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희 양금선, 수리대독 공저
긴급 착륙: 광화문 상공, 우주 쇼의 개막
“할머니, 서울은 정말 특별한 곳이군요."
천산 대회의장 준비로 분주한 공로방에서, 시우가 창밖을 바라보며 감탄하듯 중얼거렸다. 그가 느끼는 서울은 하나의 도시가 아니었다.
할머니께서는 고개를 끄덕이셨다. "그렇지, 시우야. 서울은 우주 연합국이 주목한, 사방이 생명력으로 넘쳐나는 도시다. 그 이름조차 순수한 우리말, '서라벌'에서 유래된 곳이니."
주니가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거들었다. "맞아요, 마치 지붕 없는 미술관 같아요! 고전과 현대가 뒤섞인 산수화 같다고 할까요?"
할머니는 두 명에게 차를 건네며 설명을 이어가셨다.
"이곳 서울, 그 중심에는 조선 왕조의 법통을 잇는 경복궁과 광화문이 있지. 단순한 건축물이 아니라, 600년 역사의 정체성을 상징하는 상징물이다. 그리고 그 뒤를 든든하게 받치는 북한산!"
시우가 눈을 빛냈다. "북한산은 서울의 주산(主山)으로서 깊은 무게와 정신을 담고 있다고 하셨죠?"
"암, 그렇고말고. 북한산, 북악산, 낙산, 남산, 인왕산이 성곽으로 서울을 감싸고 있지. 외곽으로는 도봉산과 관악산이 수호신처럼 버티고 있어. 우주의 기운이 모이는 영험한 곳이지."
주니가 성곽의 문들을 떠올렸다. "숭례문이나 흥인지문 같은 문들은 시간이 흐르면서도 단순한 통로가 아니라, 역사의 상징적인 가치로 남아 있잖아요."
"그렇다. 문(門)은 시대를 관통하는 통로이자, 신인류의 새로운 시대를 여는 상징이기도 하다." 할머니는 의미심장하게 말씀하셨다.
수리대독, 서울 바라보다, 2025
시우는 현대 문명이 만들어낸 역동적인 힘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도심 속에서 롯데월드 타워, 남산타워, 63빌딩 같은 마천루들이 고전 건축물과 어우러져 있는 게 놀라워요."
할머니는 창밖으로 손짓하며 도시를 휘감아 흐르는 강을 가리키셨다. "그리고 저것이 바로 한강(漢江)이다. 총 494km에 달하는 이 강은 마치 하늘의 은하수가 도시를 휘감아 돌며 흐르는 것 같지 않느냐? 강원도 태백의 검룡소라는 800고지에서 시작되어 서울의 생명줄이 된 곳이다."
"한강이 서울을 숨 쉬게 하는 동력원인 셈이군요!" 시우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 여의도, 반포, 뚝섬, 난지... 총 11개의 한강 공원이 조성되어 시민들과 세계인들이 찾는 명소가 되었지. 서울은 단순한 수도가 아니다, 얘들아. 고대와 현대, 인간과 자연, 그리고 우주의 기운이 가장 역동적으로 교차하는 대지의 심장이다. 이 모든 것이 우리가 우주 연합국으로 나아가는 기반이 되는 것이다!"
할머니의 설명에 시우와 주니의 눈빛은 더욱 조마조마한 흥분으로 타올랐다. 천산 대회의장을 준비하며, 그들은 서울이라는 도시가 곧 우주 문명 시대로의 대화합을 실현할 가장 중요한 장소임을 깨달았다.
우주 회의장에서 급히 돌아온 지 한 달여. 신인소년 시우의 심장은 매 순간 조마조마하게 뛰었다. 그는 할머니 곁을 떠나지 않고 그림자처럼 따라다녔지만, 할머니는 시우의 조급한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평상시와 다름없이 묵묵부답이셨다.
‘도대체 왜? 평생을 지구의 미래와 우리들의 구원에 헌신했던 분이, 왜 이 중대한 순간에 아무 말씀도 없으신 거지?’
