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가 큰애 책장을 정리했다. 학년별, 과목별, 분야별, 시리즈 순번별로 책을 가지런히 꽂았다. 자주 찾는 책은 찾기 쉬운 곳에 놓았다. 희한하게 책장에 책을 다 꽂지 않았다. 한 20~30%를 비워 놓았다. 내가 그곳에 몇 권 더 꽂으라고 말했다.
아내는 "일부러 여유 공간을 남겨 놓아. 다 채우면 많이 넣고 보기 좋지만, 꺼낼 때나 다시 넣을 때 힘들어. 가끔 책을 읽기 위해 정리하는지, 보여 주기 위해 정리하는지 헷갈려. 보여 주기 위해 이쁘게 가득 채우는 경우 주객이 전도되는 느낌이야. 꽉 채우는 거에 죄책감도 들고."라고 말했다. 생각해 보니 맞는 것 같아 그렇게 하라고 했다.
여유 공간을 남겨 놓는 아내의 책장 정리에 책의 있음과 빈 공간의 없음이 조화를 이룬다. 있음과 없음을 한 바구니에 담는 수양과 비슷했다.
느슨함, 바보 등을 강조하는 것에 거부감이 들 수 있다. 철저함, 총명함 등이 더 중요한데 왜 반대되는 가치를 강조할까?
사회는 튀고 존재감 있는 양만 강조하고 음을 무시한다.사람들도 튀는 것을 좋아하고, 묻히는 것을 싫어한다. 그런데 하나만 중요하게 생각하면 문제가 발생한다. 튀는 것만 좋아해서 튀는 행동만 하면 결국 튀지 못하고 견제만 받는다. 튀지 않아 묻혀 있는 음의 가치를 제자리로 되돌려 공존하는 음양의 균형을 찾고 싶다. 상황에 따라 어떤 가치는 숨고 어떤 가치는 드러난다. 공존하는 두 가치 중 어느 하나만 맞다고할 수 없다. 다 포용하고 상황에 따라, 자기 위치에 따라, 상대에 따라 무의식적으로 필요한 것이 필요한 만큼 나오게 한다.
빡빡함에 어떤 문제가 있는가? 빡빡한 경우 자기를 괴롭히고 남을 못살게 굴며 여유가 없어 허둥댄다. 원칙은 느슨하게 정하고, 정한 원칙은 지킨다. 법, 규정, 약속 등이 없어도 문제지만 너무 많으면 더 큰 문제다. 지켜야 할 법 등이 너무 많아 이해하기도 어렵고 지킬 수 없다. 큰 도둑은 다 빠져나가고 좀도둑만 잡는다.
숙성된 느슨함을 가진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는가?
‘자기를 꽉 조이지 않는다.'힘을 빼 편안하고 자연스럽다. 스트레스가 적고, 스스로를 자책하지 않는다.다가가기 편안한 사람이며남의 힘든 일을 스트레스받지 않고 들어줄 수 있다. 겉보기에 힘을 꽉 주어야 할 순간에 집중하지 않아 실수를 많이 하는 사람 같다.
‘남을 꽉 조이지 않는다.'남을 잘 포용한다. 관대하여 구성원의 반발이 적고 잘 협력한다. 겉보기에 관계가 느슨해 깊게 사귀는 사람이 많지 않은 사람, 까다롭지 않아 만만한 사람 같다.
‘시간과 공간을 꽉 채우지 않는다.'시간적 여유가 있다. 전체 큰 그림을 보며, 중요한 것을 깊이 생각할 수 있다. 힘을 보충하여성실히 헤쳐 나가고새로운 기회를잡을 마음의 여유가 있다. 공간적 여유가 있다. 햇볕과 공기가 들락날락거려 밝고 상쾌하다. 쓰지 않는 것을 치울수록 있는 것의 가치가 살아난다. 생각이 단순해져 의식이 쉬고 새로운 생각이 떠오른다. 겉보기에 한 번 더 생각하기에 우유부단하고한계까지 자기를 몰아붙이지 않아 열정적으로도전하지 않는 사람 같다.
숙성된 느슨함은 느슨함만 있는 느슨함이 아니다. 나사를 쪼여야 할 때는 꽉 죈다. 느슨함만 있으면 집중하지 않고 우유부단하며, 열정적으로 도전하지 않는다. 숙성된 느슨함은 느슨함 속에 집중과 철저함을 감추고 있다.
기다려야 할 기간은 길고 결정적인 순간은 짧다. 숙성된 느슨함은 기다려야 할 기간에 집중과 철저함을 무한 반복하여 힘을 빼고 편하게 있으며, 결정적인 순간에 집중한다.시간이 흘러 돌이켜 보면 결과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