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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누룽지조아 Apr 03. 2024

77. 무심하면 다 포용해 비어 보이나 크게 작용한다

도덕경 제5장

세상은 무심하여 만물을 제사 때  지푸라기

개처럼 생각하여 별 집착을 하지 않,

성인은 무심하여 백성을 제사 때 지푸라기

개처럼 생각하여 집착을 하지 않는다.

만물과 백성에 집착하지 않고,

차별 없이 포용하니 빈 듯하다.

이 세상은 피리와 같구나!


세상은

음양이 균형을 이루고 있어

비었지만 오그라들지 않고,

작동할수록 더 생산해 낸다.


성인도

무심하여 별 간섭을 하지 않으며,

말하지 않으나 더 크게 작용한다.

말을 많이 하면 자주 난처하므로,

마음속에 간직하는 것만 못하다.


(주)지푸라기 개(芻狗): 고대 중국에서 제사 지낼 때 짚으로 개를 만들었으며 제사를 지낸 후에 버렸다. 만물을 지푸라기 개로 생각한다는 말은 이미 제사 때 썼던 것에 대해 미련이 없다는 의미다. 좋아하지도 싫어하지도 않고 무관심하게 대하고, 애증에 집착하지 않는 모습이다.


天地不仁, 以萬物爲芻狗,

천지불인, 이만물위추구,

聖人不仁, 以百姓爲芻狗

성인불인, 이백성위추구.

天地之閒其猶橐籥乎!

천지지간기유탁약호!

虛而不屈, 動而愈出.

허이불굴, 동이유출.

多言數窮, 不如守中.

다언삭궁, 부여수중.


차별하지 않고 다 포용하여 섞인 빛처럼 빈 것과 같다. 세상 무심하여 간섭하지 않고 만물을 순리에 맡긴다. 성인도 무심하여 간섭하지 않고 백성을 순리에 맡긴다. 무위로 행동하고, 묵언으로 말한다. 말을 마음속에 간직하여 난처한 상황이 줄어든다.


'세상과 성인은 무심하다.'

이 글에서 불인(不仁)을 분별하는 마음이 없는 무심(無心)의 의미로 사용했다. 불인(不仁)은 어질지 않다는 부정적인 색깔이 있어 어감을 고려해 무심(無心)으로 번역했다(無常心, 49장).


세상과 성인은 생각이나 감정에 좌우되어 만물과 백성을 차별하지 않고 무심하게 대한다. 만물과 백성 모두를 순리에 따르는 존재로 여긴다. 무심하면 빈 것처럼 투명하지만 무심하다고 사랑하지 않는 것이 아니다. 이래라저래라 말로 명령하지 않고 무관심하듯이 바라보는 이유는 만물 모두 차별하지 않고 다 포용하고 아끼며 그들의 자유를 존중하기 때문이다.


공자는 인(仁)을, 노자는 불인(不仁)을 주장한다. 어떤 게 맞는지는 어려운 문제이므로 각자 판단에 맡기고 각자의 주장을 들여다보는데 집중한다. 공자는 천도(天道)가 속에 숨어 있어 밖으로 나오는 것이 인(仁)이고, 인(仁)을 실천하면 만사가 조화롭고 발전한다고 생각했다.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도덕에 맞는 행위이므로 인(仁)이라고 했다. 그러나 인(仁)의 관점에서 도에 맞는 사람은 사랑하고 도에 맞지 않는 사람은 미워하는 것이 참된 사랑이다. 인(仁)의 실천방법으로 극기복례(克己復禮, 욕망이나 사(詐)된 마음 등을 자기 자신의 의지력으로 억제하고 예의에 어그러지지 않도록 함)를 제시했다.


