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 맑음과 밝음: 흐르고 비우다

제3장 수양에 대하여

by 누룽지조아

수양하면 한 생각에 머물지 않아 마음이 맑다.

‘한 곳에 머물면 썩어 혼탁해진다.’ 고여 있는 물은 산소를 흡수할 수 없어 산소 부족으로 수중생물이 죽는다. 사체는 부패하여 산소가 더 부족해진다. 사체를 분해하는 미생물이 살 수 없고 질소가 발생하며 사람이나 육지 동물이 썩은 물을 마시고 간세포가 파괴되거나 신경이 마비된다. 심하면 죽는다.


‘한 곳에 머물면 독소가 있는 남조류가 늘어난다.’ 저수지는 물이 흐르지 않아 산소를 흡수할 수 없고 여름철에 인이 많이 포함된 축산 분료, 퇴비가 폭우로 저수지로 유입된다. 저수지 물속의 산소량이 급격히 줄어든다. 번식이 빠르고 광합성으로 스스로 산소를 만들어 낼 수 있는 남조류가 늘어나는 녹조현상이 발생한다. 산소 부족과 남조류의 독소로 붕어가 죽어 물에 둥둥 뜬다.


‘움직이는데 무게 중심을 바꾸지 않으면 자빠진다.’ 살아 있는 것은 움직이며, 움직임에 따라 무게 중심이 변한다. 주변 환경과 상황이 변화할 때 넘어지지 않으려면 자세를 바꾸거나 움직여야 한다. 생각도 마찬가지다.


머문 생각은 썩어 혼탁해지고 독소가 나온다. 나도 변하고 환경도 변한다. 사람들은 한 곳에 머물기를 좋아하고 변화를 싫어한다. 이미 나만의 생각과 경험이 있고, 변한 환경이나 상황을 내 머문 관점에 맞추어 해석한다. 탁해 사물의 본질을 꿰뚫어 볼 수 없다.


수양으로 고정된 생각이 없으며 한 생각에 집착하지 않아 마음이 맑다.



수양하면 가득 채우지 않아 마음이 밝다.

물건들이 가득 차 있는 방에는 빛이 들어갈 공간이 없어 컴컴하다. 마음을 비우면 빈 공간이 생기고, 빈 공간으로 깨달음의 빛이 비쳐 밝아진다. 진리를 터득한 사람은 밝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어둡고 운이 사납다.


기대나 욕심 그득한 마음으로는 일이 잘 안 풀린다. 상대는 그 기대와 욕심을 잠시 모를 수 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 상대도 다 안다. 상대와 관계가 나빠지며 일이 꼬여 고민과 걱정이 많아진다.


일이 잘 안 되는 경우 포기하고 싶어 진다. 포기와 마음 비우기는 내려놓는다는 의미로 비슷하나 다르다.


포기는 더 이상 못하겠다는 말이지만, 마음 비우기는 외부 감각자극에서 오는 생각을 중지하고 현재의 나에 집중한다. 포기는 꼭 성공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 실패하면 실패를 받아들이지 못해 좌절한다. 반면 마음 비우기는 성공하고 싶은 마음은 있으나 결과에 집착하지 않아 성공하든 실패하든 결과를 완전히 수용하고 감사하게 받아들인다.


마음 비우기를 두 가지 방법으로 해 보았다. 직접적으로 아무 생각, 감정, 의지가 없는 상태로 들어가기 위한 시도를 했다. 고등학교 때 이성에 대해 호기심을 줄이려고 머리 뻣뻣이 세우고 앞만 바라보며 생활했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은 사라지지 않았고 목 근육이 너무 긴장해 뻣뻣해졌으며 목만 아팠다. 마음을 억눌러 마음이 크게 반발했으며 괴로웠다. 없애려는 시도는 힘들고 번번이 좌절되었다. 한판패였다.


다른 방법으로 시도했다. 생각, 감정, 의욕을 자연스럽게 오가도록 놔두었다. 머리를 뻣뻣이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보고 다녀 목이 아프지 않았다.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뛰어놀도록 바라보고 내버려 두었다. 시간이 흘러 자연스럽게 이성에 대한 호기심이 잠잠해졌다. 몸이든 마음이든 이미 있는 것을 없애려 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이해했다. 나를 무언가에 내맡기고 잘돼면 고맙고 잘 안 돼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것 같다.


어릴 적 졸면서 집에 걸어간 경험이 있었다. 내가 행위를 이끌지 않고 무언가에 내맡기고 이끌려 간 것 같다. 아무 생각 없이 걸었다. 넘어지지 않았다. 어떤 감정도 안 들었고 시공간이나 나를 느끼지 못했다. 나와 세상이 한 덩어리였다. 집에 저절로 왔다. 지금 생각해 보면 무심 상태와 유사한 것 같다.


졸면서 걷기를 응용해 요즘에 눈 깜박이며 졸 듯이 고등학교 운동장을 걷는다. 눈을 반쯤 뜨고 다니므로 다른 사람이나 나무와 부딪히지 않는다. 균형이 흐트러져 비틀거리기도 한다. 나를 신성(본성, 도, 불성, 참나, 배경자아 등으로 표현하기도 함)에 온전히 내맡기기 위한 시도다. 외부의 감각자극에서 오는 생각이나 감정을 중지하고 현재의 나에 집중한다. 숨소리, 근육 움직임, 땅에 발 접촉, 팔 흔들림, 머리 눌림 등을 집중하여 바라본다. 자율신경은 의식에 의지하는 않고 스스로 존재하므로 자율신경의 움직임을 느끼는 게 신성을 만나는 직접 체험이고, 몸은 신성의 작용으로 나타나는 현상이므로 몸의 움직임을 느끼는 게 신성을 만나는 간접 체험인 것 같다. '나를 신성에 내맡겨 의식하지 않아도, 마음 가는 데로 내버려 두어도 저절로 그렇게 걸어지는 게 무심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현대인은 많은 정보를 접하며 산다. 마음은 한 곳에 머물러야 집중할 수 있는데 마음이 이리저리 돌아다니므로 머리가 복잡하고 마음은 혼란스럽다. 마음 비우기 수련이 과거보다 더 중요해졌다. 이런저런 일이 많아 고민이 많고, 그것을 척척 해결하는 사람이 일을 잘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마음을 채우지 않는 사람은 밝아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며 아예 일 자체를 만들지 않는다. 발생할 일들이 떠올라 그려지고, 그 일의 어려운 점과 발생할 위험은 사전에 손을 쓴다. 사람들이 볼 때 편하게 살고, 운이 억세게 좋은 사람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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