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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eheera Sep 08. 2019

28 : ‘아-’

연에 에세이 : 나는 그냥 ‘나’에요.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28 : ‘-’           

연에 에세이 : 나는 그냥 ‘나’에요.



 인간이 만들어낸 이미지는 무섭다. 그렇지 않은데 그렇게 보이도록 만들어 버리는 위력을 발휘한다. 대단한 위력이다. 별것 설명하지 않아도. ‘아-’ 이 단어 하나에 묻어나는 알 것 같다는 의미. 참, 의미 없다. 제대로 알지도 못하면서 어림짐작하는 고리타분한 안경을 쓰고 있다. 그 안경 쉽게 쓰는 사람들이 많아 조심스럽다. 쉿 쉿. 조심조심 모두 다 조심.     


 파릇파릇하던 잎이 스멀스멀 옷을 갈아입기 직전의 계절. 초가을이란 이름의 녀석이 다가왔다. 경기도는 더 쌀쌀하니 외투 하나 걸치고 분당으로 향했다. 그가 회사 앞에 맛있는 곳이 많다며 나를 데리고 오고 싶다는 말을 몇 번. 그 맛을 보러 가는 날이었다. 그의 회사 앞에서 만났다. 깍지낀 손을 잡고 음식점에 들어갔다. 메뉴를 주문했다.     


 꽃이 피고 아지랑이가 올라올 기세를 펼치는 계절. 초여름이란 이름의 녀석 사이에 있던 날. 핸드폰을 부여잡고 서로의 위치에서 우리는 가족에 관해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는 아빠가 경찰이셨다고 설명해줬다. 지금은 퇴직하시고 음악을 하신다고 했다. 색소폰도 부시고 기타도 치신다고, 그를 낳기 전에 하고 싶으셨던 게 음악이라고, 못 다한 꿈을 이루고 계신다고 했다. 어릴 적 아빠가 놀아주던 생각이 난다며 아빠는 친구 같다고 했다. 그의 엄마는 활동성이 많은 분이라고 했다. 전주시 새마을 운동회 회장도 하고 계시고, 대통령 표창장도 받으셨다고 했다. 늦게나마 공부도 하셨고, 신문에도 나오셨고, 인터뷰하는 모습으로 뉴스에도 나오셨다고, 끊임없이 배우시고 노력하시는 모습이 존경스럽다고 했다. 그가 꾸밈없이 이것, 저것 말해주어 좋았다. 나의 아빠는 무슨 일을 하시냐고 묻는다. 정작 나는 나중에 설명해준다고 하고 설명을 피했다. ‘왜’ 하고 묻길래 ‘다음에 알려줄게’ 하고 답했다. 친오빠와 엄마 이야기만 했다. 엄마는 집에서 집안 일을 하시고 오빠는 컴퓨터 관련 회사에 다닌다고. 그는 나를 믿어주었다. 언젠가 말할 때가 오겠지 하고. 그럴 만한 이유가 있겠지 하고.     


 아빠는 건축일을 하신다. 땅을 사서 집을 짓고 파는 그런. 지난 연애 때 나와 결혼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말만 그랬는지도 모르겠다.- 그에게는 숨길 이유없이 아빠의 직업을 말했었다. 그가 스스로 자신에 대해 말하기를 집안 사정이 괜찮은 쪽에 속한 사람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아파트 청약 들어두었는데 당첨이 되었다며 좋아했지만, 갑자기 큰돈이 필요해졌다며 힘들어했다. 신혼집으로 살려고 생각해서 얻게 된 집이라 놓칠 수 없다고 했다. 당첨된 아파트에 다녀왔다면서 동영상으로 집안의 모습도 보여줬다. 그리고 어떤 날 나에게 금전적 이야기를 했다. 그는 나와 같이 살고 싶은 듯 말했다. 나는 그와 살 생각이 없었고 결혼에 대해 생각도 안 하고 있었다. 그는 우리 집이 몇 천만원 정도는 쉽사리 나올 수 있는 집안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그의 말에 뉘앙스가 그렇게 전해졌다. 그냥 그가 하는 대로, 생각하는 대로, 내버려 두었다. 설명할 필요도 없어 쿵 짝만 맞춰주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섣부른 사람이었다.     

 오해를 부르기 싫었다. 사람들이 쉽사리 생각하는 이미지에 갇히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아빠의 직업을 말하는 것이 조심스러워졌다. 평소엔 어쩌다 질문을 받거나, 말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면 말 할 수 있는 사람들에게만 골라 말했다.      


 음식점 앞 야외 테이블에서 소주와 음식을 사이에 두고, 그는 핸드폰으로 무언가를 검색하고 있었다. 잠깐의 침묵 안에서 그를 바라봤다. 그간의 그의 모습들을 떠올리며 이제는 말해주어도 되겠구나 싶었다. 망설이다 입을 열었다.     


 “저번에 말해준다고 했잖아. 우리 아빠 직업.”

 “응.”

 “우리 아빠 공사장에서 일하셔.”     


 그는 나와 눈을 마주치다 아무런 감정없이 ‘그래?’ ‘미장이?’ ‘목수?’ ‘어떤 업무 하셔?’하고 물었다. 이내 사실대로 말했고 숨긴 이유에 대해서도 말해주었다. 그는 이해했다. 그때 못다 한 말을 다 해줬다. 우리 아빠와 엄마는 고생을 많이 하셨다고. 이일 저일 전전하시다 지금의 일을 하신다고. 나도 우리 아빠가 존경스럽다고 말해줬다. 옆에서 함께 지켜내신 우리 엄마도 대단하다고 말해줬다. 그는 이번에도 무던히 받아주었다.     


 어떤 이물질을 묻혀 바라보는 시선은 불편하다. 사람은 그냥 있는 그대로의 사람으로 봐주면 한다. 어떤 환경에 감싸져 사람이 환경이 되고 환경이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환경은 한 사람의 삶에 묻어나는, 사람이 주인공인 배경 그 자체였으면 좋겠다. 



작은 것일지라도 인간과 사회가 만들어낸 이미지들은
선입견과 편견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 또한 그런 이물질을 묻히고 바라보고 있진 않은지 한번 생각해보세요.
좁은 시야로 세상을 바라볼 수록 나의 세상도 좁아집니다.
좁은 시야로 상대를 바라볼 수록 상대도 나를 그만큼만 바라봅니다.



일러스트 @jeheera.illust



<너의 색이 번지고 물들어> 출간된 에세이 책을 바탕으로 작성하였습니다.            

사랑이라는 커다란 주제를 토대로 자아와 인생의 성찰을 보여주는 인문학적인 사랑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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