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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06. 2024

50. 이름 없는 존재가 이름난 존재를 낳는다

도덕경 제32장

도는 늘

이름 없고 옥돌처럼 작을지라도

온 세상은 신하로 삼을 수가 없다.

도는 이름과 큰 존재 집착하지

않으며 무위로 세상을 다스린다.


후왕이 이를 지킬 수 있으면,

만물은 스스로 따를 것이다.


온 세상이 서로 화합하고,

단 이슬 내리듯 평안하며,

백성에게 명령할 자 없고,

제 스스로 균형을 이룬다.


유위로 다스리고

통제하기 시작하여 이름이 알려지고,

이름도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졌으면

그것도 그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고,

그침을 안다면 위태롭지 않을 수 있다.


도가 온 세상에 존재하는 것을 빗대어 설명하면

이름 없고 작은 것이 이름 있고 큰 것을 이루듯이

샘물과 냇물이 흘러 강과 바다를 이루는 것 같다.


道常無名, 樸雖小, 天下莫能臣也.

도상무명, 박수소, 천하막능신야.

侯王若能守之, 萬物將自賓.

후왕약능수지, 만물장자빈.

天地相合, 以降甘露, 民莫之令而自均.

천지상합, 이강감로, 민막지령이자균.

始制有名, 名亦旣有,

시제유명, 명역기유,

夫亦將知止, 知止可以不殆.

부역장지지, 지지가이불태.

譬道之在天下, 猶川谷之於江海.

비도지재천하, 유천곡지어강해.


도는 무명이고 작아 누구에게도 명령하지  않고 자발적으로 행동하게 한다. 세상은 화합하고 평안하며 균형을 이룬다. 이름이 널리 알려져 유위로 명령하고 통제하려고 하는 경우 위태롭기 때문에 그친다.


도가 온 세상에 존재하는 것은 작고 이름 없는 샘물과 시냇물이 흘러 크고 이름 있는 강과 바다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강이나 바다는 이름을 붙이지만 샘물과 시냇물은 이름도 붙이지 않는 무명의 존재다. 작고 이름 없는 샘물과 시냇물은 조용히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넓고 이름 있는 강과 바다를 이룬다.


32장을 이해하는 열쇠는 유명(有名)과 무명(無名)이다. 유명과 무명을 ‘이름이 있는 세계, 이름이 없는 세계’로 해석하면 노자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이 잘 파악되지 않는다. 유명과 무명을 ‘유명하다, 유명하지 않다’로 해석해야 논지가 비로소 드러난다. 실질과 명색(이름, 명성)에 대해 설명하는 장이다.


'도는 이름 없고 크다고 하지 않기에 작지만 만물을 잘 운영하고 종속되지 않는다.'

도는 유명하지 않고 초라해 보이지만, 속은 두터운 옥돌을 닮았다. 이름 없고, 크다고 하지 않기에 작지만 우주만물을 운영한다. 세상은 도가 없음이나 무한대의 형태로 존재하여 그 존재를 알 수 없고, 도를 종속시키고 싶어도 종속시킬 수 없다.


'왕이 무위로 다스리면 백성은 자율적으로 따른다.'

제후와 왕은 명색일 뿐 실질은 백성의 어려움을 해결해 주는 공복이다. 후왕이 명성에 집착하지 않고 백성들에게 봉사하면 만물은 스스로 따른다.


백성도 권력자에게 무엇을 바랄 게 아니다. 권력자의 힘으로 백성이 행복해질 수 없다. 삶과 관련해서 많은 부분은 백성이 각자 선택하고, 행동하며 책임져야 한다. 권력자에 대해 기대를 버린다. 권력자가 일 안 벌이고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다행이다. 권력자가 백성을 행복하게 해 주는 일에 관심을 쏟기보다 공정한 경쟁환경 구축, 기회의 균등 등 불평등 해소, 개인의 자유 보호 등의 역할을 하면 그것에 만족한다.


'무위로 다스리면 세상은 태평하다.'

왕이 무위로 다스리면 백성은 자율적으로 행동하여 나라에 큰 평화가 찾아온다.


'무위로 다스리면 백성은 스스로 균형을 찾는다.'

왕이 명령을 내리면 백성은 시키는 일만 하고, 하고도 만족감이 낮다. 무위로 다스리면 백성들에게 명령하거나 억지로 시키는 사람이 없으므로 백성들은 스스로 하고, 균형을 찾는다.


'명성에 집착해 유위로 다스리면 위태롭다.'

왕은 명성에 집착하여 백성을 유위로 다스린다. 각종 규제를 만들고 엄격히 통제하여 업적을 쌓는다. 백성의 원성을 사며, 물러난 후 그 업적에 대한 반대 대가를 치른다. 명성은 계속 올라가지 않고 일정 시점에 멈추다가 추락한다. 명성에 집착해 유위로 다스리는 경우 위험하기 때문에 빨리 그친다.


'도는 작고 무명의 상태로 존재하며 크고 유명한 세상을 이룬다.'

도의 존재 방식은 샘물이나 시냇물이 흘러 강과 바다를 이루는 것과 비슷하다. 샘물에서 나와 시냇물을 이루고 다른 물과 섞여 강과 바다를 이룬다. 샘물과 시냇물은 존재의 근원이다. 작고 무명의 상태로 존재하며 낮은 곳으로 흘러 들어가 크고 유명한 강이나 바다를 이룬다. 


유천곡지어강해(猶川谷之於江海)를 '샘물과 냇물이 흘러 강과 바다를 이루는 것 같다.'로 번역했다. 지(之)는 가다, 어(於)는 존재한다는 의미로 해석다.




노자가 그리는 정치원리


노자가 그리는 정치원리는 다음과 같다. 우주를 다스리는 도는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다. 왕도 자기 생각대로 하지 않는 무위와 무언의 정치를 한다. 무위설과 무아론에 따라 권력을 도(또는 자연의 이치)에게 넘기고 백성과 만물의 뜻을 따르는 도치를 행한다. 백성과 만물 본성의 합이 도이기 때문에 백성이나 만물의 뜻을 따르는 것이 도치다.


백성은 왕이 불언과 무위로 다스리기에 왕의 명령을 따라 행동할 수도 없고 자기 안에 내재되어 있는 본성 즉 도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해야 한다. 만물 모두 도를 품고 있기 때문에 만물을 존중하며, 좋은 관계를 맺고 어울려 살아간다. 세상은 평화롭고 자율적으로 돌아간다.


제후들이 막강한 권력을 행사하는 춘추전국시대에 노자의 혁명적인 발상이다. 현대 민주주의 이론과 닮았다. 노자는 왕의 의도적 다스림을 배제함으로써 백성과 만물의 자유(스스로 그리함), 평등(분별하지 않음), 평화(억압하지 않음), 박애(만물을 이롭게 함)를 실현하고자 했다.


현대 민주주의에서 주장하는 가치와 유사하다. 국민은 태어날 때부터 하늘이 준 자유, 평등과 행복추구권을 가진다. 국민은 권력자에게 법규에 따라 권한을 제한적으로 부여한다. 권력자는 국민의 자유, 평등, 평화 등의 가치를 보호하고, 국민의 뜻에 따라 정치를 대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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