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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Nov 17. 2023

9. 절대자와 인간

제6장 세상과 환경에 대하여

절대자가 있는지 없는지에 대해 논쟁해 보아야 인간의 인식 범위를 넘어서고 증명할 수 없는 문제다. 믿음의 문제고, 있는지 없는지 모호하게 존재한다면 있든 없든 시빗거리가 아니다. 마치 숫자나 함수가 아닌 무한대를 미분하려는 것과 같은 일이다.


어떤 사람들은 ‘인간이 우주를 이해하고, 유전자를 조작하여 키, IQ 등을 원하는 대로 만들고 유전병, 탈모 등이 안 생기게 할 수 있으므로 절대자의 영역을 침범했다. 10년 안에 절대자가 사라진다.’라고 주장을 하는데 지나친 과장이다. 유전자 가위를 이용하여 특정 염기서열을 인지하여 절단하고 원하는 유전자를 빼거나 넣어 유전자를 교정한다. 2012년 말 3세대인 크리스퍼 유전자 가위가 개발되어 사용 소요 시간을 대폭 줄였다. RNA(리보 핵산)로 교정하고 싶은 DNA 찾아 Cas9(제한 효소)로 DNA의 특정 부위를 자르는 방법을 사용한다.


절대자의 능력은 유전자 가위 정도가 아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지 못하는 경우 절대자에게 덤빌 자격이 없다. 에너지나 물질을 사용하지 않고 창조해야 절대자에게 덤빌 자격이 있다. 또한, 이해한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실제 창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쪼개더라고 없음까지 쪼갤 수 없으므로 이해도 제대로 한 게 아니다.


‘절대자는 무한대무한소() 같은 없음의 형상일 것 같다.’ 절대자가 우주 만물을 창조했으므로 우주 만물이 절대자의 모습을 닮았다고 말할 수 있다. 우주 만물을 다 담은 모습은 무한이나 점 같은 없음의 형상으로 귀결된다. 어떤 한 형상이라면 우주 만물의 일부만을 담은 모습이므로 우주를 창조한 절대자의 모습일 수 없다.


‘우주 만물과 절대자는 하나다.’ 우주를 다 담은 모습이 절대자고, 우주 만물의 개체 안에 복제된 절대자의 모습이 있다. 몸과 세포의 관계에 비유할 수 있다. 전체인 몸은 무한한 연관관계를 갖는 세포의 총합이다. 또한 각 세포에 전체인 몸이 복제되어 있어 체세포 복제로 전체와 똑같은 몸을 만들 수 있다. 사람마다 우주를 품고 있고 내 안의 신성은 우주 만물과 통한다. 절대자의 섭리를 따른다는 말은 내 안의 신성을 따르는 것과 같을 수 있다.


‘우주의 작동 원리에서 절대자를 느낄 수 있다.’ 우리가 절대자를 어떤 형상으로 떠올릴 수 없다면 절대자에게 어떻게 가까이 다가가 그 체취를 느낄 수 있을까? 보거나 듣거나 만질 수는 없지만 어떤 작용을 하는지는 알 수 있다. 우주 만물이 자유의지를 발휘하여 현상이 나타나고 일정한 법칙(우주의 작동 원리)에 따라 움직인다. 우주 작동 원리는 우주 만물의 뒤섞인 자유의지 발휘이고 절대자의 섭리라고 부를 수 있다. 우주의 작동 원리를 통해서 절대자의 체취를 간접적으로 느낄 수 있다.


네덜란드 유대인 철학자 스피노자도 비슷한 생각을 했다. 절대자의 어떤 모습이 아니라 세상의 작동 원리로 생각했다. 절대자에 대한 경외심을 가지고 이 원리를 탐구했다. 신을 무한히 계속되는 존재, 스스로 존재하는 실체(다른 표현은 자연이나 도)로 해석했다. 그 시대 사람들은 신은 나쁜 사람에게 벌을 내리고, 복종을 강요하는 존재라고 여겼다. 스피노자는 이런 인격화한 신은 인간이 상상으로 만들어 낸 형상에 불과하며, 사람들이 자연 현상의 원인을 ‘자연의 법칙’이 아니라 ‘인간이 상상해서 만들어낸 신’에게 찾고 있다고 주장했다.


우주의 작동 원리를 도, 이치, 자연의 법칙, 진리, 만법, 신성(神性), 신의 섭리, 불성 등으로도 불리며, 특성은 다음과 같다.

‘우주의 작동 원리는 모호하다.’ 우주의 작동 원리는 대립되는 것을 모두 포괄하므로 딱 부러지지 않고 모호하다. 상황에 따라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서는 이런 말을 하고 저기에서는 저런 말을 한다. 어쩌면 우주의 작동 원리는 같은데 상황에 따라 상대적으로 인식하고, 개념화시키는 말과 글을 사용하는 데서 오는 한계인 것 같다.


‘우주의 작동 원리는 없음과 있음의 양면성을 지닌다.’ 없는 것도 아니고 있는 것도 아니다. 없음과 있음이 혼합된 혼돈(混沌)의 상태다. 없는 것 같지만 작용은 끊임없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지만 없어지기 때문이다. 위와 같은 것을 어떤 글자와 어떤 말로 단정 지어 부를 수 있을까? 굳이 문자로 표현한다면 ‘있는 것 같은 없음’과 ‘없는 것 같은 있음’이다. 아무것도 없는 ‘없음’은 아니다. 아무것도 없는 것에서 우주 만물이라는 있는 것을 만들 수 없으므로 그 없음은 무언가 있는 없음이다. 있기만 한 ‘있음’이 아니다. 우주 만물은 있기만 하지 않고, 항상 변하며, 죽고 없어진다. 즉, ‘없음’을 내포하고 있는 ‘있음’이다.


우주의 작동 원리인 ‘없음’은 ‘있음’이라는 현상으로 나타난다. 분별심으로 ‘없음’ ‘있음’을 가른다. 있음과 없음은 같이 있으며 둘은 뗄 수 없음을 마음으로 느낄 때 우주의 작동 원리가 내 마음으로 들어온다.


‘인간과 절대자의 관계는 부모와 자식의 관계와 같다.’ 부모가 자식을 낳았지만 자식은 부모의 예속물이 아니고, 독립적 존재다. 절대자가 인간을 낳고 다스리지만 그렇다고 인간이 절대자의 완전한 예속물은 아니다. 인간은 한 명 한 명이 신성을 지닌 주체이므로 자율적으로 행동하고 자기를 창조해 가는 존재이기도 하다. 그렇다고 절대자의 섭리에서 완전히 분리된 그런 존재는 아니다. 인간은 아무렇게나 할 수 있지만 아무렇게 할 수 없다. 순간순간의 선택과 행동 단면을 보면 자유의지를 발휘해 아무렇게나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선택, 행동과 결과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우주의 인과법칙에 영향을 받아 아무렇게 할 수 없다.


자녀는 부모가 의도한 어떤 목적을 가지고 태어나지 않았다. 부모가 의도한 어떤 목적을 이루지 못했다고 열등하거나 죄가 있는 게 아니다. 자녀가 목적 달성 여부에 상관없이 그냥 자기 생각대로 살아도 소중한 존재다.


마찬가지로 인간은 절대자의 계시로 목적을 지니고 태어난 존재가 아니다. 존재는 모두 신성을 가지고 있으므로 우월하거나 열등하지 않고 그냥 산다고 죄가 있는 게 아니다. 인간은 목적 달성 여부에 상관없이 살아 있음 자체로 소중한 존재며 남에게 해 끼치지 않는 이상 긍정적인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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