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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13. 2024

56. 무겁고 고요함이 뿌리다

도덕경 제26장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고,

고요함은 조급함의 임금이다.

 

이 때문에 성인은 온종일 나다녀도,

치중 같은 무거움을 떠나지 않으며,

고요하여 비록 꽃핀 경치가 있어도,

편안하고 초연히 머문다.

 

어찌 세상의 주인으로서,

몸을 세상에 가볍게 놀리겠는가?

가벼우면 뿌리를 잃는 것과 같고,

조급하면 임금을 잃는 것과 같다.

 

(주 1) 치중: 말, 탄약, 식량, 피복, 보급품 등 군수품을 이르는 말로 중요해 없으면 위태로워지는 것을 뜻함

 

重爲輕根, 靜爲躁君.

중위경근, 정위조군.

是以聖人終日行, 不離輜重,

시이성인종일행, 불리치중,

雖有榮觀, 燕處超然.

수유영관, 연처초연.

奈何萬乘之主, 而以身輕天下?

내하만승지주, 이이신경천하?

輕則失本, 躁則失君.

경즉실본, 조즉실군.

 

노자는 무거움과 무겁지 않음, 안정과 움직임의 균형을 강조한다. 왕에게 몸을 가볍게 놀리거나 조급하지 말라고 한다. 그렇다고 무겁고 고요하기하라고 하는 게 아니다. 무거움과 고요함이 뿌리라는 표현을 썼으므로 무겁지 않음과 움직임이라는 줄기나 이파리도 있다는 말이다.


왕은 힘이 있어 얼마든지 잽싸게 움직이고, 할 말 다 할 수 있는 입장이다. 이런 왕에게 촐싹대지 말고 무겁게 자리를 지키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백성의 말을 잘 듣고 포용하라. 그래야 백성이 가볍게 움직이고, 말할 기회가 생긴다고 주장한다.

 

노자는 그렇다고 너무 무겁게 자리만 지키고 있으라고 말하지 않는다. 높은 자리에 오르지만 백성을 무겁게 하지 않는다(66장)고 했다. 또한, 할 말 안 하고 조용하고 침착하게 안정만 취하고 있으라고도 하지 않는다.


다음에 유념하고 움직이라고 한다. 대상을 차별하지 않고 비어 움직일수록 더 생산적이고(5장), 때 맞춰 잘 움직인다(8장). 또한, 도는 원래 반전 운동을 하므로(40장) 과도함을 피하고(29장), 집착하지 않는 방법으로 움직임 속에 고요함을 간직한다(45장).

 

이번 장은 한 개인 입장에서 무거움과 가벼움, 고요함과 부산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나라를 다스리는 역할을 맡은 왕의 자세에 대한 이야기다. 신입사원이 무게 잡고 조용한데, 사장이 가볍고 조급하며 말 많이 하는 경우를 떠올린다. 웃긴 상황이고 될 일도 잘 안 풀린다.

 

왕은 배와 비슷하다. 무거워 승객이 타도 꺼지거나 승객의 움직임에 따라 흔들리지 않는다. 움직일 때 고요히 앞으로 나가고, 큰 원을 그리며 방향 전환을 한다. 조급하여 갑자기 방향을 틀면 갑판 테이블에 있는 물건은 다 날아가 깨지고, 가구들은 쓰러진다. 승객들은 넘어져 난리법석을 떤다.  배는 무게중심을 낮추고 무겁고 고요하게 항해해야 승객이 편하고 안전하다.

 

높고 큰 역할을 맡는 사람일수록 무게 중심을 낮추고 무거워그 조직이 무너지지 않는다. 건물의 무게 중심이 위쪽에 있거나 가벼우면 태풍과 지진에 마구 흔들리다 무너진다. 무게 중심을 잡는 기초는 지하 깊숙한 낮은 곳에 자리를 잡고 있어 보거나 느낄 수 없다. 도를 품은 왕은 태산같이 무겁게 행동하고 경거 망동하지 않으며, 침착하다.

 

'땅은 무겁고 고요하다.'

땅은 무겁다. 땅은 돌 부스러기, 생명의 잔재물인 유기 화합물이 겹겹이 쌓여 무겁다. 무거운 땅은 생명에게 양분을 주고, 키우는 뿌리다. 무거움은 가벼움의 뿌리다.

 

땅은 고요하다. 땅은 움직이지 않고 고요하기 때문에 에너지 소비가 적고 오래가며, 땅에 기대 사는 생명체는 편히 쉬고 움직일 수 있다. 고요함은 움직임의 뿌리다.

 

'리더는 무겁고 고요하다.'

리더는 무겁다. 치중(輜重)은 ‘수레에 실은 군수품 같은 짐’으로 무거움(重)에 대한 비유적 표현이다. 리더는 조직을 먹여 살려야 하는 무거운 책임감을 지고 있고, 리더가 무거워야 배의 평형수 탱크처럼 중심 잡는 역할을 하고 위기에 무너지지 않는다.

 

리더는 고요하다. 리더가 고요해야 백성은 그 리더에 기대어 편안히 쉬고, 할 말을 하며, 위기 상황에도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대응할 수 있다. 비록 꽃핀 경치처럼 마음이 동하는 외부 존재나 외부환경이 있어도 마음을 고요하게 유지한다. 외부 존재의 감각적 욕구가 아니라 내면에서 만족을 찾기 때문에 고요하게 유지할 수 있다. 무엇을 하고 볼 때 판단하지 않고 보며 그것을 즐긴다. 주체와 객체를 구별할 수 없고 체험만 존재한다.

 

리더가 가볍게 결정을 번복하고 이리저리 나대면 뿌리를 잃은 나무처럼 마구 흔들리다 죽어 간다. 리더가 조급하고 시끄러운 경우 구성원은 정신이 사납고, 그런 리더를 싫어한다. 구성원은 자발적으로 따르지 않고 마지못해 시키는 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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