붕어빵이 그렇게 맛있니?

수필

by jeho

부산지하철 시청역 7번 출구를 나서자 붕어빵을 파는 리어카가 눈에 들어온다. 그 앞에서 두 손으로 붕어빵을 쥐고 있던 사내아이는 이내 한 손을 엄마 손으로 옮겨 잡고는 붕어빵 꼬리에 입을 대고 불어댄다. 손톱만큼 베어 물더니 아직 뜨거운지 움찔한다. 엄마가 뭐라고 말하지만 아이는 듣는지 마는지 별 반응이 없다. 내가 리어카에 가까이 다가갈 때쯤 엄마는 아이에게 이렇게 묻는다.

"붕어빵이 그렇게 맛있니?"

아이는 연신 고개를 까닥인다.

'맛있니?'라는 말이 내 발걸음마다 따라붙어서 오래된 기억 하나를 불러냈다.

어릴 때 살던 동네 안쪽에는 새로 짓다가 만 빈집이 있었다. 어른들은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했다. 그렇지만 열 살 안팎의 아이들 서넛은 맨날 그 집에서 숨바꼭질하며 놀았다. 나는 넘어졌다. 날카로운 돌조각이 손바닥을 찢고 들어갔다. 며칠 동안 참고 지냈다. 손에 염증이 생겨 열이 나고 부어오르게 되자 엄마에게 말했다.

"좀 참아봐라. 애들은 금방 낫는다."

엄마는 내 손을 보지도 않고 말했다. 그러고는 검정가루가 묻은 옷을 탈탈 털어내었다. 엄마는 리어카에 연탄을 싣고 가서 이웃집 부엌 구석에 차곡차곡 쌓는 일을 했다. 사는 게 힘들수록 웬만한 일은 대수롭지 않게 되고, 여간한 일이 많을수록 힘든 일은 잊게 된다. 지치지만 않는다면.


봄이라고 하지만 아직 겨울 기운이 남아 있어서 어스름 녘에는 제법 쌀쌀했다. 그날 밤에도, 엄마의 손발이 오그라들었고 사지가 떨린다고 했다. 자주 그랬다.

'내 병은 내가 잘 안다. 설마 죽기야 하겠나.'라면서 손발을 주무르고 따뜻하게 하면 낫는다고 했다.

"와 이래 시원찮노. 두 손으로 단디 주물러 봐라."

엄마는 조막손처럼 되어 가던 손으로 내 손을 끌어당기다 말고 놀란 듯 소리쳤다.

"우야꼬, 손이 와 이렇노?"

엄마의 표정이 어떤지 볼 수는 없었지만 평소와는 달랐던 게 느껴졌다.


"내가 이 모양이어서 우짜노."

나는 엄마가 자책하는 소리를 듣다가 동틀 녘이 되어서야 잠이 들었다. 점심 나절이 되어 눈을 떴을 때 엄마는 연탄을 배달하러 간 모양이었다. 학교를 빼먹고 한참을 방바닥에 누워 있었다. 어둑해져야 일을 마치던 엄마는 웬일인지 오후 나절에 집에 돌아왔다. 나를 데리고 시내로 가는 담벼락 길을 따라 삼십 분이나 한 시간쯤 걸었다. 외벽이 허름한 병원의 문을 열었다. 난롯가에 앉아 텔레비전을 보고 있던 늙은 의삭 굼뜨게 일어났다.


의사는 내 손을 두어 번 누르더니 곧바로 수술용 조명을 켰다. 누렇던 의사 가운도, 엄마의 얼굴도 하얗게 바뀌었다.

"니 몇 살이고? 잘 참을 수 있제? 이따가 엄마한테 맛있는 거 사달라고 해래이."

의사는 말이 끝나자마자 메스로 손바닥을 가르더니 핀셋으로 작은 돌조각을 꺼냈다. 마취도 하지 않았다. 나는 너무 아파서 온몸이 떨렸지만 아무런 소리를 내지는 않았다. 내 손을 잡고 있던 엄마의 마른 손도 땀에 젖을 듯했다.


병원 문을 나서자 밖은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저만치에 붕어빵을 파는 리어카가 있었다. 지붕에 매달린 작은 전구가 희미하게 켜져 있다가 깜빡거렸다. 가느다란 전선을 따라가면 바닥에 자동차용 배터리가 놓였다. 붕어빵 장수는 발로 낡은 배터리를 두어 번 찼고, 전구는 잠시 밝아지기도 했다. 자꾸 그랬다. 붕어빵 냄새가 코로 들어왔다. 머릿속이 노릇한 색으로 물들려고 하던 때였다.

"니, 붕어빵 먹고 싶제?"

엄마가 그렇게 물어본 건 처음이었다. 내가 그때까지 들어 본 엄마의 말에는 따뜻한 감정이라고는 손톱만큼도 묻어 있지 않았는데 그때는 너무 달랐다. 엄마의 말은 그저 정보를 전달하는 수단이었을 뿐이지 누군가의 마음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잘못 들었나?' 그런데 그날은 그랬다. 엄마가 그렇게 물으니까 나는 갑자기 붕어빵을 먹고 싶어졌다. 말은 그립도록 따뜻했고, 마음은 한없이 달래어졌다.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큰 도로를 벗어나 집으로 가는 좁은 길로 들어섰다. 길 왼쪽은 철도 정비창이라고 부르던 곳인데 어른 키의 두 배보다 높은 시멘트 담으로 가려져 있었다. 길은 담벼락을 따라 길게 나 있어서 어둡고 포장이 되어 있지 않았다.

엄마가 그 길을 가는 동안 내 손목을 잡고 있던 것도 처음이었다. 나는 붕어빵 꼬리에 코와 입을 갖다 댄 채 걸었다. 불빛은 멀리 있었지만 별로 어둡지 않았다. 담벼락에는 붕어빵들이 헤엄쳐 다니는 그림리 그려졌고, 붕어빵들은 나를 따라왔다. 길은 길었지만 나는 오래 걸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손이 아프다는 사실을 까마득히 잊고 있었다. 나는 '엄마도 붕어빵 하나 먹어'라고 할 만큼 살갑지는 못했다. 엄마가 붕어빵을 한 개라도 먹었는지조차 기억나지 않는다.


내가 그랬던 것처럼 사내아이도 붕어빵을 꼬리부터 먹고 있다. 아껴 먹으려고 그러는지 아니면 머리부터 입게 넣기가 겁나는지 알 수 없다. 상관없다. 꼬리부터 먹든 머리부터 먹든, 붕어빵을 먹는 사람은 저마다의 기억을 새로 만들 수도 있고 꺼낼 수도 있으니 말이다.

엄마가 '니, 붕어빵 먹고 싶제?'라고 물었을 때, 나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고개만 끄덕였었다.


엄마가 '붕어빵이 그렇게 맛있니?'라고 묻는데, 사내아이는

"엄마, 붕어빵이 정말 맛있어."라고 대답한다. 나는 엄마의 얼굴을 보지 않았지만, 사내아이는 엄마를 올려다보며 환하게 웃는다.


나는 붕어빵 리어카를 지나쳐 시청 앞 광장 쪽으로 걷는다. '정말 맛있어.'가 발걸음마다 따라오고, 손바닥에는 붕어빵 한 마리가 헤엄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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