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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장은기 Feb 04. 2017

영화관에 대한 단상

TV를 켜니 한 지역방송에서 오우삼 감독 특집영화 '종횡사해', '영웅본색'을 방영한다. 오우삼 감독 초기 영화로 일명 홍콩느와르 장르로 일컬어지는, 우리들의 사춘기와 청년의 시기를 함께했던 영화들이다.


약간 촌스러워보이는 화면속에 나와 우리들의 젊은시절의 우상, 장국영과 주윤발이 청년의 모습으로 나를 반긴다(장국영이 게이였다는 것은 중요한게 아니다. 그냥 그때의 우상으로 마음속에 영원할 뿐이다 ).




젊은시절 그때, 영화를 보러간다는 것은 단순히 영화를 보는 것을 의미하는것이 아니었다.


피카디리 극장, 허리우드 극장, 대한 극장, 국도 극장... 나는 그곳에서 좋아하는 이들과 영화를 보았다.


전화로 미리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해놓고, 신문에서 영화상영시간을 체크한 뒤, 일찌감치 미리 만나 영화표를 예매한 후 함께 밥을 먹거나 커피한잔을 나눈 후 영화를 감상하곤 했다.


휴대폰이 있었던 때가 아니므로, 미리 집이나 회사전화로 약속시간과 장소를 정해 놓아도 30분 내지 1시간을 기다리는 것은 다반사였으나, 눈앞에 나타난 친구를 보면 짜증났던 그 기다림의 시간은 존재하지 않은 것처럼 사라졌다.


인기있는 영화들은 일찍 가도 매진일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영화관 주변에는 어김없이 암표상들이 영화표 예매를 놓친 사람들을 귀신같이 발견해 내고는, 웃돈을 얹어 표를 팔기 일쑤였고, 우리는 종종 그 암표를 울며 겨자먹기로 사기도 하였다.


어떤 때는 친구를 만났다가 계획없이 영화를 보기로 하고, 극장을 찾아갔다.

암표상들이, 영화는 시작 됐지만 광고나 예고편이 상영중이니 지금 들어가면 영화를 볼수 있다고 꼬드겼고, 우리들은 암표를 구입해 극장에 부랴부랴 들어가기도 했는데, 영화관 직원은 친절하게도 늦게 들어간 우리를 위해 작은 손전등을 비추며 자리를 찾아주었다(암표상들과 박스오피스 직원이 한통속이라는 설이 유력하다 ㅎㅎ).


비록 지금처럼 스크린의 크기가 크지도 않고, 바닥은 누군가가 흘린 음료수 때문에 끈적거리며, 앞에 앉은 사람의 머리가 화면 일부분을 가려 힘들게 목을 빼고 영화를 봤어도, 영화의 감동을 감소시키지는 못했다.


대학시절 나를 좋아했던 남자아이와 영화를 함께 본적이 있는데, 고등학생이라고 하고 학생할인을 받자며 작당하고 들어가다가 대학생이라는걸 들켜 창피를 당한적도 있다. ㅎㅎ




결혼하고 아이를 낳아 육아에 전념하게 되면서, 영화를 보러갈 시간도 여유도 없어졌고, 한동안 극장에서 영화를 보지 않았다.


그리고 아이들이 성장하여 나만의 시간을 가질수 있게 되었을때는 피카디리, 허리우드, 단성사, 대한극장은 이미 없어진지 오래였다.


자신만의 이름을 가지고 있었던, 나와 추억을 공유했던 그 극장들은 이미 이름을 잃었고, CGV 강남점, 메가박스 수원점으로 불려지고 있었는데, 그것들을 발음해 보면 어쩐지 마른 낙엽처럼 건조한 느낌이 든다.




지금의 아이들은, 혹은 청춘들은 CGV에서, 메가박스에서 그들만의 추억을 만들어 갈 것이다.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나는 어느덧, 자주 옛날 것을 그리워하고, 아쉬워 하는 나이가 되어버렸다.


지나간 옛날 그시절의 영화관에 대한 기억은 함께했던 사람들과, 함께했던 그 시간들, 그리고 영화와 어우러져 때로는 생생하게, 때로는 희미하게 지금의 나의 시간을 가끔씩 채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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