시우는 속이 타들어 가는 초조함을 억누르며 무기력하게 시간을 지탱했다. 그때, 옆에서 눈치만 보던 주니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시우의 팔을 붙잡았다.
"야, 시우야. 너 요즘 무슨 일 있냐? 며칠째 음식도 제대로 안 먹고, 도대체 왜 그래? 솔직히 말해 봐! 너 혹시 우주 회의장에서 사고라도 쳤어? 너무 빨리 돌아온 게 수상했단 말이야!"
주니가 며칠간 졸라댔지만, 시우는 아무 대꾸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 어떤 말이나 행동도 타인에게 발설할 수 없는 '금문율(禁門律)'로 단단히 무장되어 있었다. 특히, "할머니가 내가 알던 분이 아닌 것 같다"는 등의 생각은 입 밖으로 꺼낼 수도 없었다. 비록 청년이 되지 않은 나이였지만, 오랜 수련을 통과한 '자아완성반' 최고의 통과자로서 시우는 침묵해야 했다.
시우는 그저 할머니의 기상만을 살필 뿐, 더 이상 재촉할 수도 없었다. 한 달여 만에 부쩍 수척해진 시우를, 주니, 역시 이해할 수 없는 할머니의 태도에 더욱 안절부절못했다.
하늘을 응시하는 할머니의 비밀
할머니께서는 평소와 다르게 거실을 서성이시며, 가끔은 뻥 뚫린 듯한 거실 위의 하늘만을 응시하셨다. 그녀 고유의 미소 아닌 미소 띤 듯한 표정은 무언가를 기다리는 듯 깊은 생각에 잠겨 있었다.
시우는 마침내 용기를 냈다.
"할머니, 무슨 일 있으세요?"
"아니다, 시우야. 별일 아니야."
할머니는 말끝을 흐리시며 줄곧 하늘의 동정만을 살피셨다.
심상치 않은 것은 그뿐이 아니었다. 평시와 다르게 제5공로방에 예속된 '흑무성반' 문하생들이 마치 할머니를 보좌하려는 듯 주변을 둘러쌌다. 할머니의 미동에도 함께 움직이는 그들의 모습에 시우는 처음 보는 긴장감에 경직되었다. 지난 한 달, 아니 최근 며칠 동안의 할머니는 자신이 알고 있던 분과 아주 멀게 느껴졌다.
긴장감이 감도는 공로방에서 수일이 흐른 듯했다. 드디어 할머니께서 입을 여셨다.
"시우야. 주니야."
나지막한 소리였지만, 두 소년은 마치 지뢰에 강타라도 당한 듯 "예!" 하고 동시에 외쳤다. 그동안 거실에 가득했던 답답함과 경직감은 처음 겪는 긴장감 그 이상이었다.
할머니께서는 거실 한편의 둥근 안락의자를 손으로 가리키셨다.
"저곳에 편안히 앉아 있거라."
시우와 주니는 숨을 몰아쉬며, 평소와 다른 할머니의 엄숙한 언동에 마음을 진정시키고 의자에 몸을 깊숙이 숨기듯 앉았다.
우주에서 직송된 실시간 영상
약 20여 분이 흘렀을까.
파동과 함께 갑자기 대형 모니터가 출현했다. 공로방 사람들 중 그 누구도 이 거실에 이런 장치가 있는 것을 본 적이 없었다. 화면 재생을 위한 시도처럼 파생음이 들리자, 거실 안의 사람들은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긴장했다. 모두가 할머니의 안색에만 집중되었다.
할머니께서는 그 어느 때보다 안도감과 장엄함이 가득한 미소를 만면에 띠고 계셨다.
두 소년은 '나쁜 징조는 아닌 것 같다'고 생각했지만, 긴장감은 최고조였다. 그때, 화면을 본 시우가 "억!" 소리를 내며 놀라 벌떡 일어났다.
"아니, 저... 저기!"
시우는 눈을 비비고 화면을 뚫어지라 보았다. 화면에는 다름 아닌, 우주 화상 회의를 주관하시던 12지신의 상두님이 계셨다!
"할머니... 상두님 아니신가요?"
시우는 말을 잇지 못했다.
