콤플렉스

수필

by jeho

A는 농축산물을 유통하는 회사에 다닌다. 영업하러 나가서 처음 본 사람에게 명함을 건네면 이러는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대방어 먹고 싶은데, 싸게 될까요?"

명함을 대충 쓱 보고 바로 주머니에 집어넣는 부류가 그런다. 제대로 설명할라치면 상대방은 다른 데로 관심을 돌려버린다.

처음에는 그랬다.

"잘 봐라. '수'가 없잖아. 이 양반아!" 속으로 외치면서도 웃는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다.


지금도 별반 다르지 않다.

회사는 수산물을 취급하지 않는다. 회사 이름이 ㅁㅁ농축산물유통(주)이다. 정말로 수산물을 다룬다는 '수'자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물론 지금은 이런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는다.

요즘은 이런다.

"대방어 드실 거면 우리 회사보다는 ㄱㅂ수산이 더 좋지요. 선주가 직접 잡아 와서 보내주니까요."


그보다도 A는 다른 것에서 스트레스를 받는다.

A가 다니는 회사는 규모가 크지 않아서 사장과 직원이라고 해 봐야 스물두 명에 불과한데, 부서는 세 개다. 유통기획부는 회사 경영을 돕는 일을 한다. 마케팅 업무뿐만 아니라 인사와 자금을 관리한다. 사장이 부서장을 겸직하는 실세 부서이다.

축산물유통부장은 스카이대를 졸업했다. 회사와는 어울리지 않게 어마어마한 학벌이어서 처음에는 '이건 뭐지?' 하는 의문이 생겼었다. 스카이대 출신이 한 명 더 있다. 이 부서의 평균 학벌은 이 두 사람이 엄청 높게 띄워 놓았다. 나머지 네 명의 부서원도 덩달아 자부심이 높을 만도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자존심이나 자존감이 바닥에 깔리는 분위기가 되었다. 에이스 부서라는 비아냥에 시달리는 이유는 영업실적이 늘 부진하기 때문이다. 부서장은 스물아홉 살이다. 사장의 아들이다. 서울대에서 인류학을 공부했다고 하는데, 평소의 소행으로 미루어보면 공부를 제대로 하기는 했는지 의심스럽다. 어쨌든 유통기획부에 제출된 서류에 그렇게 되어 있는 데다, 공부하지 않고 놀기만 했다고 하더라도 서울대라는 타이틀 자체만으로 이 조그마한 회사에서는 엄청난 사건인 셈이다.


오늘 아침에 하필 A가 읽은 뉴스에는 모교의 재단이 실버타운투자에 실패해서 폐교될 위기에 처했다는 기사가 있었다. 안그래도 하잘 것 없는 출신학교가 없어진다면 어찌될 것인가, 절망적이다. 축산물유통부의 다른 직원들은 A도 들어본 적이 없는 대학을 나왔거나 중퇴했다. 생각이란 것을 전혀 하지 않고 겨우 몸만 사무실에 들락거리는 것처럼 보인다. 늘 술에 절어 있지만 영업 실적은 이 세 명이 도맡아 책임지고 해낸다. A는 이것도 저것도 아니다. 얄팍한 자존심을 내세워 '나는 영업과는 맞지 않아!'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서 출근한다.


8개월 전에 들어온 신입이 있다. 그가 두번 째 서울대라고 알려진 직원이다. A보다 한 살 많은 서른네 살이어서 신입이라고 부르기도 어색하다. 어땠든 막내다. 직장 예절이라고는 티끌만큼도 없고, 눈치도 없는 데다가 아무 생각 없이 사는 것은 다른 영업 직원들과 다를 바가 없다. 어떨 때는 한 대 쥐어박고 싶기도 하다. 가르치려고도 해 보고 잔소리도 무척 많이 한다. 그런데 A가 모르는 게 있었다.


어리숙하고 답답하기 짝이 없던 신입도 서울대 출신인 부장의 학교 동아리 선배라는 것을 몰랐다. 함부로 대하지 말았어야 하는데, 오히려 눈치 없는 것은 A이다. 막내 신입은 자기 입으로 출신 학교나 부장과의 관계에 대해 한 번도 입 밖에 꺼낸 적이 없다. 직원들의 입에서 입으로 전해지고 있다. 그 후로 A는 스스로 막내로 돌아왔고, 영업은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을 벗어버리지 못한 채로 집에서 사무실로 육신을 이동시키고 있을 뿐이다. 업무시간에 핸드폰에 이어폰을 끼워서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게 일과다. '막내 다루는 법'이나 '공부하지 않고 자격증 따는 법' 따위를 검색한다. 현실을 피하면서 하루살이로 산다. '리얼리스트가 되자. 그러나 가슴속에는 불가능한 꿈을 가지자.'라고 했던 체 게바라를 대할 낯짝이 없다.


A는 그럴듯한 말장난으로 오늘도 콤플렉스를 벗어던진다. "스카이? 그게 뭔데? 다이빙하는 사람들인가? 나는 스쿠버다이빙한다. 니들이 바닷속으로 가라앉는 재미를 아는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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