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5 전쟁

by 누룽지조아

전쟁과 행복, 그 둘은 상극 관계이다. 내 행복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는 내 몸과 마음, 남, 환경이다. 전쟁이 나면 내 몸과 마음, 남, 환경에 악영향을 미친다. 기대가 고정되어 있는 경우 내 행복은 줄어든다.


전쟁은 흉사이고, 무기는 불길한 도구이다. 전쟁은 치유할 수 없는 상처와 증오를 남긴다. 많은 사람이 죽고 다치며 집 잃고 난민이 된다. 주식시장은 폭락한다. 전쟁이 끝난 후 서로 죽일 놈이라고 욕하고 교육받으며 적을 무찌르기 위해 증오의 씨앗을 가슴에 뿌린다. 시리아 전쟁에서 전쟁의 참혹상을 생생히 느낄 수 있다.


2011년 3월 바샤르 알아사드 정권의 독재 타도와 민주화를 요구하는 반정부 시위를 계기로 시리아 전쟁이 촉발되었다. 정부가 군대를 동원해 시위대를 진압하는 과정에서 시민들의 사망이 급증하자 시민들이 무장하여 반정부군을 조직하였다. 정부군과 반정부군 사이의 내전으로 확대되었다. 이후 주변국이 이해관계에 따라 정부군이나 반정부군을 지원하여 국제 전쟁의 성격을 띠고 장기전으로 들어섰다.


시리아 전쟁은 내부 권력 투쟁, 종교 전쟁, 민족 종파 전쟁, 국제 대리전 등으로 성격이 복잡해졌다. 정부군 vs 반정부군, 이슬람교 vs 기독교, 시아파(이란·레바논 헤즈볼라) vs 수니파(사우디·카타르·터키), 러시아·이란 vs 미국·유럽이 대립했다.


시리아는 오랜 기간의 전쟁으로 정부, 반정부군, 이라크 레반트 이슬람국가(ISIS, 급진 수니파 무장단체), 쿠르드족 자치정부로 쪼개졌다. 그 이후 시리아 정부(러시아와 이란 지원)는 남서부와 중앙 지역, 반정부군(터키 지원)은 북부와 북서부, ISIS는 동부 사막지역, 쿠르드족 자치정부는 동북부와 동부의 일부를 차지했다.


2011년부터 2021년까지 전쟁으로 약 38만 7천 명의 민간인이 사망했다. 2021년 말 기준 내전 직전 전체 인구 대비 난민의 비중 53%에 달했다. 시리아 내전 직전 전체 인구 2,300만 명이었다. 전쟁으로 670만 명의 실향민이 생겼고, 550만 명의 난민이 터키, 레바논, 요르단, 이집트 등 이웃나라로 난길을 나섰다.


‘시리아 국민의 약 70%가 최하위의 삶을 살고 있다. 시리아 난민 중 66% 이상이 여성과 아동이다. 요르단으로 피난 간 시리아 난민 중 80%가 하루 3달러 이하로 생활한다. 이집트로 피난 간 시리아 난민 10명 중 7명은 아이를 먹이기 위해 어른이 굶거나 식사 횟수를 줄이고 있다.’고 한다(자료원: 유엔난민기구(UNHCR) 보도자료). 민주화 시위에서 시작한 시리아 전쟁으로 대부분의 국민이 고생하고 있다. 누구를 위한 전쟁인가?


역사책에 많은 사람을 살해하고 국토를 확장한 정복자들을 영웅이라고 미화해서 기록하고 있다. 알렉산더, 칭기즈 칸, 프란시스코 피사로, 나폴레옹 등이다. 전쟁을 통해 경제적 이익과 명예를 얻고자 했던 제국주의자나 영웅주의자들이다. 약소국을 침탈하고 영토를 넓힌 행위를 해방론, 근대화론 등으로 포장했다. 마치 한 사람을 죽인 자는 살인자이고, 많은 사람을 죽인 자는 영웅이라는 식이다.


