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매거진 도덕경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누룽지조아 Mar 26. 2024

69. 환경까지 나면 근심이 없고 세상을 맡길 만하다

도덕경 제13장

평범한 사람은

총애를 받거나 모욕을 당하면 놀라니,

큰 근심을 자신처럼 귀중하게 여긴다.


무엇을 총애와 모욕에 놀란다고 하는가?

총애를 받아도 애증에 집착해 아래여서

얻어도 마음에 두고, 잃어도 마음에 둔다.

이것을 총애와 모욕에 놀란다고 말한다.


어찌 큰 근심을 자신처럼 귀하게 여기는가?

내가 크게 근심하는 이유는

내게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자신이 없는 경지이면

내가 무슨 근심이 있겠는가?


그래서

자신을 세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귀중히 여겨 세상을 부탁할 만한  같고,

자신을 세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소중히 여겨 세상을 맡길  있는  같다.

 

寵辱若驚, 貴大患若身.

총욕약경, 귀대환약신.

何謂寵辱若驚? 寵爲下, 得之若驚, 失之若驚.

하위총욕약경? 총위하, 득지약경, 실지약경.

是謂寵辱若驚. 何謂貴大患若身?

시위총욕약경. 하위귀대환약신?

吾所以有大患者, 爲吾有身. 及吾無身, 吾有何患?

오소이유대환자, 위오유신. 급오무신, 오유하환?

故貴以身爲天下, 若可寄天下,

고귀이신위천하, 약가기천하,

愛以身爲天下, 若可託天下.

애이신위천하, 약가탁천하.

 

이 장에서 총욕약경(寵辱若驚)과 신(身)을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따라 해석이 완전히 달라진다. 총욕약경(寵辱若驚)은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져 사소한 총애와 모욕에 놀라지만, 자신의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는 사람은 총애와 모욕을 초월한다는 비유적 표현이다. 총애와 모욕에 놀라는 사람은 자기 이해득실을 늘 따지므로 근심을 달고 산다. 신(身)은 자신이나 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 장에서 이해득실을 초월한 무아(無我)에 대해 설명하는 내용이므로 자신이라고 번역했다.


인간은 늘 근심과 불안을 안고 사는 존재다. 근심과 걱정이 발생하는 이유는 나와 남을 나누고 내게 집착하고 남과 경쟁하기 때문이다. 경쟁을 잘하기 위해 내 이익과 손해를 계산하고 그것에 집착한다. 힘겹게 싸워 이긴 사람은 한정된 세상의 자원을 쟁취한다. 얻어 기뻐하고 못 가져 불행하다고 생각한다. 일마다 이해득실을 따지며, 경쟁자를 미워하고 시기한다. 싸워 이기겠다는 마음, 증오심과 시기심으로 마음이 동요한다. 근심과 걱정이 자리 잡는다.


열자의 말에 따르면 한 9년쯤 수양하면 자타와 내외를 구분하는 의식이 완전히 사라져 몸이 밝고 가벼워진다고 한다. 따라 하기 어려운 경지다. 아무튼 나와 외부 존재가 일체 되어 오직 공만이 존재하는 지공무사 경지에 이르면 근심은 사라지고, 세상을 맡길 만한 상태가 된다고 한다.


'자기에 집착해 이해득실에 마음을 두고 근심한다.'

세상 사람들은 자기에게 이득인 경우 용이 큰 물결을 일으키듯 기뻐하고(寵), 손해인 경우 농사 때를 놓친 농부가 모욕당한 것처럼 안타까워한다(辱). 이렇게 총애와 모욕의 이해득실에 마음을 두는 것(驚)이 세상 사람들의 마음이다. 투자받아도 걱정, 못 받아도 걱정한다. 도에 정통한 사람은 이해득실을 초월한다.


寵爲下, 得之若驚를 ‘총애를 받아도 애증에 집착해 아래이므로 얻어도 마음에 둔다.’로 번역했다. 좋아해 집착하고, 싫어해 회피하기 위해 집착하는 것을 애증에 집착한다고 한다. 총애를 받는 것이 아래인 이유는 총애를 받으면 계속 인정받으려고 집착하다가 자기를 잃기 때문이다.


'자아에 집착하지 않는 경우 근심이 없어지고, 세상을 운영할 만한 리더다.'

근심과 걱정은 나만의 내가 있다고 생각하여 나에게 집착하고 남과 경쟁함으로써 발생한다. 남과 비교하고, 남보다 잘나고 싶어 한다. 부나 지위 등으로 자기를 남과 차별화하고 나는 남과 다른 사람이라고 여긴다.


보통 자아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을 말한다. 자아는 통제할 수 있는 머리, 팔과 다리, 몸, 장기 등으로 이루어진다. 집, 직장, 컴퓨터, 공기, 물, 음식 등과 관계를 맺고 있다. 내 팔과 다리가 다치거나 장기가 잘 작동하지 않으면 나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집, 직장, 공기, 물, 음식도 나에게 직접 영향을 미친다. 팔이 잘리면 아프다. 직장에서 잘려도 아프다. 내 몸과 정신이든, 나와 연관되어 있는 외부 환경이든 나에게 영향을 미친다. 내 몸과 정신만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지 않다. 나와 관계를 맺는 주변 환경도 내게 영향을 미친다. 나를 구분할 때 통제가능성보다 내게 영향을 미치는지 여부가 더 중요한 요소다.


외부 환경까지 내 범주에 포함시킬 경우 집착할 내가 없어진다. 자아와 외부 존재의 경계가 사라져 자타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무아의 상태다. 온 세상이 다 내가 되고 만다. 노자가 최상의 경지라고 말하는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상태다(17장). 나와 남이 구분이 안 되니 내 이해시비를 따로 따질 필요가 없다. 내 이해득실을 따짐으로써 발생하는 근심이 사라진다. 마치 여러 빛을 다 흡수해 투명으로 보이는 상태다. 어떤 일이든 마음대로 해도 자연스럽고, 어느 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며, 사사로움이 없는 경지다(公平無私). 자신을 세상으로 생각하는 경지며 세상을 맡기거나 부탁할 수 있다고 표현했다.


貴以身爲天下을 '자신을 세상으로 생각하는 것을 귀중하게 여기다.'로 번역했다. 以爲는 ~로 여기다, ~로 생각하다, ~로 삼다는 의미의 관용어다.


실전에서 이런 수행을 어떻게 할지, 과연 될지 고민이다. ① 눈을 깜박이며 세상은 마음의 작용이라고 되뇐다. 눈을 깜박이면 세상이 생겼다 사라진다. 세상은 마음의 작용이다. 마음이 그렇게 느끼므로 세상이 그런 모양으로 생겼다. 물론 외부 존재가 없다는 말은 아니다. 있긴 있는데 내 마음이 그렇게 인식한다는 의미다.


② 나는 환경을 이고 지고 다닌다고 생각한다. 내 몸만 내가 아니다. 이고 지고 다니는 환경까지 나다. 환경도 내 몸이나 마음처럼 내게 영향을 미친다. 특히 환경까지 나로 생각하는 경우 애들을 잘 이해할 수 있다. 애들이 마음에 들지 않는 행동을 했다. 누구 닮아서 부모가 싫어하는 행동을 하겠는가? 부모 닮았다. 내게 영향을 미치는 존재이지만 내 맘대로 통제가 안 되는 나를 둘러싼 환경 같은 존재가 애들인 것 같다.

매거진의 이전글 68. 없음은 만물의 겉, 속과 움직임으로 나타난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