게 압도적인 색채의 힘을 보여준다. 오렌지와 옐로우의 충돌은 내 내면의 감정들을 흔들고, 나는 이 거대한 힘 앞에서 무력해진다. 그러나 이 무력함은 불쾌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나의 존재를 초월하는 경험으로 나를 이끈다. 나는 그림 속에서 나의 한계를 깨닫고, 더 큰 존재와 연결되는 듯한 느낌을 받는다.
누군가는 이 그림에서 노을을 떠올릴 수도 있고, 또 다른 누군가는 불타는 태양을 상상할 수도 있다. 하지만 나에게 이 그림은 오직 내 내면의 풍경이다. 옐로우는 나의 희망을, 오렌지는 나의 불안을 상징하는 것 같다. 두 색의 경계가 모호한 것처럼, 나의 내면에서도 희망과 불안은 언제나 함께 존재한다. 그림을 통해 나는 나의 내면을 깊이 들여다보고, 내가 미처 알지 못했던 감정들을 마주하게 된다.
이 그림은 내면을 비추는 거울이라고 생각한다.
이 그림은 내면을 탐험하고 숭고함을 경험하게 하는 통로이다. 무한한 공간 속으로 빠져들고, 존재를 초월하는 경험을 한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는지를 더 깊이 이해하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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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크 로스코 (Mark Rothko) 의 관점에서 그림 읽어 가기
추상 표현주의의 대표적인 화가 마크 로스코(Mark Rothko, 1903-1970)는 러시아 제국 출생이지만 미국으로 이민하여 주로 활동했으며, 거대한 색면(Color Field) 회화인 《주황, 빨강, 노랑(Orange, Red, Yellow)》과 같은 작품으로 유명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