깨진 수박

수필

by jeho

어색한 작별 인사를 급하게 하고 일요일 새벽에 어머니의 집을 나섰다. 깨진 수박을 검정 비닐봉지에 담아 들고서. 버스 정류장까지 가는 길은 멀었다. 기차역까지 가는 시내버스에는 승객이 없었다. 비닐봉지에서 물이 흘러 지렁이처럼 바닥을 기어갔지만 아무도 눈치채지 않았다.


어머니는 엄청나게 큰 수박을 샀다. 장마철에 거두어들인 수박은 달지 않고 밍밍했다. 그런 수박을, 크니까 샀다고 했다. 수박을 실은 손수레를 끌고서 엘리베이터를 내리고도 아홉 칸이나 걸어내려 가야 하는 계단을 내려왔다. 에너지를 절약하겠다고 위아래층이 함께 엘리베이터를 사용하도록 지은 옛날 아파트는 그렇게 다녀야 했다.


어머니는 김치냉장고에 수박을 넣었다. 가슴팍 높이에 있는 문짝을 위로 들어 올려서 여닫도록 만든 옛날 냉장고다. 100 킬로그램 역기보다도 무거운 수박을 겨우 들어 올렸다가 냉장고 안쪽으로 '쿵' 떨어뜨려 넣었다. 깨졌다.

성에가 두텁게 들러붙은 냉동칸에는 과일이나 채소를 넣지 말라고 잔소리했지만 소용없었다. 얼어서 버리는 게 허다한데도 '녹으면 먹을 수 있다.'라고 하는데 더는 할 말이 없다. '넣을 자리가 여기밖에 없다.'며 수박을 냉동칸에 넣어 두었다.


어머니의 팔 힘과 길이로는 수박을 꺼낼 수 없다. 얼어서 먹을 수도 없다. 나는 '깨진 수박은 내가 먹겠다.'며 집으로 가져가는 중이다. 경산역 앞에서 버스를 내렸을 때 길에는 아무도 없었다. 새벽 기차는 경산에서 부산으로 가는데도 나는 자꾸만 거꾸로 가는 착각을 하고 있다.

차창 너머에 쉴 새 없이 나타나는 먼 산에는 안개가 엉겨 붙어서 산허리에서 미적거리고, 낙동강에는 물안개가 스멀스멀 기어 다닌다. 삼랑진에 이르러서는 먹구름도 힐끔거린다.

발밑에 놓아둔 비닐봉지에서 물이 나와 기어이 강물 흐르듯 기어간다. 눈에서 나와 뺨을 타고 흐르는가 해서 손을 갖다 대지만, 말랐다 '마음에서 흐르는가?'보다.

산안개가 점점 짙어간다. 차장에는 빗방울이 사선을 그으며 흐른다.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마구 달린다.


"우리 열차는 잠시 후 구포역에 도착합니다. 놓고 내리는 물건이 없는지..."

어머니의 집에 놓고 온 것이 있기는 한데, 부산에 가까워질수록 무엇을 두고 왔는지 점점 흐릿해지기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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