홀로그래픽 화면 속에서 상두께서는 할머니를 향해 손을 흔들며 다정한 지인처럼 인사를 나누셨다. 할머니 역시 환하게 미소 지으시며 수인사를 받으셨다.
상상할 수 없는 현상!
화면의 배경은 바로 한국의 수도, 광화문 광장 상공이었다. 한두 대가 아닌 족히 100여 대는 되어 보이는 UFO 우주선들이 상공에 집결해 있었다. 이 홀로그래피 방송은 상두께서 진두지휘하여 할머니께로만 직송되는 우주 세계의 고도로 문명화된 특수한 방식의 '단 하나의 투영식 방송'이었다.
우주선의 형태, 크기, 색상이 모두 달랐고, 외계 우주인들의 체형과 신장, 피부색 역시 다양했다. 80cm의 소형 우주인부터 3m에 육박하는 거구의 상두님까지, 마치 이 공간 안에 함께 마주하고 있는 듯 생생했다. 시우는 위성 회의장에서 함께 있는 듯한 착각에, 그간 지구에서 겪은 어려움과 돌아가지 못한 정황을 속 시원히 털어놓고 싶은 충동을 느꼈다.
희망의 글귀, 신세계의 선포
할머니와 상두님의 대화는 말로 하는 것이 아니었지만, 표정만으로도 나쁜 상황이 아님을 읽을 수 있었다.
대화가 이어지는 중에, 우주선에서는 거대한 아치형의 글씨가 새겨진 대형 두루마리 형태의 현수막이 광화문 광장을 향해 펼쳐졌다. 이는 광장에 모인 한국인 인파와 세계인들에게 명확한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듯했다. 우주선과 외계인들이 이 글귀 주변을 곡예처럼 선회하며,
"이 글귀를 똑똑히들 보시오!"
라는 각인된 메시지를 현장 사람들에게 전했다.
그것은 바로 공로방에서 익히 보아왔던, 할머니께서 늘 소리쳐 오던 그 문구들이었다!
"신인류 대서사시! 미래 세계 개조·개혁·창조! 신세계 창조·꿈의 실현·희망 성취·목적 달성·자아 완성!"
"우주 문명 시대로의 대화합! 신인의 세계 창조·신문명 혜택·우주 산업 개발·우주 의학·우주 과학·홍익 사상으로 우주 세계 대 연합국 창제!"
이 글귀들을 본 시우와 주니는 그동안의 경직되었던 몸과 마음이 조금씩 평상심으로 돌아오는 것을 느꼈다. 두 소년은 눈물을 흘리며 동시에 일어나 서로를 얼싸안았다. 할머니와 공간의 모든 이들 눈가에도 감격의 이슬이 맺혔다.
할머니와 상두님은 한 분은 우주의 수장으로서, 다른 한 분은 지구의 미래를 위해 평생을 바친 분으로서, 화합을 위한 대화의 장을 이어가고 계셨다. 광화문 상공의 우주인단 방문은 지구인, 특히 대한민국에게 축배의 결과로 향한 진일보의 대현장임이 분명했다.
할머니께서는 벅차오르는 감정을 애써 감추려 하셨지만, 가슴속 깊은 곳에서는 한 줄기 눈물이 계곡을 타고 끝없이 흘러내렸다.
광화문 상공에서는 우주 비행기와 우주인들의 '광합성 우주 쇼'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청와대, 군부, 언론 매체들은 이 불가능한 현실에 직면하여 대형 폭풍에 휩싸인 듯 좌충우돌하고 있었다.
하지만 우주선 주변에서 뿜어져 나온 광채의 파노라마와, 지구인으로서는 처음 듣는 굉음과 광채는 점차 사람들에게 안도감과 신비로움을 안겨주었다. 마치 따스한 봄 햇살 같았고, 어머니 품속에서 듣는 자장가 음률 같기도 했다. 지축이 울릴 정도의 굉음과 빛의 대파노라마를 대하게 된 서울 시민들은 놀라움과 경이로움에 휩싸였다.
이 거대한 우주 쇼는 지구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까요?
그리고 할머니와 상두님의 다음 대화는 무엇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