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7. 교만하지 않는다

1.7. 시계 편

by 누룽지조아

손자병법 시계 편에 적이 낮추면 교만하게 만든다고 했다(卑而驕之). 교만한 사람은 잘난 체하고 뽐내며, 건방지다.


36계 중 28계에 유인하여 지붕 위로 올라가면 사다리를 치운다는 상옥추제(上屋抽梯)와 취지가 같다. 적이 유리한 상황에 있다고 착각하게 만들고 맹목적으로 진격하면 앞뒤를 끊어 꼼짝달싹 못하게 만든다.


잘난 체하고 뽐내는 사람은 자기 자신을 실제보다 높이 평가한다. 건방진 사람은 상대를 깔보는 마음을 가져 상대를 실제보다 낮춰 본다. 자신을 높이 보거나 남을 낮춰 보는 태도로 나와 남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없다. 상황 판단을 못하면 싸워서 이기기 어렵다.


요즘 애들 기말고사 시험준비 기간이다. 교만한 학생은 상황을 오판한다. 다 안다고 생각하는데 문제를 풀면 틀린다. 또한 건방진 학생도 상황을 오판한다. 매일 같이 노는데 친구가 점수를 잘 맞으면 운이 좋았다고 말한다. 그 친구가 집에 들어가 공부할 것이라는 생각을 못 한다.


전쟁에서도 똑같다. 나를 실제보다 높이고 남을 실제보다 낮추면 내 약점과 남의 강점이 보이지 않는다. 약한 내가 강한 적을 치는 꼴이 되어 이길 수가 없다.


전쟁에서 적을 이기는 방법은 나보다 약한 적을 치고, 내 강점으로 적의 약점을 쳐야 한다. 나와 적의 약점과 강점을 먼저 파악한다. 낮추는 적은 행동을 신중히 하고 있어 적의 약점과 강점을 알기 어렵다.


수비하는 사람은 공격하는 자가 약점과 강점을 알지 못하게 숨겨야 방어할 수 있다. 낮추는 전략이고 손무는 부지(不知)라고 했다. 교만한 사람은 잘난 체해서 뽐내고 싶어 해 말을 많이 하고 행동으로 보여준다. 상대는 내 약점과 강점을 쉽게 파악할 수 있다. 또한, 자기 이야기만 하므로 상대를 잘 알 수 없다. 수비가 안되고 상대 약점을 몰라 유효하게 공격할 수 없다.


이런 의문이 들 것이다. 나를 낮추면 상대가 깔보지 않을까? 상대가 깔보는 말을 할 경우 정신적 충격을 받는 사람은 상대에게 점수를 빼앗겼다. 유효타다. 지나가는 말로 듣고 공격하는 사람의 약점과 강점을 찾아 수비한다.


나와 상대의 상황을 내가 강하고, 상대가 약한 경우(상황 1), 내가 강하고, 상대가 강한 경우(상황 2), 내가 약하고 상대가 강한 경우(상황 3), 내가 약하고 상대가 약한 경우(상황 4)로 나눌 수 있다.


나를 낮출 경우 약한 상대가 강한 나를 공격하면 나는 승리하고(상황 1), 강한 상대가 강한 나를 공격하면 현격한 군사력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 겸손한 내가 승리할 확률이 높으며, 강한 상대가 약한 나를 공격하면 나는 패할 확률이 높고, 약한 상대가 약한 나를 공격하면 현격한 군사력 차이가 나지 않는 경우 겸손한 내가 이길 확률이 높다.


나를 낮출 경우 불리한 상황은 겸손한 나는 약하고 교만한 상대가 강한 상황 3이다. 반대로 나를 높이면 유리한가? 단기적으로는 허풍을 떨어 상대가 나를 공격하지 못하게 할 수는 있다. 나를 과장하기 위해서 내 자원을 소비하여 있는 척해야 한다. 얼마 되지 않는 자원을 소비하면 나는 더 약해진다. 상황 3의 경우에 허풍 떠는 경우보다 약점을 숨기고 겸손함을 유지하는 게 더 유리하다. 나를 낮추는 것이 싸움에서 지지 않는 가장 유리한 전략이다.


상대가 나를 꺾으려는 의도로 나를 교만하게 만들려고 한다. 나를 높이면 약점과 강점이 다 드러나 공격당하고 싸우면 진다.


나를 낮추는 것은 나서지 않아 약점을 숨기는 은폐 전략이다. 나를 낮추어야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할 수 있다. 벤츠 타고 다니고, 한 달에 10백만 원씩 버는데 가난하고 배를 굶고 있는 상대를 존중하고 이해하기 어렵다. 어떻게 하든 상대를 이해하기는 쉽지 않지만 그나마 상대를 존중하고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려면 낮추어 상대와 눈높이를 맞추어야 한다. 이런 의미로 최고의 선은 모두가 싫어하는 낮은 곳에 머물고(도덕경 8장), 높은데 마음을 두지 말고 도리어 낮은데 처하며 스스로 지혜 있는 체 말라(롬12:12-16)고 했다.


정치인이 높은 곳에만 머무르면 정치인이 존재하는 근거와 본분을 망각할 수 있다. 민주주의는 민의를 잘 대변하지 못해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는다. 국민을 존중하고 국민의 삶을 이해하려면 정치인은 국민이 있어 존재한다는 사실과 낮은 곳에 머물러야 국민의 애환을 피부로 느낄 수 있다는 사실을 마음에 새긴다.


낮추는 것이 상대를 존중하고 입장을 이해하는데 꼭 필요한 요소고, 최고의 수비 전략이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6. 분노한 사람에게 반격하지 않고 기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