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가 시험 본 날은 입이 근질근질했다. 몇 점 맞았는지 묻고 싶었다. 묻지 않기로 다짐했다. 성실히 준비했다면 점수 때문에 야단치지 않는다. 과정을 중시한다. 다른 친구들은 몇 점 맞았는지 묻고 싶었다. 묻지 않았다. 다른 친구들과 비교하지 않는다.
애가 숨바꼭질하다가 책장을 넘어뜨렸다. 방에 들어가 보니 책들이 온 방에 널브러져 있었다. 액자는 깨져 유리 조각이 흩어졌다. 위험한 일을 저지른 딸에게 화내고 싶었다. 꾹 참았다. 저도 잘못한 것 알아 울고 있었다. 뭐라고 해 봐야 교육 효과 없을 것 같았다. 조용히 안아줬다. 빨간 바닥 목장갑 끼고 조용히 치웠다.
친구가 애에게 100원 줄게 과자 사 오라고 한 적이 있다고 했다. 애에게 말했다. “200원 줄게 네가 사 와.” 친구 관계에서 평등이 깨지면 친구가 아니고, 주인과 종의 관계다. 친구가 자기를 싫어한다고 했다. 슬퍼하지 말고 친구에게도 싫어할 권리를 주라고 했다. 그 친구가 놀기 싫어하면 쿨하게 다른 친구를 찾아본다.
이성친구가 애에게 관심을 보였다. 사귀어야 하나? 오는 사람 막지 말고 가는 사람 잡지 말라고 했다. 어릴 적 이성 친구는 배우자감 생각하듯이 진지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 그냥 같이 지내는 이성 사람이다. 같이 놀고 공부하고 밥 먹는 친구다. 잘 지내면 된다. 고등학생이 이성친구를 사귈 경우 잘 생각한다. 무언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대상에 시간과 마음을 주고 돈을 써야 한다. 공부는 자기와의 싸움이다. 공부를 열심히 하려면 공부에 시간, 마음, 돈을 써야 한다. 이성친구 사귀면 공부할 시간과 마음을 이성친구에게 나누어 줘야 한다. 내신 성적 유지하는데도 어려움이 생긴다. 물론 이성친구를 사귀더라도 가볍게 생각하고, 시간과 마음을 적게 사용할 수 있는 성격이라면 문제 될 게 없다. 또한, 인생에서 만나기 어려울 정도로 매력적인 상대라면 선택에 따른 책임에 대해 고심한다.
어떤 직업을 가져야 해? 좋아하거나 잘하는 것에 맞는 직업을 가진다. 그러나 직업 선택을 제대로 했는지 크게 신경 쓸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좋아한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해보니 별로 좋아하지 않는 일들도 많다. 별 생각이 없었는데 그 일을 해 보니 의외로 자기와 맞는 일도 있다. 미리 정한 직업을 갖는 사람은 별로 없고, 그 직업을 가졌더라도 자기에게 맞는지 알 수 없다.
작은애 친구가 뚱보라고 놀렸다. 애는 자존심이 상해 씩씩거리면서 집에 왔다. 애에게 말했다. “화내지 마라. 화내면 너만 손해다. 화내고 미워하면 마음의 상처를 네가 입는다. 사실 친구는 그렇게 생각할 수 있지만 너에게 그런 말을 할 권리는 없다. 친구에게 웃으면서 무슨 말을 그렇게 심하게 하냐고 한마디 해줘라. 네가 쓰레기 같은 말을 간직하는 것보다 빨리 버리는 것이 너에게 좋다.”
애가 꼭 학교에 가야 하냐고 물었다. 내 답변은 간단하다. 학교에 가야 한다. 애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법률로 정해져 있다. 또한, 친구를 사귀기 위해서는 학교에 가야 한다. 청소년기는 인생을 같이 할 친구를 사귀는 시기다. 놀 친구들이 학교에 있다. 아빠와 엄마는 친구들처럼 너와 재미있게 놀아줄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학교를 안 다니면 다양한 친구 사귈 기회가 줄어든다. 그리고 학교에 가서 공부하는 게 훨씬 너희들에게 이익이다. 자기 돈을 안 내고 배울 수 있는 좋은 기회다. 대학에 가든 가지 않든 초·중·고에서 배우는 지식은 유용하게 써먹을 수 있다. 결혼할 때, 직장을 구할 때 학력이 필요하다. 뛰어나더라도 학교 졸업장이 아닌 다른 것으로 증명하려면 몇 배 노력이 더 든다. 많은 시간을 학교에서 보내는데 공부에서 손을 놓으면 학교는 지옥이다. 공부 못 하면 친구한테 놀림당하고, 열등감에 빠질 수 있다. 다른 것이 하고 싶다면 최소한 숙제는 빨리 끝내고 한다.
큰애가 일기 쓴다고 끙끙댔다. 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맞춤법도 틀리고 글씨도 삐뚤빼뚤 이었다. 근질거렸다. 틀린 글자 고쳐 주고 싶었다. 지적질을 포기했다. 애의 생각과 감정 속으로 들어갔다. 글 소재 발굴과 전체 내용에 대해 이야기했다. ‘한 번에 완벽하게’라고 생각하면 인생이 피곤하고 새로운 일에 도전하기 어렵다. 큰애한테 너무 잘 쓰려고 하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끝까지 먼저 써 보라고 말했다. 자기 경험이 녹아 있지 않은 글을 억지로 쓰면 글에 감동도 없고 쓰기 힘들다. 특히 한 번에 완벽하게 끝내려고 하면 더욱 그렇다. 일기를 잘 쓰고 싶으면 다음과 같이 접근해 보라고 말했다. ① 경험에 바탕을 두고 ② 생각나는 대로 적고 ③ 구도를 그리며 ④ 글의 초안을 끝까지 쓴 후 ⑤ 수정한다.
무심히 바라보는 부모는 별 말 안 하고 애들 얘기 잘 들어주며, 몸과 마음으로 교육한다. 공부를 잘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든다. 아버지는 일찍 일어나 청소 열심히 한다. 엄마도 가족의 몸과 마음의 건강이 달려 있는 식사 준비와 애들의 안전에 정성을 쏟는다. 때론 지인과 가족 동반 식사하면서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공부해라.”라는 명령조보다 “빨리 끝내고 놀아라.”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무심히 바라보는 교육은 들들 볶는 것보다 훨씬 힘들다. 먼저 모범을 보이고, 장기간 인내를 요하는 교육 방법이다. 무관심하거나 애정이 없는 것과 다르다. 애들을 아끼고 애들의 자율성을 믿는 교육법이다. 아이의 몸과 마음을 유심히 지켜보며, 스스로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를 기다린다. 애를 아끼는 마음이 당장은 아니더라도 언젠가 전해지고, 애가 스스로 깨달아 행동할 거라고 믿는 교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