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양을 했더니 삶이 허무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다. 욕심이 많아 보이는데 우수한 성적을 받는 친구가 있었고, 대기업에 들어가 돈 많이 벌고 있는 친구도 있다. 그러나, 수양한다고 기대하지 않는 연습, 비우는 연습하고 있으니 한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남도 쓸데없는 짓 한다고 한 마디 한다. 또한, 수양인이나 종교인에 대해 말과 행동이 조금 다르다고 비판한다. 냉정히 말하면 그건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할 권리가 없다. 수양하는 사람을 틀에 가두려는 비판이다. 자기는 더 잘 지키고 있는지 먼저 생각해 본다. 남 일에 간섭하는 것은 주제 넘는 일이다. 수양인이나 종교인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때 자기보다 더 양심적으로 사는지 비판하는 사람은 알 수 없다. 신념 등은 자기에 적용되는 것이지 그렇게 살지 않는 사람이 남 비판할 때 사용해야 하는 무기가 아니다.
허무하고, 좋아진 게 없는 사람은 수양을 잘못하고 있는 뭔가가 있다. 수양하는 사람은 얼굴이 밝고 충실히 산다. 주변도 뭐가 바뀐 것 같고 좋아 보인다고 말한다. 허무함은 수양하면서도 기대감이 높거나, 하는 일에 집중 안 하고, 존중하고 감사하는 마음이 빠져 있어 발생하는 현상이다. 전혀 도움이 안 되는 수양은 할 필요가 없다.
수행하면 뭐가 될 줄 기대했는데 대단한 뭐가 없고, 잡으려고 했는데 잡히는 게 아무것도 없어 허무하다. 빈 마음으로는 어떤 것도 잡지 못하고 가진 것을 잃을까 봐 불안하다. 잔뜩 욕심부리면 더 잡기 어렵고, 걱정도 많이 생기기에 수양이 필요하다. 수양으로 아무것도 잡지 말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나도 환경도 변하므로 내 기대를 내려놓고 걱정 없이 저절로 잡자는 의미다. 가장 실익이 있는 방법이다.
딸은 시험 성적에 대한 기대가 높았다. 한창 시험 보고 있는 딸에게 시험 끝난 후 문자를 보냈다. 딸! 시험지 안 맞춰봤으면 좋겠다. 시험 잘 본 경우 남에게 인정받고 너는 기분이 좋아지겠지. 그러나 시험 못 본 친구는 기분이 나빠져. 반면, 시험 못 본 경우 네 기분이 나빠 울고불고하겠지. 시험지 여는 순간 누군가는 기분이 나빠져.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어떻게 할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시험 맞춰보지 않고 차분히 내일 시험 잘 준비해.
기대 잔뜩 하고 시험지 맞춰본다고 시험 성적은 좋아지는 게 아니고, 행복감은 줄어든다. 그냥 내일 시험에 집중하는 게 시험 성적에 도움이 된다.
수양할 때 이런 망상에 빠지지 않는다. 가져야 별 의미 없는 짓이다. 수양하려면 산에 들어가야 한다. 나를 희생해야 한다. 만사 매일반이고, 이리 살든 저리 살든 별 차이 없다. 남과 싸울 일 있어도 굳이 싸우지 않고 양보한다. 틀리더라도 어차피 반전되므로 조용히 있는다. 위나 아래나 똑같다. 지식은 쓸모없다.
‘빈 마음은 아무것도 없는 마음이 아니다.’ 빈 마음을 잘못 이해하고 수양했기 때문에 인생이 허무하다고 느낀다. 빈 마음을 가진 사람은 고정관념이나 감정 등에 얽매지 않아 가는 것은 가는 대로 오는 것은 오는 대로 놔둔다. 없어지는 것에 미련을 두거나, 변하는 것을 잡아 두려고 집착하지 않는다. 곁에 멋지고 특별한 것이 없다고 불평하지 않는다. 소소하고 평범할지라도 늘 우리 곁에 이미 있는 것에 감사한다. 빈 마음으로 대하면 남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 좋은 관계를 맺는 사람들이 늘어난다. 내 마음도 편안하다. 빈 마음을 품은 사람은 결과는 받아들이고, 과정을 중요하게 생각해 성실히 노력하며 살기에 허무해지지 않는다.
‘욕심을 버려 아무것도 소유하지 않는다는 말이 아니다.’ 배우자가 수양하는 사람에 대해 가장 염려하는 부분이다. 돈에 관심 안 가지고, 안 벌면 어쩌지 하고 걱정한다. 수양하는 사람이 가지고 있는 소유에 대한 개념을 잘못 이해했기 때문에 발생하는 현상이다. 성실히 노력하되 있으면 있는 대로 감사하고, 없으면 없는 대로 괜찮다는 말이다. 소유에 집착하지 않음을 뜻한다. 운 좋아 돈 많이 벌면 돈에 노예가 되지 않고, 나누며 산다. 여윳돈 없어도 먹고 살만 하면 슬퍼할 필요 없다. 세상이라는 채권자에게 빌린 빚이 적어 자유로운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세상과 인연을 끊어야 수양이 잘 된다는 말이 아니다.’ 수양하려면 산에 들어가야 하거나 세상과 인연을 끊어야 한다고 잘못 이해할 수 있다. 수양할 때 세상과 인연을 끊으라는 주장이었다면 세상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없으며 주장할 가치도 없다. 세상살이하면서 하는 수양이 세상과 인연 끊고 하는 수양보다 단계가 더 높은 수양이다. 예를 들면 진짜 수양하는 사람은 아내가 힘든 일이 있는데도 자기 좋아하는 일한다고 그 일만 계속하지 않는다. 아내를 아끼는 마음으로 아내를 더 잘 도와준다. 세상과 인연 끊고 수양하는 자유 영혼이나 자유인을 추구하지 않는다.
세상에서 수양하며 세상과 어울려 살아가는 반은 도인, 반은 속인이다. 세상살이 하면서 수양해도 문제될 것이 없다. 속세의 인간에게도 양심이 있기 때문이다. 세상과 인연 맺고 의식하지 않아도 양심에 따라 사는 자유인의 모습을 추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