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보살과 어머니
제6장 세상과 환경에 대하여
2019년 책 출간 후 구순 가까운 어머니께서 저에게 고생했다고 손 편지를 써 주셨습니다.
[사랑하는 내 아들에게
엄마가 힘이 못 되어 미안하다.
아들 스스로 힘으로 지금까지 온 것
기특하고 장하고 고맙구나.
앞으로도 그 마음으로 살아라.
쓸 말이 많은 것 같더니
쓰려고 하니 없어진다.
올해는 더 건강하고 뜻한 바
다 이루어 지길 바라며 이만.
엄마가!]
젊은 시절 논일과 밭일, 6남매와 4명의 손주 키우느라 척추가 닳아 허리가 아프시다. 어머니의 낙은 텃밭 채소 가꾸기다. 지금은 밭일도 쉽지 않다.
아버지께서 돌아가시고 한 달에 한 번 고향집을 방문한다. 내 일손이 필요하다고 하실 때 군소리 안 하고 한 달에 몇 번이라도 내려간다. 어릴 적 일하기 싫어 뻔질거리고 일을 대충 했다. 지금은 내가 대충 하면 어머니가 고생하므로 더 열심히 한다. 풀을 뿌리째 꼼꼼히 뽑는다. 그리 싫던 풀 뽑기가 나이 드니 머리가 맑아지고 좋다. 정성껏 심은 채소들이 자라는 것을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밭일이 끝나고 어머니와 차 마시러 나섰다. 원광대에 수덕호라는 큰 호수가 있다. 봄철에 벚꽃이 흐드러지고, 여름에 연꽃이 청초하게 핀다. 호수 가운데 봉황각이라는 정자에서 차를 마셨다. 허리가 아파 지팡이 짚고 몇 걸음 가시다가 돌에 앉아 쉬셔야 하지만 천천히 걸으며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눴다. 밖에서 식사하시죠?라고 말하면 집밥이 맛있다고 하신다. 옛날 상황 생각하시며 돈이 아까우신 거다. 아들은 못 들은 척 조르며 괴롭혔다.
어머니는 내 삶의 시작점이자 마음의 고향이다. 모든 생명에는 어머니가 있다. 어머니는 사랑과 연민으로 애들을 키우고 보살핀다. 애들은 자기 힘만으로 스스로 자랐다고 생각한다. 그사이 어머니의 잔주름은 얼굴과 손등에 가득하고 허리가 굽어 닳아 없어진다. 자식은 어머니 뱃속에서 태어나고, 어머니에 의지하여 자라며, 슬플 때 어머니의 품에 안겨 울며 잠이 든다. 괜찮다고 하시는 어머니를 보며 위로를 받고 삶을 긍정하는 힘을 얻는다. 속세에서 살아 움직이며 치유함으로써 구제하는 관세음보살이다.
주변에 보살이나 신의 모습을 닮은 사람이 많다. 우리가 알아보지 못해 찾지 못하고 있을 뿐이다. 만나도 너무 소박해 비상함만 찾는 우리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잘 살 때는 내 덕이고 아쉬울 때만 찾는다. 위로받고 의지하고 싶으나 그런 어머니가 곁에 없을 때 진가를 느낀다.
보살은 우리 곁에 가까이 있다. 평범하고 심지어 초라하고 부족해 보이기까지 한다. 매사에 조심조심하고 우유부단한 것 같다. 곁에 있는 어머니로부터 그런 모습을 본다.
자식 낳아 똥, 오줌 치우고 어디 아플까 노심초사하며 젖과 밥을 먹여 기른다. 만물을 낳고 기르는 신의 모습을 닮았다. 내 것만 챙기지 않아 선하고 만만해 보인다. 내 것과 내가 좋아하는 것 챙길 줄 알고 세상 물정 다 알지만 모르는 척 산다.
가족 모두에게 좋은 일을 하지만 어쩔 수 없는 경우 자식에게 좋은 일을 선택하고, 좋아하는 자식을 보고 자신도 좋아하는 사람이다. 자식에게 좋은 것을 하면서 ‘내게 뭐가 생기는데?’라는 생각조차 하지 않는다.
2023년 올해가 다 가기 전에 가족들과 어머님을 모시고 조금 멀리 다녀올 생각이다. 이리저리 움직이기 불편한 어머니를 위해 휠체어를 천천히 밀고 다니더라도 좋다. 어머니의 마음과 노고를 어떤 것으로도 대신할 수 없지만 더 늦기 전에 감사드리고 싶다. 지난 일을 회상하며 함박웃음을 짓는 모습이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