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늘 준비하지 않는 듯 준비한다
1.8. 시계 편
방비하지 않는 곳을 공격하고, 생각하지 않는 수법으로 친다(攻其無備, 出其不意). 대표적인 사례가 인천 상륙작전이다. 원래 미합동 참모본부와 해군은 인천 상륙을 반대했다. 상륙 작전할 수 있는 곳으로 군산, 인천, 주문진이 있는데 가장 안 좋은 곳이 인천이었다. 인천은 조수간만의 차가 커 썰물 때 상륙할 수 없었다. 또한 인천항이 대규모 상륙함대가 들어가기에 협소했고, 인천과 월미도에 산이 있어 높은 지형으로 상륙하기 쉽지 않았다.
맥아더 장군은 인천을 고집했다. 북한군이 지리적 여건 때문에 그곳으로 연합군이 올지 예상하지 못하고 방비가 허술할 것으로 생각했다. 또한, 연합군이 낙동강으로 후퇴하여 적의 허리를 찌르는 배후 공격이자 기습 공격으로 효과가 높을 것으로 보았다. 인천 상륙 작전은 밀물 때에 가능했다. 1950년 9월 15일부터 9월 18일까지 끝내야 하며, 아침 3시간과 저녁 3시간만 주어졌다.
낙동강 전선에서 한국군과 미군이 밀리고 있었다. 맥아더 장군은 상륙작전 부대로 제10군단 창설하고 알몬드 소장을 제10 군단장에 임명했다. 제10군단은 미 제7보병사단 8,600명(카투사 포함), 미 제1 해병 사단, 한국군 제1 해병연대, 한국군 제17 보병연대, 미 제2 특수공병여단 등으로 편성 총 7만여 명이었다. 제10군단은 각각 주둔하고 있는 지역에서 미 제7함대에 승선하고 서해 공해로 우회하여 인천 해안에 은밀하게 접근했다. 1950년 9월 4일부터 항공모함 함재기들이 공중 폭격을 가했다. 1950년 9월 14일 서해 중부 해상 덕적도 근처에게 대기했으며, 전함들이 적 방어 진지에 집중 함포 사격을 가했다. 1950년 9월 15일 드디어 상륙작전을 개시했다. 오전 6시 해병대 1개 대대가 월미도에 상륙 2시간 만에 점령했다. 해병대 1개 대대의 엄호를 받으며, 미 제1해병사단과 한국군 제1해병연대가 9월 16일 새벽에 인천과 후방지역 확보했고, 미 제7보병사단과 한국군 제17 보병연대가 인천해안으로 상륙하여 서울 방향으로 공격했다.
북한군은 증원과 퇴로가 차단되었으며 포위되었다. 낙동강 방어선을 방어하던 한국군, 미 제8군과 유엔군이 9월 16일부터 반격으로 전환했다. 북한군은 인천을 빼앗겨 증원과 퇴로가 차단되고 무리한 공격으로 전투력이 약화되었다. 북한군은 심리적 타격이 컸으며 사기가 떨어져 모든 전선에서 밀리고 무너지기 시작했다. 약 10만 명이 죽거나 다쳤으며 빨치산으로 지리산 등에 남았고, 3만 명만이 북으로 도주했다고 한다. 한국 해병 2개 대대, 미국 제1해병사단 한강을 9월 19일 한강을 건너 27일 정오 중앙청에 한국 해병대가 태극기 게양하고 9월 28일 서울을 완전히 탈환했다.
손무는 싸움에서 이기려면 상대가 방비하지 않는 곳을, 예상하지 못하는 시기에, 기습적인 수법으로 공격하라고 한다. 인생에 무슨 일이 언제 일어날지 모른다. 늘 준비하지 않는 듯 준비한다. 현재와 나에 집중하고, 만족하며, 세상이 어떻게 변하는지 세상의 흐름을 주시하고, 세상에 내맡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