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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Mar 14. 2024

57. 만물의 자발성이 도다

도덕경 제25장

아무개 물질은 섞여 이뤄졌고,

온 세상보다도 앞서 생겨났다.

소리와 형체가 없어 고요하고 외롭고,

의존하지 않고 만물을 고치지 않는다.

만물에 위험하지 않게 두루 운행하여

온 세상의 어미가 될 수 있다.

 

나는 그 이름을 알지 못 하나,

억지로 붙인 글자는 극히 작아 道고,

억지로 붙인 이름은 극히 커서 大다.

 

大란 떠나 멀어지나 돌아온다.

떠나 멀어지나 돌아오는 것에

도, 하늘, 땅과 사람이 있다.

 

그래서

도가 크고, 하늘이 크며,

땅이 크고, 사람도 크다.

세상 안에 4개 큰 것이 있으며,

사람이 그중 하나를 차지한다.

 

사람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만물 스스로

그리함을 본받는다.

 

有物混成, 先天地生. 寂兮寥兮, 獨立不改.

유물혼성, 선천지생. 적혜요혜, 독립불개.

周行以不殆, 可以爲天下母.

주행이불태, 가이위천하모.

吾不知其名, 强字之曰道, 强爲之名曰大.

오불지기명, 강자지왈도, 강위지명왈대.

大曰逝, 逝曰遠, 遠曰反.

대왈서, 서왈원, 원왈반.

故道大, 天大, 地大, 人亦大.

고도대, 천대, 지대, 인역대.

域中有四大, 而人居其一焉.

역중유사대, 이왕거기일언.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인법지, 지법천, 천법도, 도법자연.

 

노자는 이번 장에서 도의 특성에 대해 어렵게 말한다. 도의 특성을 말하다가 갑자기 큰 것의 개념, 4가지 큰 것, 본받음에 대해 말하고 있다. 문장들이 어떻게 연결되는가?

 

노자는 ① 4가지가 모두 크고 ② 서로 밀접한 관계가 있고, ③ 순환관계임을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대(大)는 극히 커서 끝이 없다. 끝이 없는 것은 떠나 멀어지나 돌아온다. 도, 하늘, 땅과 인간(존재)은 크다. 극히  존재는 도의 특성(덕성) 가지고 있다. 혼성, 시원, 무성, 무형, 고요, 독립, 불간섭, 무한 작용, 무해, 없음, 극히 큼, 순환, 스스로 그리함을 말한다. 노자는 인간을 도를 품은 극히 큰 존재이자 극히 작은 존재로 보고 있다.

 

도, 하늘, 땅과 인간(존재)은 밀접한 연관관계가 있고, 영향을 주고받는다. 순환한다. 노자는 밀접한 연관관계를 천망(天綱)이라고 표현했다. 서로의 관계는 천망처럼 너무 촘촘하지 않고 크고도 넓지만 놓치지 않고 잘 맞물려 돌아간다(73장). 서로 통하고 있어 나다니지 않아도 극히 큰 나를 알면 세상을 안다고 했다(47장). 또한, 있는 것 같은 없음인 도와 없는 것 같은 있음인 천지만물의 도(또는 덕성) 나타냄은 같으나 부름이 다르다고 했다(1장). 하나됨(54장), 혼연일체(49장), 포일(抱一, 10장, 22장) 등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는 이유다. 즉 하나되었다는 이야기는 다른 것을 합쳐 하나의 덩어리를 이루었다는 말인데 같지 않아야  덩어리를 만들며, 다르지 않고 서로 통해야 한 덩어리로 뭉칠 수 있다.

 

도, 하늘, 땅과 인간(존재)은 순환관계다. 세상의 큰 것들은 서로 본받는 관계다. 만물이 땅을,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를, 도는 만물의 자발성을 본받는다고 했다. 순환관계에 있기 때문에 우열이 없어 차별할 것도 없다. 평등하기 때문에 도는 선하든 선하지 않든 차별하지 않고(不仁) 선하게 대한다.