노자는 인(仁)에 대해 공자와 다르게 생각한다. 가치나 개념을 구분하는 것과 의식적이고 의도적인 것을 배제하고 자연스럽게 저절로 나오는 것을 추구한다. 선악에 대한 생각도 독특하다. 선악이란 원래 없는데, 설령 선악이 있더라도 상대적이고 꼬여 함께 있다고 생각했다. 천지가 다 포용하고 차별하지 않는(不仁) 이유는 선악을 구분할 수 없어 악만 버릴 수 없기 때문이다. 만물을 선악에 따라 차별 대우하고 싶어도 불가능하다. 노자 입장에서 불인(不仁)은 마치 햇빛이 착한 대상이나 악한 대상에게 똑같이 비추듯이 만물 누구에게나 똑같이 대하는 것을 말한다(49장). 인간에게만 잘 대해 주는 인본주의 사상도 아니다. 노자는 불인(不仁)을 대상을 가리지 않고, 목적을 추구하지 않으며 무의식적인 반면 인(仁)은 대상을 가리고, 목적은 없으나 하는 이유가 있는 의식적 행위라고 생각했다.


'무심하여 아무 일 안 하는 것 같은데 많은 작용을 한다.'

바람을 불면 속이 빈 피리에서 악기 소리가 나온다. 이 세상의 아무것도 안 보이는 빈 공간에서도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 비가 오고 눈이 온다. 바람이 불고 많은 별들이 쏟아져 나온다. 수소와 헬륨 등 가스가 중력 수축하여 가스층을 형성하고 회오리처럼 회전하여 크기가 커지며 많은 별들이 탄생한다. 비어 있는데 많은 작용을 한다.


천지지간(天地之閒)을 ‘이 세상’으로 번역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하늘과 땅 사이라는 뜻으로 이 세상을 이르는 말이다.


탁약(橐籥)을 피리로 번역했다. 탁(橐)은 어깨에 두르는 자루인 전대나 풀무를 말하고, 약(籥)은 대나무로 만든 피리를 뜻한다. 어깨에 두르는 자루가 달린 피리나 풀무처럼 바람을 불어넣은 피리를 뜻하는 것으로 보인다. 뒷글자인 피리 약(籥)에 중점을 두어 피리로 해석했다.


동이유출(動而愈出)을 ‘움직일수록 점점 더 생산해 낸다.’라고 번역했다. 출(出)은 ‘낳다, 나가다, 드러내다, 내놓다’의 뜻이 있는데 이 문장에서 낳다는 뜻의 생산해 낸다는 의미다. 피리의 속은 비어 공기가 나간다는 의미의 해석보다 빈 공간에서 소리를 생산한다, 낳는다는 의미가 적절해 보인다.


'성인의 묵언 작용'

성인도 세상과 마찬가지로 무심하여 별 간섭을 하지 않고, 말을 많이 하지 않아도 백성에게 크게 영향을 미친다. 왕이 말로 명령할 경우 오히려 역효과를 불러일으킨다. 말 많고 결과가 없으면 난처해지고, 괜히 말꼬투리만 잡힌다. 따라서 묵언을 지키고, 백성의 자율에 맡기는 것이 더 낫다.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말로써 남에게 주입하여 남을 변화시키려고 한다. 예를 들어 왕이 경제가 힘드니까 백성들에게 내일 다 쉬라고 말했고 하자. 백성들에게 좋을까? 왕이 백성을 위해서 그런 지시를 내렸다. 그러나 하루하루 벌어 밥 먹고 사는 사람은 쉴 수 없다. 아기 새들처럼 입 벌리고 모이 달라는 애들을 저버릴 수 없다. 왕이 좋은 취지로 말했는데 결과는 엉뚱하게 튄다(多言數窮). 못 쉬는 사람은 상대적인 박탈감을 느낀다. 우리 아빠만 일한다고 불만이고, 맞벌이 부부는 아이 어디 맡길까 고민이다. 가난한 기업주는 다음 달 급여 어떻게 줄까 걱정한다. 백성을 위해 쉬라고 한 왕의 말은 긁어 부스럼을 만들어 버렸다. 쉬고 안 쉬고는 급여 주는 사람과 급여받는 사람의 자율에 맡겨 각자의 형편에 따라 결정해야 탈이 없다.

 


 

무심 교육


노자는 강압적인 행동, 지시나 명령조의 말의 부작용에 대해 여러 장에서 계속 강조한다. 강압적으로 하거나 지시할 경우 백성들의 반발심을 불러일으켜 저항하며 미움의 싹이 자란다. 리더는 구성원의 미래를 위해 그렇게 하는 것이므로 정당하다고 생각하는데 결과는 더 엇나가 리더가 생각했던 것과 반대로 간다.


