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녁에 남자는 여자에게 카톡 메시지를 받았다. “오빠! 우리 이제 그만 만나자.” 남자는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여자도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을 거다. 둘은 캠퍼스 커플이었다. 늘 붙어 다녔다. 수업, 식사, 도서관에서 늘 같이 했다.
남자는 몇 날 며칠을 집에 틀어박혀 있었다. 조용히 울었다. 자꾸 그녀 생각에 빠졌다. 혼자 술을 마셨다. 마음이 잠잠해지다가 다시 슬퍼졌다. 감정이 널뛰었다. 보고 싶었다. 몇 번을 전화번호 누르다가 그만두었다. SNS에 올린 예전 사진을 들락날락 오갔다. 수업도 빠졌다.
남자는 하루하루가 힘들었다. 한 친구가 떠올랐다. 남자를 잘 아는 초등학교 친구였다. 알아들을 수 없는 마음, 자아 등의 말을 했다. 남자는 지루했지만 묘한 끌림이 있어 싫지만은 않았다. 오후 8시에 커피숍에서 친구를 만났다. 여자를 처음 만남부터 이별까지 얘기를 털어놓았다.
친구는 딱딱한 말들을 주저리주저리 했다. 남자는 그때 친구 말을 흘려들었다. 꼭 고등학교 시절 어렵게 말하는 도덕 선생님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런 말을 했던 것 같다.
‘과거 일은 후회하지 않고 완전히 수용해.’ 과거는 통제 불가능하고 이미 확정되었어. 돌이킬 수 없어. 헤어졌다는 사실을 온전히 받아들여. 그 사실에 저항해 봐야 네 힘만 소진돼.
너는 그녀를 통제할 수 없어. 그녀에게 싫어할 자유나 떠날 권리도 있음을 인정해. 그걸 부인하면 그녀를 통제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거야. 그런 것은 사랑이 아니라 집착이야. 다시 만나 결혼한다 해도 그 집착 때문에 서로 간섭하고 싸우고 행복하지 않을 것 같아.
‘내 탓과 남 탓하지 않았으면 해.’ 네가 너에게 조금이라도 딴지를 걸지 않았으면 좋겠어. 과거에 잘해 줄 걸, 그때 그러지 말았어야 했는데 등 자기 탓으로 돌리지 않았으면 해. ‘매력적인 그 남자 때문에’라고 남 탓도 하지 말고. 내 탓, 남 탓한다고 이별을 돌이킬 수 없어.
내 탓하면 내 감정이 상해. 남 탓하면 남에 대한 증오가 생기고, 남이 들으면 남 감정이 상해. 너로 인해 벌집을 쑤셔 놓은 것처럼 온통 기분 상한 사람투성이야. 너를 둘러싼 환경이 불리하게 변해. 원인 분석하지 말고, 받아들이고 어떻게 살지 고민해 봐.
주변 사람도 딴지 거는 말을 할 수 있어. “같이 있을 때 잘하지 그랬어.” 괜히 간섭병에 걸린 사람이 안달 나 한마디 하는 소리야. 완전히 이별을 수용한 사람은 주변 사람 말에 기분 나쁘지 않고 흘려들어.
‘슬픈 감정을 존중하고 이해해 줘. 바라보며 흘러가게 놔둬.’ 슬픈 감정도 네 자식이야. 네 감정이 그럴 수 있다고 이해해 줘. 슬픔을 없애려고 억누르거나 구박하지 말어. 충분히 시간을 가지고 그 감정이 가라앉을 때까지 놔둬.
‘미래에 도움이 되지 않는 일은 하지 않았으면 해.’ 슬픈 마음이나 일상에 복귀하지 말라는 법은 없어. 네 마음은 이해하지만 집에서 안 나가기, 술 혼자 마시기, 전화 걸기, SNS 들여다보기, 수업 빠지기 등은 쓸데없는 짓이야. 네 마음과 몸에 상처 주는 일이야. 술 먹고 기분 나쁜 일 생겼다고 벽 쳐서 손 다치는 사람과 다를 게 없어.
이미 끝난 것 놔주고 평소대로 행동을 한다고 냉철한 게 아니야. 짝이 없는 사람에게 물어보면 이렇게 생각할걸. 세상에 남자와 여자는 많고 오가기 마련이지. 사람 마음은 좋았다가 싫었다가 해. 자기에 맞는 짝이 따로 있지. 이별했다고 당연한 것을 당연하지 않게 생각하는 것이 더 이상해 보여.
‘현재의 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해.’ 진행 중인 현재의 순간에 아무 생각 없이 집중해 봐. 사람은 현재에서만 살 수 있어. 현재에 성실히 노력하고 결과를 받아들이는 것 말고는 할 수 있는 게 없어. 만약 유리가 깨졌으면 다른 사람 다치지 않게 유리 파편을 빨리 치우는 게 현명하지 않겠니?친구 만나기, 걷기 등 운동, 명상, 취미 등을 가지고 마음을 안정시켜 봐.
남자는 그때 친구 말을 마음 열고 들어주기 힘들었다. 내 마음 이해해주지 않는다는 생각도 했다. 친구와 헤어진 후 11시 30분쯤 집에 돌아왔다. 불 꺼진 컴컴한 방에 외로움이 잠자고 있었다. 옷을 갈아입고 침대에 누웠다. 잠이 오지 않았다. 친구가 했던 말이 마음을 서성이다 가슴을 때렸다. 희한하게 친구의 말은 곱씹을수록 녹녹한 누룽지 같았다.
인생은 일직선으로 가지 않는다. 파동 친다. 실패도 성공도 있다. 내 인생에 실패는 없거나 실패를 절대 안 하겠다는 생각이 비정상적이다. 실패를 반복하나 그 이전 골까지 내려가지 않는 게 중요하다.
완전히 수용하는 것은 행복을 크게 증가시킨다. 행복 공식(행복지수=결과/기대치)의 분모에 해당한다. 기대하지 않고 있는 그대로 바라보는 마음이다. 실천하기 되게 어렵다.
지난 일이나 안 좋은 결과를 잊고 있다가 문뜩 억울함이나 슬픔이 불쑥불쑥 튀어나온다. 과거, 결과, 남은 통제할 수 없다고 되뇐다. 그런 현상은 아직 완전히 수용하지 못할 때 나타난다. 안 좋은 결과도 기대를 버리면 우울증에 빠지지 않는다. 남자의 경우 그 여자를 다시 만날 수 있다는 기대를 아예 버린다.
과거, 이미 발생한 결과는 통제할 수 없고 이미 확정되었다. 안 좋은 과거, 안 좋은 결과에 완전히 굴복하고 수용한다. 자책하지 않아 마음이 안정된다.
남은 통제할 수 없고 불확정적이다. 남을 존중하고 이해한다. 또한 발생할 결과 즉 미래는 통제할 수 없고 불확정적이다. 성실하게 도전한다.
내 안에 있는 많은 자아들도 남처럼 통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으므로 구박하지 않고 존중하며 이해한다. 제자리로 돌아갈 때까지 바라보고 흘러가게 놔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