 

'아무개 물질의 특성'

도는 혼성, 시원, 무성, 무형, 고요, 독립, 불간섭, 무한 작용, 무해, 없음, 극히 큼, 순환, 스스로 그리함의 특성이 있다. 뒤섞여 혼돈이고 만물의 시원이다. 소리와 형태가 없다. 독립적이며 만물을 간섭하지 않는다. 세상에 무한대로 작용을 하나 해롭지 않고 낳고 키워주므로 세상의 어미다. 도는 만물의 자발성에 따라 순환 운동을 한다.

 

유물혼성(有物混成)에 대해 다음과 같이 해석할 수 있다. A. 물질이 만들어지고 섞여서 이루어졌다. B. 모(아무개) 물질은 섞여서 이루어졌다. B로 해석한다. 유(有)는 명사 앞에 ‘아무개, 모(某), 어떤, 어느’의 뜻으로 사용한다. 주로 어떤 존재가 있기는 한 것 같은데 확실하지 않거나 밝히기 곤란할 때 쓴다. 이름을 붙이기 전이므로 아무개 물질이라고 했다. 하단에 이 아무개 물질은 이런저런 특징이 있고, 아무개 물질은 극히 작아 도(道) 字라고 쓰고, 극히 커서 대(大)로 부른다고 했다. 유(有)가 아무개로 쓰인 예로 有數存焉(어떤 운수든 있다), 有人(어느 사람, 어떤 사람, 누군가) 등이 있다.

 

'혼성(뒤섞여 분별이 없음)'

도는 상반된 유와 무(1장), 양과 음(42장), 청과 탁, 정과 동 등이 뒤섞여 있다(15장). 길을 가는 동안 음일 수도 양일 수도 있다. 단단할 수도 부드러울 수도 있다. 짧을 수도 길 수도 있다. 달콤할 수도 쓸 수도 있다(29장, 34장).

 

'만물의 시원'

도는 음양이 균형을 이루어 비어 보이나 빈 그대로 꽉 찼다. 우주를 존재하게 한 창조의 여신으로 태어나게 한 부모가 없다. 도는 만물의 시원이다(4장).

 

'무성ㆍ무형(無聲無形)'

도의 본체는 있는 듯 없는 무(無)다. 소리가 없어 고요하고, 형태가 없어 의지할 데 없으며 쓸쓸해 보인다(寂兮寥兮).

 

열자 천서 편의 내용이다. 태어난 것은 죽지만 태어나게 한 것은 죽지 않는다. 형체는 구체적으로 실재하며 눈으로 볼 수 있다. 하지만 형체를 있게 한 것은 눈으로 볼 수 없다. 소리는 들을 수 있지만 소리를 있게 한 것은 소리가 없다. 색깔은 볼 수 있지만 색깔을 있게 한 것은 볼 수 없다. 음식마다 맛이 있지만 맛나게 한 것은 감각으로 느낄 수 없다. 태어남과 형태, 소리, 색깔이나 맛은 모두 억지로 하지 않고 저절로 그리되는 무위의 길을 따라 나타난다.

 

'비의존성(스스로 존재, 독립), 간섭'

도는 어디에도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으로 존재한다. 형상에 집착하지 말라는 말은 도의 독립성을 닮으라는 의미다. 만물에게 지적질하며 고치라고 하지 않는다. 만물은 이런 특성을 가진 도에 의해 간섭을 받지 않아 자유롭다.

 

'무한한 작용과 무해'

도는 온 세상에 두루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도는 없는 듯 작용하므로 만물에 위험하지 않고 이롭다. 만물을 낳고 먹이는 어미와 같은 존재다.

 

'임의적으로 붙인 글자와 이름인 도와 대'

아무개 물질은 공기처럼 없어서는 안 될 존재이지만 세상은 그 존재를 모른다. 존재를 보면 없는 것 같아 ‘도(道)’字로 쓰고, 작용을 보면 극히 크기에 ‘대(大)’라고 부른다.

 

'도의 반전 순환운동'

大는 떠나 멀어지나 돌아온다. 도의 끝없는 순환 운동에 대한 설명이다. 음양이 쌍을 이루어 확장되어 멀어지며 다시 반전하는 운동을 한다. 떠날 때와 다른 느낌으로 변화되어 돌아오는 나선형 순환운동이다.

