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7 통찰: 관계

by 누룽지조아

실재하는 세상이 우리가 보는 것처럼 생겼을까? 우리가 느끼는 세상은 실재하는 세상과 다를 수 있다. 3가지 인식 오류가 있을 수 있다. 첫째는 감각기관이 능력의 한계로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할 수 있다. 둘째는 자기 생각이 개입되어 다르게 볼 수 있다. 셋째는 관계되는 무와 환경을 연결하여 보지 않을 수 있다.


첫째와 둘째 이유는 감각 편에서 설명하고, 셋째 이유에 대해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인간은 물질의 형체만 볼 수 있을 뿐 관계는 볼 수 없다. 만물은 하나하나 독립적 존재이자, 전체와 관계를 맺는 존재다. 전체를 공(公), 관계를 인연(因緣)이라고 한다. 인(因)은 직접적 인과관계를, 연(緣)이란 간접적 인과관계를 의미한다. 존재는 물질의 형체뿐만 아니라 비존재인 관계에 영향을 받는다.


어머님이 사시는 동네의 아파트가 서울의 아파트보다 싸다. 아파트를 지은 지 얼마 되지 않아 더 깨끗하고 동 호수도 더 많다. 놀이터는 잘 꾸며져 있다. 동 사이 간격도 넓어 덜 답답하다. 집에 들어가 보면 수압이 높아 수돗물은 더 잘 나오고, 벽과 바닥도 더 깨끗하다. 건물로만 비교하면 서울의 아파트보다 더 좋다.


사실 아파트 가격은 건물의 질로만 결정되는 게 아니다. 그 지역의 돈의 양, 땅값, 유동인구, 학교 분포, 교통, 역까지의 거리, 소비시설, 문화시설 등에 의해 더 영향을 받는다. 아파트 가격은 그 지역 경제력, 땅값, 유동인구 등 환경과 분리되어 단독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다른 환경 속에 있는 아파트는 모양은 똑같으나 효용은 다르다. 환경과 아파트는 서로 의지하면서 존재한다.


또한, 다른 예로 회사의 당기순이익 등의 회사 실적은 실적 뒤에 숨어 있는 외부 환경(산업의 성장률, 경쟁 강도 등)과 내부환경(임원의 고민, 노동자의 피와 땀 등)과의 관계를 이해해야 더 잘 파악된다.


한 남자가 벽을 밀고 있다. 사람들은 ‘남자가 벽을 밀고 있다.’라고 말한다. 벽을 미는 행위를 남자의 단독 행위로 표현한다. 사실 벽을 미는 행위는 남자의 단독행위가 아니다. 물질 사이에는 상호작용이 일어난다. 남자가 벽을 밀면 동시에 동일한 힘으로 벽도 사람을 미는 반작용을 한다. ‘남자가 벽을 밀고, 벽이 남자를 밀고 있다.’라고 표현해야 더 정확하다.


단독으로 존재하는 것은 없으며, 인연 관계 속에서 존재한다. 또한, 행동도 자신만의 단독행위가 아니고, 반작용을 하는 다른 사물과 함께하는 합동행위다.


인간은 ‘유’의 형체만 볼뿐 관계 맺고 있는 환경은 볼 수 없거나 중요성을 간과한다. 나와 관계 맺고 있는 환경은 눈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실익은 없으나 굳이 따진다면 환경이 더 근원적인 것 같다. 환경은 내가 없어도 존재하지만, 나는 환경이 없으면 존재하지 못한다. 환경이 근원적 존재라고 해도 내 가치는 훼손되지 않는다. 내가 없는 환경은 나에게 무의미하기 때문이다. 본체인 체(體)와 본체의 작용으로 인한 현상인 용(用)의 개념은 다음과 같다.


체(體)=형이상적(形而上的) 세계에서 본체인 존재, 본질, 영구불변의 존재, 존재

용(用)=형이하적(形而下的) 세계에서 감지한 작용, 현상, 변화작용의 존재, 존재자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기 위해서는 비존재인 무와 보이지 않지만 사물과 관계를 맺는 요소를 이해해야 한다.

사물을 형체만으로 파악하는 경우 형체가 변하면 제대로 알 수 없다. 형체가 있는 것은 시간이 흐르면 변하고, 관계도 끊임없이 변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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