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그날은 유난히 푸르렀지. 어떤 날은 붓을 들기가 왜 그렇게 무거웠는지. 손끝에 온 힘을 실어 한 획 한 획 그려나갔지. 뚝, 뚝. 물감이 떨어지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 수없이 많은 점들이 모여 선이 되고 면이 되었지. 끝없이 이어지는 점들, 그 속에는 나의 고독과 그리움이 숨어있었네.
이 점들은 하나하나가 모두 나의 얼굴이자 너의 얼굴이었어. 밤하늘의 별을 보듯, 반짝이는 눈빛으로 날 바라보던 너의 얼굴. 그 눈동자에 비친 나의 모습. 모두 점이 되어 이 캔버스에 콕콕 박혔지.
콕, 콕, 콕. 그렇게 나의 점들은 하나둘씩 너에게 향했지. 닿고 싶어서, 만지고 싶어서. 이 점들이 모여 하나의 온전한 원이 되면, 너와 내가 하나가 될 수 있지 않을까.
점들은 뚝뚝 떨어지는 물방울 같기도 했네.
김환기,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
툭, 툭, 툭. 떨어지는 물방울이 모여 바다가 되고, 강이 되고, 하늘이 되는 것처럼. 내 점들도 그렇게 모여 너와 함께하는 하나의 온전한 우주가 되었네. 이 우주는 너와 나의 이야기로 가득 차 있지. 사랑, 이별, 그리움, 그리고 다시 만날 수 있으리라는 희망.
이 푸른빛 점들. 저 바다 깊은 곳을 향해, 그리고 저 하늘 높은 곳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고 있지. 점 하나하나가 나의 숨소리 같아.
후, 후. 내쉬는 숨소리마다 너의 이름이 들리는 듯해.
양자역학의 세계처럼, 이 점들은 고정된 하나의 위치에 머무르지 않아. 동시에 여러 곳에 존재하며, 관측하는 순간 하나의 모습으로 응축되지. 찰나의 순간, 당신의 눈빛이 닿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이 점들은 당신만의 의미로 확정되는 거야.
너에게 닿고 싶어. 단 하나의 점이라도 너에게 닿아 너를 위로하고 싶어.
이 점들 속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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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환기 작가 관점에서 그림 읽어 가기
한국 추상미술의 선구자인 김환기(Kim Whanki, 1913-1974)는 한국뿐 아니라 일본, 프랑스, 그리고 생의 마지막을 보낸 미국 뉴욕에서 활동하며 한국적 서정주의를 바탕으로 한 전면점화(All-over Dot Painting) 양식을 확립했으며, 그의 대표작으로는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우주(Universe) 05-IV-71 #200》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