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를 걸을까 고민했다. 차를 버리고 회사에 걸어서 갔다. 처음에 번화가를 통과해서 갔다. 걷기 불편했다. 사람, 차와 신호등이 많았다. 풀과 나무가 없었고 새도 없었다. 다른 길을 찾았다. 돌아갔다. 사람, 차와 신호등이 적은 한적한 길이었다. 풀과 나무가 있어 새소리도 들렸다. 걸을 때 사람과 차 때문에 발생하는 안전 문제를 덜 신경 써도 됐다. 신호등이 적어 기다리는 따분함도 줄었다. 약 4.5km 정도를 걷는 것 같다.
걷기는 만남이다. 사람, 동물, 식물과 사물을 만난다. 알던 사람은 오랫동안 못 본 친구처럼 반갑다. 반갑게 “안녕하세요.”라고 말하고 지나치면 기분이 좋다. 알 듯한 사람이 따릉이 타고 지나치면 눈으로 혼자 인사했다.
걷기는 시간과 공간을 늘린다. 출근하는 50분 동안 시간과 공간을 통과한다. 날마다 시시각각 미묘하게 달라진 시공간을 느낀다.
걷기 속에는 미술, 음악, 춤, 소설, 체육과 철학이 있다. 청명한 날 걷기, 빗 속 걷기, 강변 걷기, 고갯길 걷기, 둘레길 걷기 모두 매력적이다. 자연이 사시사철 그리는 그림이 있고, 연주하는 소리가 있다. 약한 것을 느끼고 듣는 걸 좋아한다. 햇볕, 바람, 새소리와 물소리를 집중해서 듣는다. 안타깝게도 내가 지나치는 길에는 개울이 없어 물소리는 비 오는 날 걸으면서 듣는다. 물받이 끝에서 물 떨어지는 소리, 양철 뚜껑에 물 부딪히는 소리, 배수구를 졸졸졸 흐르는 소리, 빗길을 지나가는 바퀴 소리가 좋다. 발걸음, 팔의 리듬에 맞춰 춤을 춘다. 공간은 나에게 말을 건다. 법원, 도서관, 터미널, 아파트, 화단 등에서 벌어질 것 같은 이야기가 나의 상상을 자극한다. 걷기는 철학적이다. 걸으면 무의식이 활성화되어 나를 가두는 고정관념에서 벗어난다.
걷기는 몸과 마음의 행복을 찾게 해 준다.
걷기는 몸에 좋다. 누워 지내면 하루에 1%씩 근육이 감소한다고 한다. 어깨 떨어뜨리고 팔다리 휘저으며 발 뒤꿈치를 땅에 내딛을 때 행복하다. 공기를 가득 들이마시고, 갈증과 배고픔으로 물과 밥도 맛있게 먹는다. 또한, 피곤해 잘 자며 장운동으로 잘 싼다. 몸 전체가 움직인다. 산 것은 부드럽고, 죽어 가는 것은 뻣뻣하게 변한다. 걸을 때 발, 종아리, 무릎, 허벅지, 팔다리, 관절, 폐, 심장, 장, 혈관, 머리 등이 움직인다. 움직이는 신체 부위는 다 좋아진다. 살이 8kg 정도 빠진 것 같다.
걷다 횡단보도를 만나면 걷는 즐거움이 중단된다. 새로운 방법을 찾았다. 가만히 서 있는 지루함을 눈 깜박임 운동으로 잊을 수 있었다. 요즘 가까운 곳은 안경 벗어야, 먼 곳은 안경 써야 잘 보인다. 안경을 쓰나 안 쓰나 불편하므로 안경을 벗고 생활하는 실험을 하고 있다. 눈 깜박이는 운동으로 눈에 휴식을 준다. 안구 건조증을 예방하고, 수정체 탄력 회복을 통해 노안 시력이 좋아지는지 실험하고 있다.
걷기는 중력에 견디는 운동으로 골 밀도가 증가하고, 햇볕을 쬐며 걸으면 칼슘 흡수가 잘 돼 뼈가 증가하고 튼튼해진다. 전후 좌우 불균형 시 요통이 발생하는데 걸을 때 허리가 펴져 요통 완화에 도움이 된다. 만성질환이자 순환계의 문제인 뇌졸중, 치매, 고혈압, 당뇨, 고지질 혈증, 동맥경화, 두통 등에도 좋다. 만성질환은 오랜 시간 누적되어 발생한 병이라 그 이상의 시간을 정신 습관과 생활 습관 바꾸는 데 사용해야 낫는다. 숨을 잘 쉬고 피가 잘 돌며, 신체 부위가 움직여 뇌를 자극하니 기억력이 좋아지고 머리가 맑아진다. 수험생과 직장인에게 안성맞춤인 운동이다.
걷기 운동은 정신 건강에 좋다. 걸을 때 자율신경과 연관된 무의식이 작용하며 의식은 쉰다. 몽유병 환자도 걷고 졸면서도 잘 걸을 수 있다. 초등학교 등하교 시 너무 피곤해 졸면서 걸었다. 넘어지지 않았고, 찻길로 들어가지도 않았다.
소화, 순환, 호흡, 배설, 호르몬 분비는 대뇌가 아니라 무의식의 지배를 받는다. 무의식 운동인 걷기를 통해 소화기, 장기, 폐 등이 좋아진다. 똥, 오줌 못 가리는 환자는 보통 걷지 못하고 누워서 산다. 무의식이 지배하는 심장도 좋아진다. 심장 박동이 너무 예민하게 빨라지고 안정이 잘 안 되는 사람은 걷기 운동을 통해 강심장이 될 수 있다. 걸으면 호르몬 분비량이 증가하여 즐거운 기분과 안정감을 느낄 수 있다. 몸을 안 쓰면 잡생각이 많아져 기분도 우울하다.
걸을 때 새로운 발상이 떠오른다. 무의식은 의식과는 달리 도덕관념이나 문화 등에 얽매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명을 무엇으로 할까 고민했다. 시내 출장을 걸어갔다. 새로운 이름들이 떠올랐다. 도시산책, 도시길따라, 누룽지조아, 자연인자, 옥돌조아, 걸음씨, 하지안하도하릴업따 등이었다.
생각의 파편들이 정리된다. 안정되지 않을 때 걷는다. 사업이나 사람 관련 고민이 있거나 화날 때 바로 결정하지 않는다. 밖으로 나가 회사 주변을 뺑뺑 돌고 오면 다른 시각이 생긴다. 놔두고 바라본 후 결정하면 덜 후회한다.
걷는 게 불편한 사람은 노화가 급속도로 진행된다. 다리가 건강해야 장수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