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크사이, 여러 상태가 중첩
저 거대한 파도가 솟구치는 소리가 들리는가? 쏴아아아-! 콰앙! 하고 부서지는 물거품 소리, 저 아래 작은 배들이 파도를 헤치며 찰싹찰싹! 부딪히는 소리까지. 나는 이 모든 소리를 나의 붓끝으로 담아내려 애썼어. 파도의 용틀임은 마치 거대한 용이 으르렁거리며 포효하는 듯하고, 작은 물방울들은 톡톡톡! 터지며 생명의 춤을 추는 듯하지 않은가.
거친 파도가 휘몰아치고 또 휘몰아치는 동안, 배들은 위태롭게 흔들흔들거린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뱃사람들은 묵묵히 노를 저으며 영차영차! 나아가고 있지. 이 모든 순간들이 하나의 생생한 소리 풍경을 이루어내. 파도 끝에서 촤르르륵! 부서지는 물보라는 순간의 아름다움을, 그리고 그 뒤에 찾아오는 고요는 또 다른 시작을 알리는 듯해.
가츠시카 호쿠사이 '후가쿠 36경'
평생 자연의 이치와 그 안에 숨겨진 신비에 매료되어 살았어. 파도가 우르릉 쾅쾅! 소리를 내며 솟구쳐 오르는 모습은 마치 예측 불가능한 운명의 장난처럼 보이기도 하지. 하지만 그 모든 거친 움직임 속에서도 나는 질서를 보려 했어. 파도의 형태가 끊임없이 변하고 사라지지만, 그 근원적인 에너지와 움직임은 언제나 존재하지 않는가?
세상의 모든 것이 쪼개지고 쪼개져 더 이상 나눌 수 없는 아주 작은 알갱이들로 이루어져 있다지? 마치 파도가 수많은 물방울의 집합체이듯이 말이야. 그 작은 알갱이 하나하나가 특정한 위치와 속도를 동시에 가질 수 없고, 관측하기 전까지는 여러 상태가 중첩되어 있다니, 얼마나 신비로운가?
이 파도 역시 그러해. 그림 속 파도는 거대하고 견고해 보이지만, 사실은 수많은 물방울들이 불규칙한 듯 규칙적으로 모여 찰나의 순간을 이룬 거야. 이 물방울 하나하나의 움직임을 정확히 예측할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파도의 흐름은 거스를 수 없지. 마치 양자 세계의 미시적인 불확실성이 모여 거시적인 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말이야. 붓은 어쩌면 이 거대하면서도 미세한, 예측할 수 없으면서도 질서 정연한 우주의 춤을 담아내려 했던 것이야. 파도의 부서짐과 솟구침 속에서, 나는 그 작은 알갱이들이 빚어내는 삶의 중첩된 가능성과 필연적인 흐름을 노래하고 싶었을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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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츠시카 호쿠사이 작가 관점에서 그림 읽어 가기
가츠시카 호쿠사이(葛飾北斎, Katsushika Hokusai, 1760-1849)는 일본(에도 시대)의 대표적인 우키요에 화가로, 특히 연작 판화 《후지산 36경(富嶽三十六景)》 중 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가나가와 해변의 높은 파도 아래 (The Great Wave off Kanagawa)》와 《호쿠사이 만화(北斎漫画)》 등의 작품으로 잘 알려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