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인간관계 잘하는 방법이 존중과 이해, 경청, 약하며 부드럽고 따뜻하게 말하기, 놔두고 바라보기라고 글을 많이 썼는데 내게 절절하지 않았던 것 같다.
진행 중인 자퇴 소동을 다시 새긴다. 딸을 얼마나 존중하고 이해했는지. 솔로일 때 여자 친구 대하듯 딸을 대했는지 생각해 본다. 카톡 편지 주기 며칠 전 식사하고 있는데 딸이 아빠 뭐하는지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식사한다고 했다. 같이 산책하면서 이야기하고 싶었던 모양이다. 식사를 끝내고 산책하러 갔다.
아빠에게 자퇴하고 싶다고 말했다. 두세 바퀴 돌면서 자퇴하고 싶은 이유에 대해 자세히 설명했다. 나는 그 말을 듣는 순간 사실 무조건 반대였다. 딸이 정시에 더 집중하고 싶다고 했다. 지난번 중간고사 시험에 집중했는데 자기가 기대한 만큼 나오지 않았다. 딸은 실망했고 더 열심히 할 자신 없다고 했다. 자퇴하면 아침 일찍 일어나 스터디카페 가고 인터넷 강의 듣겠다고 했다.
아빠는 딸의 성적을 묻지 않았지만 엄마를 통해 듣고 있었고 그리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딸이 자퇴를 절실하게 부르짖는 것, 1학년이면 시간이 많이 남았는데 정시에 집중하겠다, 앞으로 열심히 하겠다는 말이 귀에 잘 들어오지 않았다.
딸에게 회피, 도피라고 말했다. 딸 입장에서 현재 자퇴가 확신에 차 있을 수 있다. 틀릴 수 있고 지나치게 쓸데없는 걱정일 수 있어 입 밖으로 꺼내지 않았지만 아빠 보기에 약간의 청소년기 우울증도 있을 수 있다. 그럴 때일수록 침대에 누워있기보다 일상생활하고 움직여야 빨리 벗어날 수 있을 텐데라고 속으로 안타까워했다. 또한 시험이 곧 오는데 시험 망치고 다시 제자리 찾는 게 더 어려울 수 있는 상황으로 갈 수 있다. 미래가 그려져 더 안쓰러웠다.
딸이 구정물 속 물고기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더러워도 물고기는 그 물에서 적응해야 한다. 구정물이 싫어 물 밖으로 나오면 물고기는 죽는다. 자퇴하고 실력을 증명하려면 몇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같은 조건이면 검정고시보다 정상적으로 고등학교 졸업하고 대학 나온 사람을 뽑을 것 같다. 혼자 떨어져 나오면 더 외로울 수 있어 친구들 속에서 자기중심을 잡아야 외로움을 극복하고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학교 다니고 시험 보는 게 스트레스 쌓이지만 아빠 입장에서는 현실을 무시할 수 없다. 설령 그 현실이 불합리적이더라도.
자퇴라는 단어에 대해 아빠의 거부감이 크다. 웬만해서 한 번 나선 길을 바꾸지 않는 스타일이다. 국민학교 때부터 회사 생활하는 때까지 아프더라도 학교 등에서 죽자는 생각인 것 같다. 아빠의 고집이고 집착일 수 있다. 그런 생활태도는 아빠에게 적용되는 아빠의 생각이고, 상황이 다른 딸에게는 다를 수 있다. 그 마음까지도 받아들인다.
내가 솔로 때 여자친구 생각하는 것처럼 딸 말을 경청하지 않았다. 법정대리인으로서 자퇴하는 것에 100% 반대한다고 말했다. 1%의 가능성도 인정해 주고 싶지 않았다. 어찌 보면 위협하는 말이다. 아마 여자친구였으면 그렇게 말하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친구를 아낀다면 그녀의 말을 존중하고 잘 들어주었을 것이다. 그 말에 동의하지 않더라도 그렇게 세게 말하지 않고 잘 들었을 것 같다.
아마 애들이 아빠를 신뢰하고 아빠에게 어려움을 쉽게 털어놓으려면 아빠가 자기를 인격체로 존중하고 약점을 말하더라도 아빠가 남들에게 까발리지 않을 거라는 확신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존중한다는 말은 비록 딸이지만 나와 동등하다는 생각을 깔아야 한다. 딸에게 그 정도 무게의 존중으로 대하지 않았던 것 같다. 내가 말한 관계 잘하는 법을 실천하는데 출발점부터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지 못했다. 존중과 이해를 슬픈 마음으로 다시 배운다. 아빠는 태풍에 제자리 잘 지키고 견디겠다. 애들이 마음에 안 들더라도 수천 번 말을 경청하고 수백 번 약하고 부드럽게 말할 각오를 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