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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도덕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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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07. 2024

49. 자기를 알고 이겨 부드럽게 행한다

도덕경 제33장

남을 알면 이해를 분별하여 지혜롭지만,

자기를 알면 어둠을 헤치고 깨달아 밝다.

남을 이기면 세력이 있어 힘세지만,

자기를 이기면 수준이 높아 강하다.


자기 한계를 지켜 만족할 줄 알면 넉넉하고,

자기를 이겨 행하면 영향력과 명망이 있다.


그것들을 잃지 않으면 오래가고,

잊지 않으면 몸은 죽어 없어져도

명성후대로 전해져 오래 산다.


知人者智, 自知者明.

지인자지, 자지자명.

勝人者有力, 自勝者强.

승인자유력, 자승자강.

知足者富, 强行者有志,

지족자부, 강행자유지,

不失其所者久, 死而不亡者壽.

불실기소자구, 사이불망자수.


노자는 오래가고, 명성이 오래 이어지는 비결을 제시한다. 국가와 리더가 오래가는 비결은 아끼는 마음이라고 했다(59장). 개인이 오래가는 비결은 내 본성을 깨닫고, 이기며, 현재의 나에 만족하고, 자기를 이겨 부드럽게 행하는 것이라고 한다. 노자가 생각하는 지혜, 나를 아는 것에 대해 좀 더 알아본다.


'남을 알면 이해를 분별하여 지혜롭고 남을 이기면 세력이 있어 힘세다.'

상대를 알기 위해서 나와 남을 구별하고, 각 요인별로 우열을 비교한다. 감각, 분별지와 의식이 작용한다. 지혜로운 사람은 상대의 강점과 약점을 잘 파악한다. 싸우면 급소를 공격하고 상대를 물리친다. 타인의 장단점을 아는 것이 지혜고, 타인을 이기면 세력이 있어 힘이 센 사람이다. 그러나 힘으로 지배하는 사람은 결국 몰락한다. 단단하고 강하면 죽어가는 것이고(76장), 강인하고 크면 아래를 차지한다(76장). 힘을 숭배하며, 힘으로 남을 억압하는 부정적 측면이 있다.


일반적으로 지혜는 진리를 아는 것으로 좋은 것이라는 생각을 한다. 통상 지(知) 자는 배워서 안다는 의미로, 지(智) 자는 지식이 아니라 타고난 지혜를 뜻한다. 그러나 도덕경에서 말하는 지(智)는 쓰임이 다르다. 이해시비를 잘 분별하는 것을 뜻한다. '지혜가 많아 백성을 다스리기 어렵고, 지혜로 국가를 다스리면 국가의 적이고, 지혜로 국가를 다스리지 않으면 국가의 복이다(65장). 성스러운 지혜를 끊어 버리면 백성은 백 곱절 정도나 이롭다(19장).'라고 말했다. 즉 도덕경에서 지(智)는 분별지를 뜻한다.


노자는 분별하는 지(智)를 넘어서 분별없는 통합의 지혜, 진리 등을 추구하며 도덕경에서 그런 지혜를 도라고 표현하고 있다. 분별지를 넘어선 지혜란 의미로 올바름과 사악함이 없고(58장), 아름다움과 추함은 서로 관계를 맺고 비교해야 생긴다(2장)고 말했다. 불교에서는 분별을 넘어선 경지의 지혜를 혜(慧)로 표현한다. 자기를 이겨 몰입하는 것(定)과 본질을 통찰하는 지혜(慧)를 같이 닦으라는 의미에서 정혜쌍수(定慧雙修)란 표현을 쓴다.


'자기를 알면 어둠을 헤치고 깨달아 밝다.'

남을 알고 이기는 것보다 자기를 알고 이기는 것이 밑바탕이다. 남은 나와 같은 면이 있고, 다른 면이 있다. 나는 나를 직접적으로 알고 느낄 수 있지만 남은 나를 통해 간접적으로 느낄 수밖에 없다. 자기를 안다는 문장을 손자병법의 ‘내 장단점을 파악하여 싸움에서 이긴다.’는 느낌과 다르다. ‘내 마음을 비워 자신의 본성을 느끼고, 느낀 본성대로 살며, 남에게 부드럽게 행동한다.’는 어감으로 읽으면 느낌이 살아난다.


자기를 알라고 한다. 노자는 자신을 앎이 본성이나 진리를 깨닫는 밝음이고, 자신을 이기는 것이 수준이 높아 강하다고 했다.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어려운 질문이다. 나를 찾는 여행을 떠나 본다.


도가 인간에게 체화되어 마음이 되므로 마음에 도가 있고 마음은 도를 닮았다. 자기를 아는 것을 도를 깨달음, 견성함, 자성을 찾음, 본성을 깨달음, 신성을 만남 등으로 표현하는 이유다.


일반적으로 남에게 비친 모습으로 내 존재를 인식한다. 돈이 많은 나, 가난한 나, 똑똑한 나, 별로 안 똑똑한 나, 직급 높은 나, 직급 낮은 나, 만족스러운 나, 불만인 나 등이다. 남들이 인식하고 있는 나다. 자아가 나에게 있지 않고 상대에게 있기 때문에 상대에게 인정받기 위해 노력하고 가면을 쓴다. 어느 하나가 나라고 생각하여 하나에 세게 집착한다.


남에게 비친 내가 아니라 나를 통해 진정한 내 모습을 느낀다. 자신을 알기 위해서 조용히 하고, 고정관념을 내려놓아 있는 그대로 내 모습을 본다. 내 마음이 나에게 들려준 내 모습은 다음과 같다.