행복에 악영향을 끼친 전쟁 주모자들은 대부분 제명대로 못 살고 곱게 죽지 못했다. 알렉산더 대왕은 33세의 젊은 나이로 병사했고, 칭기즈 칸은 말에서 떨어진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다. 프란시스코 피사로는 전쟁 중에 피살되었고, 나폴레옹은 세인트 헬레나섬에 유배되어 그곳에서 죽었다. 또한, 히틀러는 2차 세계대전 패색이 짙어지자 자살했다.


전쟁 주모자들이 건설한 제국도 한결같이 망했다. 전쟁을 통해 땅을 넓히고 제국을 건설하기 위해서 돈을 마구 발행했다. 재정적자로 인해 인플레이션이 발생하고 세금 부담이 늘어났다. 재정적자로 인한 부담을 국민들에게 떠넘겼다.


땅을 넓히기 위해 화폐를 악용했다. 처음에는 가치 있는 화폐를 발행해 사용했다. 사회와 경제가 성장함에 따라 대규모 공공 공사 수행, 군대 규모 증가 등으로 국가 경제규모는 늘어나고 정부의 재정적자도 증가했다.


정부의 재정적자를 메우기 위해 세금을 증가시켰다. 남는 상품과 제품을 다른 나라에 팔았다. 생산 증가로 원재료가 부족했다. 결국 이웃나라와 전쟁을 벌였으며 정부 지출은 폭발했다. 전쟁자금을 조달하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내거나 국채를 발행하여 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인플레이션으로 실질 정부 부채는 감소했고 국민들은 물가 상승이라는 숨은 세금을 내고 국민부는 쪼그라들었다.


자본시장과 국민들이 화폐의 구매력이 떨어진 것을 눈치챘으며 화폐의 신뢰도가 추락했다. 국민, 기업 등 경제 주체들은 화폐로 살 수 있는 실물자산을 마구 샀다. 화폐는 망했고 실물자산은 폭등했다. 제국은 힘을 잃고 망했다. 전쟁에 승리하더라도 국력이 점차 쇄락해 결국 망했다.


독일 역사에 전쟁비용으로 돈 많이 써 화폐가치가 급락한 사례가 다. 1918년 11월 독일은 제1차 세계대전에서 연합국에 패했다. 혁명으로 독일 제국의 황제 빌헬름 2세가 퇴위하고 네덜란드로 망명하였으며 1919년 1월 독일의 민주공화파(사회민주당, 민주당, 중앙당)가 선거에서 승리했다. 1919년 8월 바이마르 헌법을 반포하고 바이마르 공화국이 출범했다.


독일은 전쟁으로 국토가 황폐해졌다.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거액의 전쟁 배상금 지불, 군 전력 제한, 알자스로렌 프랑스 반환, 해외식민지 포기 등 국제적 제재도 받았다. 재정적자을 메꾸기 위해 돈을 마구 찍어 내어 1923년 물가가 폭등하고 화폐 가치가 급격히 하락하는 하이퍼인플레이션이 발생했다. 수레 한가득 돈을 빵 한 덩어리와 바꿀 정도였다. 바이마르 공화국 경제는 붕괴하였다. 1929년 대공황이 발생해 경제 위기가 심해졌고 1932년 1차 세계대전 배상금 지급 불능 선언을 했다. 경제 위기 등으로 살기 어려워 극우 나치당 지지율이 상승하고 1933년 히틀러가 등장하는 계기가 되었다.

전쟁 나면 개인의 행복은 유지될 수 없다. 개인은 전쟁으로 상처받고 증오의 골이 깊어진다. 고통스럽고 개인의 삶이 파괴된다. 외세에 영향을 많이 받는 나라는 외세 개입으로 전쟁이 길어지고 복잡한 이해관계에 나라는 쪼개지며, 혼란한 틈을 타 독재정권이 등장한다. 국민들은 특히 고생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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