 

'도의 종류: 도, 천도, 지도, 인도'

극히 큰 것에는 도, 하늘, 땅과 사람(존재, 有)이 있다. 극히 큰 것은 끝이 없다. 끝의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 문을 사례로 들어 설명한다. 문은 집 안과 집 바깥을 나누는 경계다. 집 안에서 보면 문은 집의 끝이다. 집 밖에서 보면 문의 바깥세상의 시작점이다. 경계는 끝이고 시작이다. 즉 끝이 존재한다는 의미는 건너 세상의 시작이 존재한다는 말과 같다. 즉 끝은 또 다른 시작이며, 형태만 달리한다.

 

극히 큰 은 다 끝이 없다. 하늘은 끝이 없고 끝이 어딘지 모른다. 땅도 끝이 없다. 땅은 둥글어 순환됨으로 끝이 없다. 존재들도 끝이 없다. 죽으면 무로 돌아가며 무에서 존재들이 시작한다. 죽음은 끝이 아니다. 도는 끝이 없는 하늘, 땅과 존재들의 총합이기 때문에 끝이 있을 수 없다.

 

'도의 근거'

 사람(존재)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만물 스스로 그리함을 본받는다고 했다. 땅은 존재들을 기르고, 하늘은 존재들덮어준다. 도는 존재들을 낳고 기르며, 시키지 않아도 밤낮과 춘하추동을 바꾼다. 세상 모든 것(만물) 총합이 '도'고, 도는 만물의 자발적 본성에 따라 움직인다. 사람(존재), 땅, 하늘과 도는 극히  극히 큰 것들은 돌고 도는 순환구조를 형성한다.


도는 스스로 그리함을 본받는다는 도법자연(道法自然)의 자연(自然, 스스로 그러함, 자발성)은 누구의 자발성을 본받는지 의문이다. 만물의 자발성으로 번역했다. 도는 형이상학적 개념으로 존재를 통해서만 현상이 드러난다. 도는 만물을 통해서 작용할 수 있다. 무위ㆍ자연, 희언ㆍ자연의 경우 무위와 희언의 주체는 도(또는 통치자, 몸을 다스리는 마음), 자발성의 주체는 만물(또는 피지배자, 몸)이다. 무의 개념인 도와 유의 개념인 만물이 어우러지는 유무상생이다.


존재는 극히 크고, 극히 큰 것은 도의 특성이 있으며 그 특성 중에 하나가 스스로 그리함(自然)이었다. 만물에 도가 스며들어 있다는 말과 같은 의미다. 만물에 자발성이 있어 도가 만물의 자발성을 본받을 수 있고, 그런 만물의 총합이 도다. 만일 도가 도의 자발성을 본받는다면 본받는다는 표현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앞에 있는 문장에서도 주어와 본받는 대상이 다르다. 또한 도는 순환 운동을 한다고 했으므로 만물의 자발성이라고 해석해야 순환구조가 만들어진다. 도는 도의 자발성이 아니라 만물의 자발성을 본받는다고 해석한다.

 

극히 큰 것에는 도(비존재), 하늘, 땅과 인간(존재, 有)이라고 했다. 비존재와 존재다. 비존재는 도고 존재는 만물(하늘, 땅, 그 외 존재들)이다. 문장구조를 단순화하여 도와 만물로 구분하면 '만물(존재, 有)은 도(비존재, 無)를 본받고, 도는 만물의 자발성을 본받는다.'로 표현할 수 있다.


자연스럽고 번거로운 표현이지만 인간 대신 천지 이외의 존재들이 의미로는 더 알맞는 것 같다. 존재는 땅을, 땅은 하늘을, 하늘은 도를, 도는 세상의 모든 것(만물)의 스스로 그리함을 본받는다는 순환 구조가 만들어진다. 도는 순환 운동을 한다는 논리와 잘 맞아떨어진다. 도가 만물의 자발성을 본받는다고 도가 만물의 하위개념은 아니다. 도는 만물을 창조하고, 자율적으로 작동하는 만물의 합이 도고, 순환구조에서는 우열이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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