상황이 바꾸면 개별적 특성들은 변하므로 그것들은 진정한 나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상황이 변해도 내가 부정할 수 없는 몇 가지 사실이 남는다. ① 나는 현재 존재한다. ② 나는 무수한 형태의 몸, 생각, 감정과 의욕을 지닌 존재고, 계속 변해 고정된 실체가 없다. ③ 내 몸만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나다.


① 나는 현재 존재한다. 세상을 살아가는 주체와 세상을 인식하는 주인이 바로 나다. 돈, 직위, 존경 등이나 외부 존재에서 오는 감각적 쾌락 등은 현재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보다 더 근원적일 수 없다. 내가 살아있다는 사실보다 중요하다는 생각은 다 잡생각인 것 같다.


② 나는 무수한 형태의 몸, 생각, 감정과 의욕을 지닌 존재고, 계속 변해 고정된 실체가 없다. 나를 어떤 하나의 틀에 가둘 수 없다. 무수한 내가 존재하여 어떤 모습 하나만 나라고 고집할 수 없다. 슬퍼하는 나, 즐거워하는 나, 일 잘하는 나, 일 못하는 나, 대단한 사람으로 인정받는 나, 별 볼일 없다고 생각되는 나 등은 모두 나다. 슬프다고, 일 실수했다고, 남이 인정해 주지 않는다고 그걸 나라고 생각해 슬퍼할 필요가 없을 것 같다.


③ 내 몸만 내가 아니라 나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도 나다. 나를 내 몸과 정신이라는 틀에 가둘 수 없다. 물, 공기, 핸드폰, 가족, 직장 등 외부 환경도 내 몸과 동일하게 내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몸이 다치면 아프고 직장에서 잘리면 괴롭다. 전화번호를 머리에 기억하지 않고 핸드폰에 저장하여 핸드폰이 머리의 역할도 하고 있다. 외부 환경이 내가 아니라고 반박할 수 없다. 또한, 세상은 존재하나 그 세상을 마음으로 인식한다. 마음으로 인식한 세상이 펼쳐져 있다. 나는 내 몸과 정신뿐만 아니라 세상도 마음에 담고 있다. 내 눈앞에 펼쳐진 세상은 내 마음의 작용이고, 나와 우주를 마음이 연결하고 있는 것 같다. 외부 세계라는 것은 내 몸밖에 있지만 인식한 세상은 마음속에서 그렇게 느끼는 있어 마음 안에 있는 세상이다.


나를 알면 나만 항상 옳거나 내 욕구에 맞아야 한다고 하지 않는다. 막 태어난 영아처럼 나와 남에 대한 분별이 없고 고정된 형상에 대한 집착이 없어 초연하다. 무의 특성을 지닌 도를 그대로 닮은 사람이다. 아주 수준 높아 강한 경지로 자기 본성(도라고 말할 수 있음)을 깨닫는 순간 어둠을 깨고 아침에 동이 트듯이 환한 빛이 비쳐 밝아진다고 한다.


'자기를 이기면 수준이 높아 강하다.'

나를 이긴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앞에서 다음과 같이 나에 대해 언급했다. ① 나는 현재 살아있는 존재이므로 현재 살아있는 나는 소중하다. ② 나는 무수한 나를 포함하여 고정된 형상이 없는 존재로 다양한 몸, 생각, 감정과 의욕은 왔다 간다. ③ 나는 마음으로 세상을 담는 존재로 세상과 교섭을 하며 밀접하게 관계를 맺는다.


나를 이기는 사람은 이런 나를 바로 알고 그런 나를 버리거나 속이지 않고 지키고 사는 사람이다. 내 양심과 끊임없이 대화하며 내 본성대로 살아 의식하지 않아도 그런 모습이 나온다. 어떻게 나를 이기며 살까? 외부 존재에 대해 판단을 중지하고 나에게 집중하고 바라본다. 무수한 내가 있으므로 좋거나 싫은 감정에 집착하지 않고 오고 가게 그냥 바라본다. 내 마음에 세상을 담고 있고 세상은 나와 한 덩어리이므로 외부 존재를 쪼개 나누어 비교하지 않는다. 자기 생각, 감정, 의욕은 수시로 변하고, 틀릴 수 있으므로 맞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그냥 바라보며, 세상과 어울려 살아간다.


'자기 한계를 지켜 만족함을 알면 넉넉하다.'

본성을 깨달은 사람은 현재 살아있는 나보다 더 근원적인 것은 없다고 생각한다. 기대치가 아주 낮고 만족도가 높아 넉넉한 사람이다. 주인은 나고, 이미 있거나 가진 것은 내 부속물인 덤에 해당한다. 억지나 욕심부리지 않고 만족할 수 있다(지족知足). 늘 만족하고 그 넉넉함에 감사드린다. 고민이 적고 힘이 덜 들며 행동이 자연스럽다.


'자기를 이겨 행하면 영향력과 명망이 있다(强行者有志).'

강행(强行)을 자신을 이겨 행함으로 번역했다. 통상 강행은 강제로 또는 억지로 행하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위에 있는 문장에서 자신을 이기면 수준 높아 강하다고 했다. 강행을 자기를 이겨 행함으로 번역했다.


자기를 이겨 행하는 사람은 깨달음의 빛이 아주 강함을 안다. 그 빛을 살짝 가리고 부드럽고 약하게 발산한다. 남을 존중하는 표현 방식이다. 드러내지 않아 알기 어렵지만 꾸준히 행하면 영향력과 명망이 따른다.


'오래간다(장구長久).'

도는 오래간다. 이런 도를 체득하고 잃지 않으면 오래가고, 잊지 않으면 몸은 죽어도 그 명성이 길이 전해져 오래 사는 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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