애 교육시킬 때 애에게 너무 관심을 쏟지 않고 실패하면서 스스로 하게 한다. 애가 힘들어해 숙제를 대신해 주고, 공부 안 하는 애에게 명령조로 말한다. 어린 식물에게 비료를 많이 주어 죽이는 꼴이다. 이런 지시나 대신해 주는 유형의 사랑에는 독성이 있다.


명령하고 잔소리 많이 해봐야 애들은 말을 안 듣는다. 한 번은 통할 수 있으나 계속하기 버겁다. 애 입장에서는 부모의 관심이 부담스럽고 마음에 와닿지 않으며, 강제적인 명령으로 들려 갈등의 불씨가 된다. 부모가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은 싸워야 애에게 진다는 사실과 이길 경우 늙어서 복수당한다는 사실이다.


애들이 직접 선택하지 않는 경우 책임감이나 재미를 느끼지 못해 좋은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 애 교육을 지시나 명령이 아니라 다른 방법을 모색할 필요가 있다. 무심 교육이 그 대안이 될 수 있다. 애가 어떤 날에 아주 밉더라도 그 모습까지 아끼는 교육이다. 장기간 인내를 요한다. 애가 거짓말하는 것 같더라도 끝까지 듣는다. 때론 알고도 그냥 넘어가기도 한다. 애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 이해하고 그 입장에 공감한다. 말하고 싶으면 부드럽고 약하게 따뜻하게 한다.


애들이 고민을 물으면 내 일처럼 진지하게 다각도로 생각하고 말한다. 애들은 뻔한 대답, 부모도 잘 모르는데 아는 척하는 말, 유튜브 전문가보다 못한 말이나 학교 상담 선생님만큼의 대답이 아닌 경우 고민에 대해 부모와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 하지 않는다. 부모가 평소에 세상의 흐름을 바라보는 눈을 키우고, 애에게 관심을 가진다. 모르면 모른다고 솔직하게 말하고 전문가를 만나게 해 준다. 애 고민에 대해 진지하게 먼저 생각하고, 최소한 검색포탈, 유튜브를 찾아보고 AI에게 질문하고 대답과 링크된 자료를 읽는다.


다니는 학원이 너무 많다고 하소연하면 잘 들어준다. 숙제를 잘 안 하고, 가서 자는 것보다 다니는 학원수를 줄이는 것이 낫다. 부모는 학원 안 다니겠다는 애에게 잔인한 말을 하지 않는다. 자발적으로 공부할 수 있게 공부 환경 조성에 힘쓴다. 어쩔 수 없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가 원하는 대로 애들 성적을 받게 할 수 없다. 어쩌면 별 도움 안 되는 소리나 명령조로 공부하라는 교육 방식보다 말 안 하는 것이 더 교육적이다. 마치 투자하지 않는 것도 투자고, 휴식도 일의 연장이며, 빈 공간도 그림의 일부인 것과 같다. 하지 않음도 가치가 있다.


애에게 별 말 안 하고 애들 얘기 잘 들어주며 도와주는 역할에 만족한다. 부모는 애들 공부와 관련하여 딱히 할 일이 없다. 부모는 좋아하는 취미 등 자기 일을 한다. 공부 잘할 수 있는 집안 분위기를 만들고, 다양한 사람과 이야기해 직접 느낄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다. 스스로 시행착오를 하며 실패를 딛고 일어서기를 기다린다.


애들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아도 끝까지 지원 사격하는 데 만족한다. 성질이 급한 사람은 속 터져 죽을 수 있다. 무심 교육의 핵심은 아끼는 마음과 느린 변화를 받아들이는 데 있다. 애들이 어떻게 하든 애들을 아끼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고, 부모의 강압에 의한 변화보다 애들이 수긍하여 자발적으로 받아들일 때까지 기다려 준다. 아주 장기간의 인내를 요하는 교육방법이다. 10번 듣고 1번 말하며, 10번 말했을 때 1번 부모 말 들어도 만족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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