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7 허무 2

by 누룽지조아

허무주의에 빠지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수양하기 위해 다음을 생각해 본다.


‘나를 희생한다?’ 나도 좋고 남도 좋아야 오래간다. ‘나’라는 존재는 신성(이하, 불성, 도, 양심 등으로 달리 부를 수 있음)을 품고 태어나며 살고 있다. ‘나’라는 존재가 태어났고 살아있다는 사실 그 자체로 대단하다. 나는 전체 속의 일부지만, 그 일부인 내가 전체를 이룬다. 어떤 것이 나에게 좋고, 남에게도 좋은지 생각한다. 그런 것이 아니면 수용하지 않고 부드럽게 반론을 편다. 특히 나에게 고통스럽고, 자발적으로 할 수 없는 것을 이익을 위해 어쩔 수 없이 선택하려고 하면 뒤따르는 고통과 책임도 고려하여 수용 여부를 판단한다.


‘만사 매일반이고, 이리 살든 저리 살든 별 차이 없다?’ 별 차이가 있다. 주변 사람들 사는 모습을 보면 느낄 수 있다. 인생이라는 바둑은 포석에 따라 펼쳐지는 삶이 바뀐다. 작은 차이가 쌓이고 쌓이면 굉장히 달라진다. 수양하는 사람이 마음과 몸의 습관, 삶의 태도, 가치관을 바꿔 전과 다른 삶의 길을 걸으려는 이유다. 흐름에 맞춰 정성껏 노력하고 주어지는 결과에 감사하고 만족하는 삶을 산다.


‘남과 싸울 일 있어도 굳이 싸우지 않고 양보한다?’ 귀찮다. 내가 양보하고 만다. 달관한 모습이 아니다. 게으름이나 비굴함이다. 강자의 불공정한 요구에 저항조차 안 하면 비굴한 사람이다. 남만 좋고 나는 안 좋은 상황이다. 강자가 나에게 피해를 끼칠 자유는 없으며, 나는 정당한 방어를 할 권리가 있다. 공정함을 어떻게 추구할지 고민한다. 처음에는 부드럽게 이야기한다. 너무 불공정해 싸움 말고 다른 수단이 없으면 싸운다. 남도 좋고 나도 좋아야 오래가기 때문이다.


‘틀리더라도 어차피 반전되므로 조용히 있는다?’ 음양이나 있음과 없음은 극에 달하면 반전된다. 아무 일도 않고 가만히 있으면 상황이 반전되더라도 되는 일이 없다. 감내해야 할 억울함이나 고통이 크다. 현재의 어려움을 기회로 삼고 반전되기 전까지 성실히 노력하고 인내한다.


‘위나 아래나 똑같다?’ 위나 아래는 똑같지 않다. 세상의 관점에서 위나 아래는 있다. 다만, 아래가 위보다 더 열등한 것은 아니다. 위의 바탕은 아래다. 위와 아래는 서로 기대고 있으므로 아래가 없으면 위도 없다. 아래를 존중한다. 또한 위와 아래는 반전될 수도 있다. 반전되므로 위나 아래가 결국 같다는 말이 아니다. 위 밑에 아래가, 아래 높은 곳에 위가 ‘같이 있음’으로 위나 아래의 한쪽만 잘라 보는 50% 사고방식인 이분법을 탈피하고 100% 사고방식인 양면을 다 고려한다.


‘지식을 다 끊는다(絕學無憂)?’ 지식은 참과 거짓으로 나누는 분별지이므로 가치가 없다는 말이 아니다. 지식은 일하는 사람에게 수단으로써 필요하며, 자본주의 체제에서 자본 축적의 중요한 도구이다. 지식 공부할 필요가 없고, 인성이 중요하므로 밖에 나가서 놀라는 주장이 아니다. 공부 안 하면 주눅 들고 학교생활이 재미없을 수 있다. 지식을 한계를 알라는 말에 가깝다.


구별하여 하나하나 쌓아 올려 만들어 가는 세상도 아름다울 수 있다. 다만, 한계가 있다. 계속 구별만 하면 통합하여 어울리는 데 방해가 된다. 참과 거짓을 쪼갤 때 참은 거짓이 있어 존재하고 거짓에 의지하고 있으며, 참은 늘 참이 아니고 일정한 가정하에서 참임을 안다.

특히 책임자가 지식을 조직 운영 수단으로 사용할 때 주의하라는 비판이 들어있다. 지식을 사용해 참과 거짓, 선악으로 구분하여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보다 다르더라도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 더 소중하다. 사람과의 관계에서 지식이 많아 상대의 장단점을 알더라도 드러내지 않고 상대를 이해하고 따뜻한 마음으로 대한다. 책임자는 지식에 얽매지 않고 더 중요한 가치를 위해 그 지식을 버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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